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단단한 거품 / 문경희

희라킴 2017. 11. 22. 21:09



단단한 거품

                                  

                                                                                                                 문경희

 

 한 연예인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잘 나가는 레스토랑을 몇 개씩 거느렸다는 그는 오래전 축농증 수술 후 재발이 반복되는 바람에 후각을 잃었단다. 냄새를 맡지 못하면서 어떻게 음식점을 경영하느냐며, 함께 출연한 동료 연예인이 불쑥 그를 악성(樂聖) 베토벤에 끌어다 붙였다고 한다. 듣는 베토벤, 가히 기가 찰 노릇이기는 하지만 어쩌랴. 일파만파로 매사 뒷북지기인 내 귀에까지 닿은 걸 보면 이미 모르는 사람 빼고는 다 아는 사실일 게다.  


 나 또한 비염을 오래 앓아 코가 제 구실을 못한다. 내게 있어 코라는 신체 기관은 그저 들숨날숨의 통로일 뿐이다. 사철 피고 지는 꽃향이라든가, 아침을 깨우는 쌉싸래한 커피향이라든가, 본의 아니게 코를 통해 누리는 소소한 낙을 반납한 채 살아가는 중이다.


 아주 드물게 컨디션이 허락하는 날, 설핏 코끝을 스치는 한 줄금 냄새에 얼마나 환호하는지. 내내 무향(無香)의 감옥에 갇혀보지 않은 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들 아킬레스건처럼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내 코의 불능은 그저 불능일 뿐이고, 그의 불능인 코는 찬사를 넘어 감동의 대상이라니. 세상이 참 공평하다 싶다가도 이럴 때면 한없이 불편부당해 보인다.


 억울하면 출세를 하라던가.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라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확대경을 들이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소한 말 한 마디, 의미 없는 행동거지마저 침소봉대라는 필터를 거쳐 심심찮게 검색어에 오르는 것을 보면 그들이 치르는 유명세라는 것이 대단하기는 한가보다. 그나저나 보이지 않는 눈과 귀를 사방에 심어 두고 살자면 얼마나 고달플까. 그들이 삶의 전부로 추구하는 인기라는 것이 과연 믿고 의지해도 좋을 것인지.


 잠시 사이에 그의 이름 석 자와 후각은 순위 밖으로 밀려나 버리고 ‘위쇼스키 남매’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 남매는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로 유명한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형인 라나 위쇼스키가 성전환 수술을 하는 바람에 형제에서 남매가 되어버린 이들이다. 모 프로그램에서 창조주의 지엄한 계율을 거스르고 남매로 살아가는 사연을 털어놓았다나.


 사람들은 환호했다. 세계적인 영화 제작자의 방한(訪韓)에 열광했고, 그들의 남다른 삶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천했다. 클릭이 클릭을 부르고, 대중의 관심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며 비슷한 제목의 기사들이 사이버 지면에 세를 부풀린다. 마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알아야 할 최소한이 바로 그들 남매라는 듯 앞 다투어 네티즌들의 알 권리를 자극한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볼 것 역시 엄청나게 많다. 굳이 망각은 축복이라는 거한 논조가 아니더라도, 순간순간 버겁도록 쏟아져 나오는 정보에 대처하는 대중의 결정적인 한 수()가 바로 건망증이 아니던가. 양은 냄비처럼 쉬 끓어오르고 쉬 식어버리는 대중의 속성에 비추어 추측컨대, 세간의 이목을 뜨겁게 달구며 지금 그들 남매가 찍고 있는 정점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할 게 분명하다.


 ‘강남 스타일’과 말춤으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의 대열에 오른 가수 싸이가 그랬다. 인기는 거품이라고. 거품에 집착하다보면 쥐도 새도 모르게 ‘훅’ 가는 수가 생긴단다. 날아오르는 것도 순간이지만 곤두박질치는 것도 순간이라는 말이다. 더불어 자신의 의지와 그다지 상관없이 만들어지는 상황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몇 번인가 제대로 ‘훅’ 가 본 경험이 있다는 그에 의하면 인기라는 거품에 편승을 하는 이들은 언제든 날개도 없이 추락할 각오로 무장을 하고 있어야 한단다.

 

 그럼에도 인기를 좇아 애면글면하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에게 인기는 곧 돈이요, 명예며, 삶의 이유가 된다. 인기에 울고 인기에 웃는다. 거품이야말로 그들을 지탱해주는 동아줄인 셈이다. 사직서를 품고 살아야 하는 샐러리맨처럼, 그들이 화려하게 껴입은 거품의 뒤안길이 생각보다 남루하다는 싸이의 고백이 새삼 짠하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무()의 공간, 거품.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기루처럼, 있다고 하여도 없다고 하여도 성에 차지 않는 것이 거품이다. 그런들 거품이 창출하는 효과는 결코 미미하지 않다.


 유명 연예인들의 때 아닌 부음이 낯설지 않은 요즘이다. 어제의 화사하던 그 또는 그녀가 뜬금없이 영정으로 내걸린다. 황망한 비보의 근원에는 거품의 농간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잘 나가던 한때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러지는 거품처럼 허무하게 세상에 안녕을 고하고 마는 이가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와의 사과랄까. 부글부글 자신을 괴고 오르는 거품에 탐닉한 죄과인 셈이다.


 문득 거품이 사라져 버렸을 때의 상실감을 그들은 견딜 수가 없다. 오로지 살맛이던 거품으로 인해 죽을 맛을 보게 되는 경우다. 그들의 급작스런 빈자리를 달구며 베르테르의 효과라는 또 하나의 거품이 성성하던 목숨을 도미노처럼 무너뜨린다. , 그리고 우리라 이름 하는 인간이 세상에서 누리는 삶 자체가 어쩌면 거품인지도 모른다며, 남은 이들로 하여금 잠시나마 눈 먼 욕망에 경각심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배보다 배꼽’이라는 말로 거품의 속성을 경계해온 조상들의 혜안이 새삼 우러러 보이는 순간이랄까.  


 거품에 대한 성토로 시끄러운 세상이다. 고가의 명품도, 현대인의 발인 자동차도, 자동차를 달리게 만드는 기름도 온통 거품투성이란다. 입고, 먹고, 마시는 낱낱의 생필품에도 거품이 감지된다고 한다. 마치 바이러스처럼 처처에 스며든 거품은 허영이 되고 자존심이 된다.


 그렇고 그런 나를 탈출하기 위해 너나없이 거품의 대열에 합류하기를 원한다. 머리로는 퇴치의 대상이라 여기면서도 심정적으로는 숭배할 수밖에 없는 필요악으로 굳건하게 터를 잡는 것이 거품이다. 증권가도, 부동산도 거품이 사라지지 않고서는 터널처럼 어둡게 이어지는 불황의 타개책이 없단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에서 불순물을 걷어내듯, 본질을 겉도는 거품을 덜어내고서야 살맛으로 충천한 세상을 만날 수 있으리라 그들은 장담을 하지만 만만하게 물러날 거품이 아님을 모르지 않는다.


 일이랍시고 벌여 놓고, 나 역시 거품의 무게를 절감하는 날의 연속이다. 내수 시장이 빙하기에 들었다는 뉴스의 헤드라인이 허언이 아님을 나날이 목격하게 된다. 돌덩이처럼 무겁게 현실을 내리누르는 거품의 위력을 버티기 위해 얄팍해진 지갑이나마 꼭꼭 걸어 잠글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처럼 지갑에 자물쇠를 채우면서도 열리지 않는 지갑을 절망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모순의 와중에 나의 오늘이 있다. 부글부글 내 속에서도 거품이 인다. 이 단단한 거품을 한방에 날려 줄 산산한 바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가난한 하루를 털어내고 사무실을 나선다. ()에는 이라고, 거품은 거품으로 다스려질 지도 모르는 일. 종일 달구어진 속으로 하얀 거품을 포말처럼 일으키는 맥주라도 한 잔 시원스레 쏟아 부어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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