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매듭단추 / 석민자

희라킴 2018. 5. 30. 05:18



매듭단추 


                                                                                                                              석민자


 저고리는 품위는 있을지 몰라도 날렵한 멋은 적삼이 윗길이다. 한 땀 한 땀 박음질로 박아낸 적삼의 맵시는 날렵하기가 물 찬 제비다.

 목화를 심어 무명을, 누에를 길러 명주를, 삼베를 심어 베옷을 지어 입던 시절이었다. 디딤 방앗간에서부터 지게니 소쿠리니 할 것 없이 필요한 기기들을 집에서 만들어 썼듯이 단추 역시 매듭을 묶어 사용하기도 했었다. 짝짝이 단추를 달고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던 것은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것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만큼 공산품이 귀했다는 뜻이기도 하리라.

 “좀 조신해질 때도 됐구마는 우째 이래 선머섬아를 몬 벗어나는동. 단추가 떨어져 나가는 줄도 모리고 맨날 이래 펄쩍대기나 해 대니, 운제쭘에나 철이 들라는동. 쯧쯧.”

 내가 좀 분답기는 했어도 실 자체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목화에서 뽑아낸 실이었으니 보습은 탁월했을지 몰라도 질기지 못했던 것 또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일곱 살에 들어갔던 탓에 언니, 오빠뻘이 되는 선배들과 한교실에서 학습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두세 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학생들과 한 반에서 공부를 했다는 결론이다. 그때만 해도 여학생들의 입성은 흰 적삼에 검정 치마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솔직히 그때는 그 옷이 아름답다거나 맵시가 있다고는 생각조차 해 보지를 못 했다. 그나마 사는 것이 좀 괜찮은 집 아이들은 꽃무늬가 있는 포플린 원피스나 세일러복 같은 것을 입고 다니기도 했는데 옷도 옷이지만 단추가 더 예쁘게 남아 있을 정도다.

 적삼의 멋은 뭐니 뭐니 해도 단아하고 앙증맞은 매듭단추다. 어떻게 보면 꽃 몽우리와도 같고 또 어떻게 보면 여인의 젖꼭지와도 같은 것으로 옷깃을 여민 여인의 앞가슴은 그대로가 한 송이 꽃이었다. 빳빳하게 풀 먹인 하얀 적삼에 검정색 치마를 받쳐 입은 여인의 탯거리는 정갈하면서도 단정했다. 요즘 원불교의 정녀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차림새다. 연전에 이북에서 온 응원단들의 옷차림에서 느꼈던 감정은 동족애 그 이상의 감흥이었다.

 저고리 고름은 자칫 풀어지기도 하지만 매듭단추는 좀처럼 풀리는 법도 없었다. 일부러 풀려고 해도 쉬이 풀리지 않는 단단함이 매듭단추엔 있었다. 그러니까 궁글리고 또 궁글려서 엮어낸 힘이 몽우리로 맺혀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매듭단추는 같은 천으로 만들어진 것이라야 맵시가 났다. 옥이라도 제 천의 것엔 미치지를 못했다.

 각설이에겐 허름한 옷이 격에 어울리게 되어 있다. 땟국물이 흘러내리는 누더기를 걸치고 읊어 대는 타령이라야 구경꾼들의 어깨도 들썩거려진다. 빳빳하게 풀 먹여 손질한 모시옷을 날아갈 듯 차려입은 청상이 각설이타령을 풀어낸다고 그게 타령으로 보이겠는가. 그녀가 아무리 어깨를 추썩거린다고 해도 한풀이로밖에 보일 일이 없을 것이다.

 옥양목으로 지어진 적삼이 달빛 어린 박꽃이라면 광목으로 지어진 그것은 햇살 아래 흐드러진 호박꽃이다. 거기에 매듭단추는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이다. 저고리엔 고름을 달면서 적삼엔 매듭단추를 달 생각을 해낸 선조들의 심미안이 경탄스럽다. 날렵한 적삼에 매듭단추는 창호와 닥종이처럼 어울림이 맛깔스럽다. 무명적삼에선 초가처럼 소박한 멋이 흐르고 모시적삼에선 누정의 그것에서와 같은 날렵함이 흐른다. 모시적삼이 서릿발 같은 칼칼함이 있다면 무명의 그것은 흙과 같은 질박함이 있다.

 빨래를 하고 나면 매듭단추는 한쪽으로 틀어지거나 찌그러져 있게 마련이다. 방망이질로도 모자라 다리미질까지 해 대는데도 모양새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찢어진 옷가지에서 깨어진 바가지나 나무함지 같은 것들도 어머니 손만 거치고 나면 쓸 만한 물건으로 거듭났거늘 하물며 매듭단추겠는가. 어머니의 손길이 두어 번 스쳐지는가 싶다 보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몽우리로 피어올라 있었다.

 길게 접은 끈을 무르팍에 올려놓고 요모조모 궁글리고 나면 희한하게도 몽우리로 된 장미꽃이 피어났었다. 재료는 주로 옥양목이나 광목이었지만 이따금은 삼베나 모시 같은 것으로 엮어내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주로 막 입는 옷이나 여름옷을 위한 단추였던 셈이다.

 선머슴같이 놀다가도 매듭단추를 궁글릴 때만은 흉내라도 내 보려 얼찐거렸던 것도 순탄치 못할 앞날이 예견되어서가 아닌가 싶다. 자신에게 지워진 십자가를 홀가분하게 여길 사람이야 있겠는가만 내게 지워진 십자가는 냉혹하리만큼 가혹했다. 눈꺼풀마저 무거울 정도로 고단한 일상이 이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매듭단추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매듭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그 미로 같은 여정과 내 살아온 날들이 흡사하게 닮았다 싶어서일 것이다.

 어쩌면 그때 어머니가 묶던 매듭도 단추가 아닌 자신의 정체성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한 치 앞도 가늠이 안 되는 벽 앞에서 매듭이라도 묶지 않았다가는 자신마저 놓아 버리게 될 것 같은 강박관념이 더 매듭에 매어 달리게 하지 않았는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끈을 송곳으로 감아 요리조리 궁글리고 나면 앙증맞도록 예쁜 장미꽃이 몽우리로 피어났었다. 그러니까 매듭단추를 묶고 있을 때의 어머니는 그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 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몰입을 했었다. 뭐가 됐건 늘 유름을 해 두는 편이기는 했어도 매듭단추만은 화환으로 묶어도 될 만큼 쌓아 두고 지냈던 것을 보면 매듭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는 시간 자체에 더 무게를 두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시는 밤은 더 많은 매듭이 몽우리져 있었던 것으로 보면 내 짐작이 얼추 맞을 듯도 싶다. 매듭을 의지 삼아 아득한 생을 건너왔을 어머니에게 매듭은 동아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옷을 여미기 위한 것이 아닌 생을 여미기 위한 매듭이었기에 밤을 도와 가며 피워내지 않았겠는가 싶어서다.

 적삼을 여미던 매듭으로 마음까지 여며 왔던 당신이었어도 이즈음은 단추에 더 익숙해 계시다. 더 이상은 여며 들일 마음 자락도 없으시겠지만 지금 한번 묶어 보랬더니 다 잊어버리셨단다.

 “고분 단추가 쌔벨랬는데 까짓거는 맹글어서 뭐 할라꼬.”

 
당신의 답이다. 다 놓아 버리신 게다. 마음 자락도 매듭도 놓아 버리신 채 안상하게 앉은 모습에서 옥양목 적삼 차림의 젊고 곱던 엄마를 본다. 기다림을 꽃 몽우리로 승화시킬 줄 알았던 장미꽃 몽우리 같았던 엄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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