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당선 시

[2018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수목원 / 전진자

희라킴 2018. 1. 4. 11:03

[2018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전진자



수목원



오월이 세상에 길을 놓고 있다

악보도 없이 나무들이 몸관악기를 연주한다

피톤치드 피톤치드 바람에 추임새가 들린다

방문객을 향해 귀를 쫑긋 세우며 들꽃들이 수다를 떤다

당신은 어디서 왔는가

송화가루 음율이 간절하다

나만 빼고 모두 봄이라 한다

시린 생각을 저들에게 들키고 말았을까

내안에 있던 머뭇거림이 슬쩍 빠져나가려 한다

당신은 어디까지 갔는가

오전의 나뭇잎과 오후의 나뭇잎의 태도는 다르다

길어진 만큼 어떤 것은 짧아진다

멧새소리와 멧새소리가 모여 떼울음 이 되려한다

당신도 듣고 있는가

귀를 닫고 눈을 닫아도 길은 더 선명해지고 있다

오월엔 나무들처럼 천천히 걸어와도 좋다

그리움이 잔뜩 우거진 당신의 숲을 향해



심사평 "열린 세계관으로 자연과 인생 조명"


예년과 다르게 많은 응모자와 응모작품이 우선 선자를 기쁘게 했다. 내용도 사드문제, 세월호, 노마드('떠돌이'로 표현되는 현대 직업사회의 군상들), 디아스포라(국내로 들어오는 고려인 혹은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가족들), 사랑과 평화, 자연과 인생, 노동문제, 농촌과 공동체 사회의 붕괴,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개인적 정서와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스펙트럼 속으로 '불나비'처럼 날아드는 각양각색의 문제를 포착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그와 반면에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만들어지는 디지털사회를 반영하는 속칭, '컴퓨터詩'가 너무 범람하는 듯하여 염려스러웠다.

시가 쓸 데 없이 너무 길고, 우리말 한글 맞춤법도 무시하는(또는 문법적 지식을 갖추지 않는) 어휘실력과 속어·비어가 출몰하는 체팅 언어가 흠이라면 큰 흠이었다.

시(운문)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시는 짧고 산문(소설 등)은 길다"라는 사실이다. 시는 짧기 때문에 은유 등 갖가지 비유와 상징이 요구되며...마치 예리한 비수처럼 혹은 한 송이 꽃처럼 빛과 향기를 두루 갖추면서 '순간에서 영원으로' 감동을 준다는 것이다.

선자의 손에 마지막으로 남은 작품은 김로경의 '새'와 김종숙의 '불시착' 그리고 최우영의 '생선'과 전진자의 '수목원'이었다.

먼저 밀려나간 시는 '새'였는데 시의 전반부가 거의 산문에 가까웠고 나머지 작품도 지나치게 설명에 의존하고 있었다. '불시착'은 당선작으로 밀어도 좋을 만큼 시의 구성과 '현대시의 미학'을 갖추고 있어 신뢰를 주었다. 문제는 같이 응모한 다른 작품들의 수준이 들쑥날쑥했다는 사실이다. 아깝지만 더 공부할 기회를 주는 수밖에 없었다.

최우영의 '생선'외 2편과 전진자의 '수목원'이 선자를 고민하게 했다. '생선'과 '수목원' 중에서 어느 작품을 당선시로 올려도 괜찮았다. 고심한 나머지 '생선'을 뒤로 젖히고야 말았다. "나는 젖은 나무 위에 누워 / 조용히 칼을 받아들인다....(중략)...갈라진 살 사이로 소금이 들어와도 / 나는 아프지 않다 / 아직 살아있다 / 세상은 아직 푸르다"는 절창이었다.

그러나 이 시를 쓴 응모자는 다른 작품에서도 시가 너무 '단형(單形)'이었다. 이 단형에 너무 맛들이면 우선 다른 시들도 지나치게 '애매함(ambiguty)의 미학'에 빠지고 시를 이끌고 나가는 에너지, 대범성, 추진력이 쇠하게 되어...시작에 노쇠현상이 빨리 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을 깊이 깨달을 때 '생선'의 시인은 '좋은 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최후의 당선시를 '수목원'으로 확정했다. 시에 대한 연치(年齒)가 만만치 않다. 우선 열린 세계관을 갖추고 있으며 시에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부여할 수 있는 힘과 배짱과 풍성한 정서를 갖추고 있어서 좋다.

이 한편의 시에서 선자는 그의 자연관과 인생관, 시적 대상인 사물과 세상을 참신하게(초록색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단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괴테나 셰익스피어에서 보듯이 위대한 시인은 그 나라 말의 문법을 지키고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당선을 축하드리며 더욱 용맹정진하기를 기원한다.


김준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