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상상
최민자
기억들이 달아났다. 범람하던 눈물도 줄어들었다. 진액이 졸아들어 무릎이 꺾이고 허리가 자주 삐걱거렸다. 목젖이 말라붙고 마디마다 모래바람이 서걱거렸다.
누가 샅샅이 내 안을 훑고 있다. 한 켜 한 켜 내 몸을 스캔해 가고 있다. 누군가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나를 훔치고 있다. 호기심과 생기 열망 같은 것, 수줍음과 염치, 여성다움 같은 것, 그런 것들이 빠져나가고 있다. 버석거리는 껍데기만 남고 내용물들이 다 새 나가고 있다.
무시로 증발해 버린 '나'의 성분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봄날 꽃밭처럼, 웃음소리처럼, 흔적도 없이 공중분해되었을까. 자취 없이 소멸해 버리는 대신 어딘가 다른 곳에 켜켜이 쟁여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빈 폴더에 파일 옮겨 담듯 내게서 빠져나간 추출물들이 캄캄한 하늘가 빈껍데기별 같은 것에 낱낱이 백업되고 있지나 않을까.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할 때에도 비슷한 허망감에 젖어들곤 한다. 사는 동안 뇌세포에 업로드된 기억들, 주고받은 마음들은 어디로 가 있는가. 산소 공급이 끊어지면 무화되어 버리는 '물질'의 다른이름이 영혼인 건가. 낡아가는 본체에서 위태롭게 쿨럭거리는 마지막 숨까지 베껴 넣어지면 어느 날 문득 '다른 이름으로 저장'된 별 하나, 무한 허공 한구석에서 희미하게 다시 빛을 뿜지 않을까. 바탕화면 한구석에 새로이 돋아난 아이콘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그렇게 있어 왔던 것처럼.
늙어 가는 일이 쓸쓸해서인지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다 다음 순간 스스로 놀란다. 징그럽구나. 다시 또 숨을 얻어 거듭 살 생각을 하다니, 별빛과 흙가루로 제조된 인간,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혼은 빛으로 날아 지수화풍 어느 틈새에 희미한 파동으로 섞여 들면 그만일 걸, 또다시 이런저런 허깨비에 끌려다니며 갈망과 허망 사이에서 시름시름 결핍을 앓다 빈손 맨발로 돌아서고 싶더냐.
오래되어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인간의 뇌는 살면서 부딪치는 구체적 상황에 대처하는 심리적 공구들이 빼곡히 담긴 연장통과 같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왜'나 '무엇'과 같은 본질과 정체성보다 '어떻게'와 같은, 방편을 모색하기에 적합한 설계라는 것이다. 높은 가지의 열매를 어떻게 딸 것인가. 달아나는 사슴을 어찌 잡을 것인가 따위의 질문은 해결할 수 있어도 왜 사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 같은 의문들은 애당초 답이 나올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맞는 거 같다. 스무 살 즈음에 궁금했던 질문들이 육십에도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전생이건 이생이건, 환생이건 적멸이건, 오늘의 실존에나 충실하면 될 것을. 해답 없는 질문들에 휘둘려 읽히지 않는 글을 쓰고 허튼소리나 주절대느니 고장 난 어금니와 삐걱대는 무르팍이나 멀끔하게 수선하며 살 것을.
내일이 궁금한 하루살이에게도 이우는 저물녘은 대책 없이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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