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사자신충지충 / 맹난자

희라킴 2017. 8. 9. 20:41

 


사자신충지충


                                                                                                                                 맹난자

 

 사자신중지충獅子身中之蟲은 '사자 몸 속에 있는 벌레' 라는 뜻이다. 이것은 불서《범망경梵網經》에 나오는 이야기다. 동물의 왕인 사자를 감히 어느 짐승 따위가 해하려 들며, 감히 먹어치울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자가 죽어 시체가 되면 그 시체를 말끔히 먹어 치우는 것은 외부에서 온 짐승이 아니라 사자, 제 몸 안에서 생긴 벌레라는 것이다.

 부처님은 불교의 교단도 이와 마찬가지로 불법이 파괴되는 것은 어떤 외도나 천마天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체 내부의 소행, 즉 불교를 믿는 신자 스스로가 교단을 파괴한다는 비유를 들어 이를 경계한 말씀이었다.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 해를 끼쳐 내부의 붕괴를 가져오는 사람은 '사자 몸 속의 벌레'처럼 자체 내부의 구성원이라는 뜻이다. 어찌 교단에만 적용되겠는가? 하나의 작은 단체, 또는 한 기관, 나아가서 국가라는 조직체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거대한 사자를 누가 감히 해하려 들겠는가? ​

 천여 년 동안 번영을 누려 왔던 대로마제국, 한 작은 농경 공동체에 불과했던 로마가 이탈리아의 주인으로서, 다음은 서방 세계의 지배자로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여 번영을 누려 왔던 로마야말로 인류는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영원한 로마'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던 대로마제국도 어느 날 서서히 붕괴되고 말았다.

 '로마제국은 왜 멸망했는가' 를 두고 세계 석학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슈펭글러는 모든 문화는 일종의 생명 주기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궁극적으로 사멸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규정지어 말했다.

 그런가 하면 토인비는 "로마제국은 창건되기 이전에 이미 몰락하게 되도록 운명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창건은 지연시킬 수는 있어도 영원히 가로막을 수 없는 일종의 복원, 즉 로마제국이 잠시 구현시킨 것, 그리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희랍 사회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유에서 그러한 문명이 미리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언급했다. 무서운 필연성이다. 이탈리아의 고전학자인 풋조는 로마의 폐허를 이렇게 읊었다.

 …이 카피톨리노 언덕은 그 옛날 로마제국의 수도이며 지구의 성채이고, 모든 나라 제왕들의 외포畏怖의 대상이었으며 수없이 반복된 개선식 참가 병사들의 발자국이 새겨지면서, 무수한 국민들로부터 획득한 전리품과 공납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 세계적인 위관偉觀 그런 곳이 이 얼마나 쇠미하고 변모한 모습인고! 이 무슨 파괴란 말인가. 일찍이 전승자戰勝者의 행렬이 지나가던 가도는 이제 포도 넝쿨로 뒤덮이고 원로원 의원들이 앉았던 벤치는 오물이 끼얹어져 있다.

 그야말로 역사 무상無常이다.

 ​ 《로마제국의 쇠망사》를 쓴 영국의 기번은 로마제국의 몰락을 이렇게 설명했다. 로마 몰락의 역사는 단순하고도 명백한 것이다. 우리들은 로마제국이 왜 몰락하였는가를 질문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오래도록까지 존속하였는가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거대한 구조물로서의 제국은 그 자체 무게의 압력에 눌려서 우그러졌다.

 그에 의하면 로마제국 몰락의 원인은 제국帝國 제도 그 자체의 어떤 내내적인 것과 연관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외부의 침략에 의한 게 아니라 로마가 쓰러진 것은 내부의 균열에 의한 자체 붕괴라는 지적이었다. 어느 날 나는 ​《로마제국의 쇠망사》를 뒤적이다가 이 '자체 내부의 붕괴'라는 대목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 가정은 물론 작게는 한 개인의 운명까지도 그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제 몸에서 피어난 독이 마침내 제 몸을 깎아먹듯,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난 녹이 어느 날 내 마음을 병들이고, 내 눈동자를 흐릿하게 하고, 사지의 기운을 소모시킨 다음 영혼을 시들리어 서서히 스러지게 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마음의 안뜰을 검속할 필요를 그때 크게 느꼈다. ​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일 / 김희자  (0) 2017.08.17
하얀 소묘 / 서숙  (0) 2017.08.14
벼와 피 / 주인석  (0) 2017.08.07
8월엔 시그널 뮤직을 / 김애자   (0) 2017.08.06
팔월 / 서성남  (0) 2017.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