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간 속으로
변해명
만원 전철을 타면 키 작은 나는 사람들 등 뒤에서 손잡이까지 손을 뻗을 수도 없고 사람들 벽 속에 갇혀 천장을 올려다보며 숨을 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럴 때엔 아예 눈을 감고 나만의 시간 속으로 날아가 보는 것으로 비좁은 공간의 고통을 이긴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들판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핀 들판으로 달려 보기도 한다. 스위스 인터라켄의 언덕을 뒤덮던 그 아기자기한 작은 꽃들, 푸른 숲, 푸른 호수, 푸른 하늘, 생각만 해도 눈이 시원해진다.
융프라우 만년설을 향해 오르던 협궤열차를 타고 달리던 그날의 차를 탄 기분으로 서보기도 한다. '얼음이 울면 청춘이 간다.'고 했던 헬만 헤세의 융프라우 봉우리. 출발지는 30도의 더위인데 종점인 산은 만년설이 쌓인 영하의 기후다.
얼음 조각들이 즐비한 터널을 지나면 겨울의 복판에서 스키를 타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한 곳에서 만나는 이색 지대. 전철이 한강을 넘어간다. 전철의 굉음 속에서 그리운 소리들을 찾아본다. 바람 소리, 찰랑이는 물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나무십자가 소년 합창단의 맑은 합창 소리…
찬바람이 전철을 파고든다. 오늘같이 추운 날, 손발이 꽁꽁 얼도록 황량한 겨울 벌판에 알몸으로 선 가시나무를 생각한다. 엄마 곁을 떠난 사랑하는 아들을 찾으려고 겨울 들판을 헤매는 어머니, 그 들판에서 만난 유일한 생명체인 발가벗은 가시나무에게 아들이 간 곳을 묻자, 가시나무는 자신의 언 몸을 녹여주면 일러주마고 한다.
어머니는 자신의 뜨거운 가슴에 언 가시나무를 품는다. 가슴에서 피가 흐르고 상처가 나지만 어머니는 조금도 아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가시나무가 일러준 길을 따라 아들을 찾아 눈보라치는 겨울벌판을 간다. 어린 시절 읽던 동화 속으로 들어가 보기도 한다.
그런 가시나무를 감싸는 모성이 문득 대지의 사랑이란 생각을 해본다. 대지의 지열(地熱)이 아니면 새봄을 기약하지 못한다. 봄이란 아들을 찾아 자신의 뜨거운 가슴을 내어놓는 대지의 사랑, 그래서 봄은 겨울 벌판 가시나무에서부터 시작되는지 모른다.
지금 서울의 협괴열차는 서울의 융프라우에서 아름다운 꽃밭인 인터라켄 언덕으로 내려오고 있다. 아직은 동토, 대지는 동면하는 곰처럼 문을 굳게 잠그고 침묵하고 있지만 그 가슴은 뜨거운 열기로 꽃눈을 품고 잎눈을 품고 대지의 모성을 기다리고 있다.
가시나무처럼 여리디 여린 작은 싹, 손으로 만지면 이내 으스러지고 두려움에 몸을 사리지만 그 어린 영혼의 깊숙이 깃들어 있는 강인한 투지와 솟구치는 열정도 어머니 대지의 사랑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밖은 겨울이지만 가슴은 봄의 입김으로 출렁인다. 나도 지금 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열차를 타고 있다. 동토의 가시나무처럼 나를 품어줄 대지의 모성과 만나기 위해 시린 가슴을 녹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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