[제14회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정지윤
당산나무 연대기
마을이 사라지면
그뿐,
그
누가 전설을 남겨두겠는가
마을보다 먼저 뿌리내렸을 당산나무
나이테에
지나간 그림자들이 기록되어 있다
황량한 벌판의
바람이 주인이었던 때가
아름드리 등고선에 박혀있다
할머니의
할머니가 드린 치성이
깊은 주름 골로 새겨 있다
점차 들어오는
발길보다 나가는 발길 잦아진
내리막 황톳길 희미하게 새겨 있고
사십 넘겨
맞선 보러 간 큰집 삼촌
퇴짜 맞고 거나하게 부르던 ‘목포의
눈물’이 묻어 있다
고모가 맡기고 간 젖먹이를 업어 키우는
할머니
아이가 칭얼거릴 때마다
해거름
당산나무 가지에 자장가를 걸어두었다
족보의 어디쯤
마디를 잘랐는가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내 가지들
당산나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수백 년 전 어느 그림자 내 지문을
닮아있다
마을은 캄캄한데
당산나무만 밤새
팔이 근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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