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아픈 사람들 / 견일영

희라킴 2018. 7. 1. 13:51



아픈 사람들


                                                                                                                                     견일영





 우리의 일생을 가장 간결하게 함축한 말이 생로병사(生老病死)다. 늙고 죽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운명이란 이름에 맡기게 되지만 아픈 것은 그냥 방치할 수 없다. 병원에 가보면 아픈 사람들이 참 많다. 누구나 젊었을 때는 잠시 병 없이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나이 들면 아프다는 소리를 달고 다닌다. 움직일 때마다 고통의 노래를 부른다. 악보로 기록하기 힘든 그 곡조는 곧 저 세상으로 떠나야 할 전주곡이다.


 

 나는 병과 함께 살고 있다. 그것을 조금도 숨기고 싶지 않다. 함께 이야기할 때나 식사를 할 때, 혹시 불쾌하게 생각하거나 전염을 염려할까봐 내가 먼저 고백한다.

 

 “나는 저항력이 부족한 백혈병 환잡니다. 당신들의 균이 나에게 옮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나에게는 남을 전염시키는 균이 없습니다. 이상한 바이러스가 내 백혈을 괴롭혔지만 그 바이러스도 없어졌습니다. 다만 그 후유증으로 수시로 전신에 통증을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때로는 구체적으로 설명까지 해준다. 병은 자랑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치료에 도움을 줄 때도 있고, 심리적 안정에 힘이 될 때도 있다.

 

 이 세상에는 병이 들자마자 바로 죽는 사람은 매우 적다. 옛날 페스트나 호열자 같은 집단 전염병으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희생된 예는 있지만 예방 의학이 발달한 지금은 그런 일은 없다. 그러나 아픈 사람은 점점 더 늘어나고, 병원도 부지기수로 불어난다. 의료보험이라는 게 생겨서 약국까지 돈을 대주니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픈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예 없고, 열만 조금 나도 병원을 찾는다. 병원에 가는 것이 식당에 가는 것만큼 잦아졌다.

 

 나는 가난한 시골에 살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병원이라고는 딱 한 번 가봤다. 아프기야 수없이 아팠지만 농산물 외는 현금이 없으니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날만 새면, 들이나 산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자주 엎어지고 무릎을 깼다. 피가 나면 모래를 뿌려 피를 말렸다. 어느 날 거기 균이 들어갔던지 고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릎 위에 커다랗게 덮인 큰 딱지 밑으로 고름이 줄줄 새어 나왔다. 내가 너무 아파하는 것을 본 삼촌이 병원으로 데려갔다. 의사는 핀셋으로 무릎 위의 큰 딱지를 그냥 잡아당겨 제거한다. 얼마나 아프든지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 머큐로크롬을 듬뿍 바르고는 끝이다.

 

 그건 외상이니 할 수 없이 병원에 갔지만 속병은 그냥 견뎠다. 법정전염병도 예방약이 없으니 무사히 지나가기만 바랐다. 나도 심하게 여러 번 아팠지만 다행히 살아남았다. 친구들의 반은 유행성 전염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피지 못한 꽃으로 지고 말았다.

 

 근래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책이 베스트 셀러다. 젊은이들에게는 필독도서가 되었다. ‘란도샘’이란 애칭으로 인기를 독점한 김난도 교수는 “나도 때로는 우연에 기댈 때가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고 아픔을 겪는 젊은이들은 여기서 위안을 얻는다.

 

 통증은 모든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같은 통증을 느끼면서 죽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고, 감사 기도를 올리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엄살을 부려도 병을 완전히 낫게 하는 재주는 없다. 고민을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어른에게 속지 말고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아픈 것이 정상이고 누구나 다 아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그 아픔 속에서도 자신의 뚜렷한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다리에 힘을 주고 팔을 크게 흔들면 병을 잊게 된다. 낫지는 않아도 잊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다.

 

 광복 후 혼란기에 군인들이 일으킨 여순 반란 사건이 있었다. 목사 아들이 젊은 반란군에게 총살을 당했다. 그의 아버지는 자기 자식을 죽인 반란군이 국군에게 잡혀 총살당하려는 것을 살려내고, 자신의 아들로 삼았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는가. 그 큰 아픔을 더 큰 아픔으로 치유한 것이다.

 

 나는 백혈병 7년 동안 재발까지 하는 아픔 속에서 수필집도 내고 장편소설도 썼다. 그리고 연달아 청탁해 오는 원고를 거의 거르지 않고 다 소화했다. 아픔을 아픔으로 치유했다고 하면 과장이 될까. 그것이 병원에서 얻는 안도감보다 더 큰 영성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꿈 너머에도 꿈이 있다. 기쁨 속에서도 새로운 기쁨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아픔의 동굴을 지나면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완전한 세상을 다 보지는 못하더라도 남보다 좀 더 많은 것을 보았다는 희열은 고통의 터널을 지나봐야 안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인생은 평생 아픔과 함께 산다. 그것은 성장통이 아니라 평생의 자극이요, 교훈이요, 인내요, 낭떠러지에서 깨닫는 지혜다. 인생은 생로병사, 평생 병과 싸우는 과정이다. 병을 이겨내고 영생하는 사람은 없다. 병과 함께 할 수 있는 인내와 지혜만 필요하다.

 

 지난날은 다 아름다운가. 어릴 때 아팠던 기억, 그때 불렀던 동요가 새롭다.

 

 다쳐서 다쳐서 아픕니다 / 누나가 업어도 아픕니다 / 엄마가 업어도 아픕니다 / 울어도 울어도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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