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술 취한 새우 / 염정임

희라킴 2017. 8. 3. 18:58



                                                    술 취한 새우 


                                                                                                            염정임

 

 

 어느 날 집에 배달된 광고지에 '술취한 새우의 축제'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새우가 술에 취하면 어떻게 될까너울너울 춤이라도 추는 것일까달밤에 술에 취한 새우들이 떼를 지어 군무(群舞)를 하며 축제를 여는동양적인 풍류가 넘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자세히 읽어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였다살아 있는 새우를 중국 고유의 술인 샤오싱에 담가놓으면 술을 마신 새우가 만취하여 잠이 들게 된다고 한다이때 새우를 건져서 끓는 육수에 넣어 익혀 먹으면 술맛이 배어 나와 아주 향긋하고 독특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격조 높은 요리를 어느 호텔에서 선보이고 있으니식도락가 여러분은 꼭 한번 오시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새우는 손님을 접대할 때나 식탁에 올릴 정도로 귀한 식품이기도 하지만어느 모로 보나 그 생김새가 바다의 군자(君子)럼 점잖게 생겼다. 입 양쪽으로 길게 뻗은 한 쌍의 수염이 위엄 있어 보이고 특히 그 뾰족한 머리 모습은 정자관(程子冠)을 쓴 것같이 생겼다더군다나 겸손하게 등을 구부린 모습이 마치 붉은 옷을 입고 상감마마 앞에 읍()하고 선 충신의 모습 같지 않은가무리를 지어 바다 밑을 다닌다고 하니 아마 신의와 예절에도 뛰어날 것이고이웃에 대한 사랑도 따스하리라그래서 옛날선비들은 우애의 상징으로 즐겨 새우를 묵화의 화재(畵材)로 삼아왔다.

 

 푸른 바다에서 자유롭게 떠다닐 몸이 잡혀 죽는 것도 서럽거늘미식가를 위해 술에 취한 채 자기도 모르게 죽어가다니 너무 가련한 일이 아닌가.

 

 사람들이 생명을 위하여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지혜가 발달하면서 보다 맛있고 몸에 이롭도록 요리법도 발달해왔고 식품의 범위도 넓고 다양해졌다복잡하고 섬세한 요리의 맛은 예술품으로 비견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 나라의 음식문화가 그 나라의 문화와 전통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중국이나 불란서 요리의 다양함이 그 나라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고미국은 내세울 만한 요리가 없는 것으로 그 문화의 전통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즈음 특히 건강식에다 미식(美食)의 욕구까지 겹쳐 자연스럽지 못한 방법으로때로는 잔인하게 생물들을 우롱하고 학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웃나라에서는 고기를 연하게 하기 위하여 소를 마사지해주고 맥주를 계속 먹인 다음 도살한다고 한다.

 

 또 추어탕의 한 조리법 중에는미꾸라지를 뜨겁게 끓이다가 찬 두부를 냄비 속에 넣으면 열에 못 이긴 미꾸라지가 두부 속에 들어가는데 그것을 익혀 먹는다고 한다살아서 꿈틀거리는 낙지를 먹기도 하고 태(속의 돼지새끼를 먹는다는 말도 들었다대만에서는 살아있는 원숭이의 뇌수를 꺼내 먹는다는 끔찍한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언제부터 이렇게 사람들이 이상한 음식습관을 갖게 되었는지아마도 살아있는 토끼의 간을 먹고자 한 용왕님으로부터 비롯 된 것이라고 해야 할까?

 

 자연식을 주장하는 분들의 말에 의하면인간은 원래 채식을 하도록 창조되었다고 한다그래서 곡식과 채소를 위주로 한 식사가 병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자연스럽고 바른 식사법이라는 것이다피를 깨끗하게 유지해야 병이 생기지 않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취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또 고기를 먹으면 피가 탁해져서 사람들은 탐욕과 흥분으로 들뜨고폭력적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산에서 수도생활을 하는 스님들이 채식을 하는 것을 보면 이와 같은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성자 간디는 20세에 채식을 맹세한 후에 평생 동안 그 맹세를 깨뜨리지 않았다고 한다그는 천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려고 노력했다특히 인간이 자신을 정화시키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모든 생물을 한 몸같이 생각해야된다고 했다.

 

 그는 소나 물소가 그 주인이 젖을 많이 얻으려는 욕심 때문에 갖은 방법으로 학대를 받는 것을 책에서 읽은 뒤로는 우유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맹수와 대결하기 위해서는 문명의 이기인 총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인간만이 가진 지혜를 이용하여 다른 작은 생물들을 이런 저런 방법으로 괴롭히고 죽게 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닭을 꼼짝도 못하게 가두어두고 불을 켜놓아 낮인 줄 알게 하여 계속 알을 낳게 하는 일꿀벌들이 애써 모아놓은 꿀을 훔쳐내고 설탕물을 갖다놓는 일 등.

 

 최근에 스웨덴에서는 동물복지법이 제정되어 동물의 권리가 인정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돼지를 끈에 묶는 것은 위법이닭을 좁은 우리 속에 가득 넣어 길러서는 안된다고 한다. 동물들이 부자연스러운 죽음을 하지 않을 권리도 거기에는 명시되어 있을 것이다.

 

 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의식은 당연한 것이지만 미식(美食)이 지나치다보면아름다움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진대 다른 피조물들과 이 땅 위에서 평화스럽게 공존해야 되지 않을까?

 

 그러나 나 역시 미식(美食)에 대한 욕구도 있고 '술취한 새우가 도대체 어떤 맛일까?'하고 슬그머니 궁금한 생각이 드니 이래저래 인간이란 모순 투성이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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