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향림 / 양성은

희라킴 2017. 7. 18. 17:51



향림 


                                                                                                                                양성은


 산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다. 포클레인의 사정없는 무위(武威) 앞에 산은 무기력하게 제 살과 뼈를 드러내고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었다. 몇 개의 중장비들로 평평하게 다져질 저 자리 위에는 편리한 무엇인가가 들어설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이런 참담한 배경까지 헤아릴 이가 있겠는가. 산 귀퉁이에서 나고 자란 짐승들이나 가끔 들여다보며 그리워할 것이다.


 한 작가는 새가 탄생하기 위해서 알은 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세상을 여는 일에 희생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오랜 시간 그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었다. 향림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을 때, 내 가슴에 있던 그 말을 파내버렸다.

 

 나는 향림에서 태어나 향림의 품에서 자랐다. 내 얼과 육의 모든 부분은 향림의 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온갖 나무와 꽃들로 가득 했던 그 숲이 격변하던 세상의 바람을 막아주었기에 내 결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었다. 향림은 모든 아이들이 가지길 원하던 비밀아지트가 되어주기도 했고, 열대어나 병아리, 길고양의 새끼 같은 연약한 생명들에게 터를 내어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향림은 이제 몇몇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향림은 사십여 년 정도 사람들이 많이 오가던 부산, 서면의 도로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여 아직도 향림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믿는다. 어쩌다 예전에 서면과 인연이 있었던 사람을 만나게 될 때면 향림을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게 된다. 누군가 향림을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어보일 때면 볼이 달아오르면서 심장이 벌렁거린다. 그 순간 향림의 축축한 흙내음을 느낀다.


 향림이 아직 존재하는, 기억의 공간에는 늘 아버지가 함께 계신다. 향림은 아버지의 평생을 담은 꽃가게의 이름이다.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난 아버지는, 그 시대의 많은 아버지들이 그러했듯이, 집안을 일으켜 보겠다며 무작정 도시로 나오셨다. 청년 아버지가 어떤 직업을 거쳐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기억의 시작점에는 이미 꽃집주인이 되어 계셨다. 아버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던 분이셨다.


 많은 사람들이 향림의 그늘 아래 머물렀다. 가게 뒤 납작하고 긴 단층집에는 몇 개의 방이 줄지어 있었다. 방의 주인들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빈 방이었던 적은 없었다. 둘째 고모네 가족, 셋째 고모네 가족, 작은 아버지, 막내 고모, 막내 외삼촌까지 향림에서 살림을 일구어 세상으로 나갔다.


 향림이 더 작은 나무였던 시절도 있었다고 들었다. 어머니가 시집오셨을 적에 향림은 작은 가게에 딸린 방 한 칸, 부엌 한 칸이 다였는데 그 작은 방에 식구들이 바글바글했다고 말씀하셨다. 숲을 이루기 전이라 많은 사람들을 보듬는 것이 쉽지 않았을 터인데 아버지는 한 번도 들어오는 이들을 마다한 적이 없으셨다. 힘닿는 데까지 부지런히 나무를 심어 숲을 키우시기만 하셨다.


 나무가 자라나고, 소출이 생겨나면서, 향림은 점점 넓어졌다. 작은 꽃가게 뒤에 작은 집으로 시작했던 향림은 세상의 흐름 덕분에 큰 숲이 될 수 있었다. 새 건물이 들어선 자리, 새 자리에 새 사람이 오는 날, 새색시가 부케를 던지던 날, 그 사람이 세상을 놓고 떠나는 날, 기쁘고 슬픈 모든 순간에 꽃이 함께 하던 시절이었다. 세상은 빠르게 발전했고, 꽃가게는 점점 번창하였다. 이사 나가고 한동안 공터로 남아있었던 뒷집 자리에 거대한 온실까지 갖추었을 때가 향림식물원이라는 이름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일학년 때에는 한의원 자리였던 옆집으로 이사를 갔었다. 아버지는 그 집의 정원이 있었던 자리에 새 가게를 짓고 우리 가족이 사는 이층집과 연결하셨다. 원래의 향림식물원 자리는 고스란히 주차장과 리어카 보관소가 되었다. 길 건너편에 백화점과 호텔이 들어서면서 생긴 변화였다. 꽃가게는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었지만 주차장은 번창하였다. 군식구도 없던 그 시절에 아버지는 잠시 허리를 폈고 처음으로 배달용 트럭이 아닌 자가용을 구입하셨다.


 지리상으로 부산의 중심, 교통만 조금 편리했던 서면은 점점 변해 도심의 기능을 삼킬 정도가 되었다. 주변의 낮은 집들이 하나 둘 사라지더니 새 건물이 하나 둘 세워졌다. 외각의 낡은 집들을 허문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중심가에는 큰 상가 건물들이 낡은 건물들을 슬그머니 밀어내고 있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부유한 소작농일 뿐이었다. 아버지가 옆의 집을 하나 둘 편입하여 영토를 늘릴 수 있던 이유는 한 주인 밑에서 꾸준히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었다. 일대의 땅은 모 일가의 소유였다. 원 주인이 노쇠하여 큰 아들에게 권력을 넘기자마자 개발의 칼끝은 우리 집으로 향했다. 그는 몇 달의 여유도 줄 수 없다며 빠른 시일 내에 집을 비워달라고 말했다. 우리 가족은 오랫동안 가꿔왔던 향림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늘 오가던 길을 지나다 우연히 향림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건설기계들이 서서히 긴 팔을 휘두르자 건물은 곧 먼지를 날리며 쉽게 허물어졌다. 아버지의 영혼으로 사십 년을 빚은 향림은 사십 분도 버텨주질 않았다. 빛이 쉽게 통과하도록 유리로 지어진 가게의 천장이 잘게 부셔져 내렸다. 뼈대들은 몇 번의 소음과 함께 고철덩어리로 변했다. 난간에 올라앉아 발을 까딱거리며 세상구경하기 참 좋았던 2층 테라스가 부서졌다. 책이 빼곡하던 책장과 소파가 놓인 꿈꾸기 좋은 거실도 사라졌다. 향림의 건너편, 반듯하게 꾸며진 호텔 화단 어디쯤에 엉덩이를 걸치고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얼마 후 향림의 자리에는 상가건물이 들어섰다.


 향림을 잃은 아버지가 무너지는 속도는 향림이 허물어지는 시간만큼 빨랐다. 갑자기 부치던 땅을 빼앗겨버린 소작농은 계획을 세우거나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당장 밥벌이의 무게를 버티는 것도 힘겹다. 아버지도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생각하셨을까. 아버지는 허둥지둥 몇 개의 사업을 시작했지만 번번이 실패하셨다.


 향림에서 쌓은 재화는 향림을 떠나자 곧 사라져버렸다. 급기야 경매가 들어오기 직전의 아파트마저 급하게 팔고, 다세대 주택의 월세방으로 쓸쓸히 옮겨갈 지경이 되었다. 아버지의 그늘은 좁아지다 못해 자신의 몸 하나 뉘일 공간도 없어져 버렸다. 그 즈음에는 아버지를 찾아오는 친척들도 없었다.


 막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에 합격할 때까지 아버지는 가슴에 돌을 지고 사셨다. 아직 책임이 남아있으니 한 번의 기회도 남아있을 것이라며 공부와 일을 병행하셨다. 씨를 심을 땅이 없어서였을까. 몸은 고되었지만 수확은 없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직장은 손해보험 설계사였다. 뱃속의 둘째아이를 위한 태아보험증권이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향림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회사에 등록된 아버지의 대리점명이 향림이었다. 그 일도 그리 오래 하시진 못하셨다.


 이루지 못한 소망은 응어리가 되어 아버지의 몸에 맺혀 버렸다. 그 무렵 아버지는 몸이 회복되면 그늘진 월세방을 떠나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신 후에야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셨다.


 아버지의 그늘을 잃고 두 번째 맞이하는 이번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방학이 긴 두 아이의 그늘을 만드느라 분주한 와중에도 그리움은 때때로 찾아왔었다. 가끔 젊은 날의 아버지를 닮은 내 모습을 발견하는 날에는 온몸이 눅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를 더 살고 아버지 나이에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아버지의 마음이 자꾸 들여다 보였기 때문이었다. 쨍한 여름 볕 아래에서도 그 눅눅한 마음이 말려지지 않을 때면 아버지를 보러 갔었다. 며칠 전에도 그러했다.


 볕이 좋아 웃자란 풀들을 헤치며 산자락을 걸어 올라갔었다. 떼가 자리 잡지 못하고 땅이 듬성듬성 드러난 산소 주위에는 꽃나무만 빽빽하게 자라 있었다. 어머니가 봄에 둘러놓은 꽃나무 병풍이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둑해지고 바람이 불더니 빗방울이 떨어졌다. 공교롭지만 아버지 산소에 갈 때마다 매번 소나기가 내렸다. 비가 지나간 산소 주변으로 흙내음이 훅 치고 올라왔다.


 그때 향림의 문이 다시 열렸다. 가게 문을 열면 안에서 맴돌던 눅눅한 흙내음이 몰려나오던 그 시공간에 나는 서 있었다. 그 안에는 여전히 아버지가 계셨다. 아버지는 끝까지 향림을 놓지 않으셨던 모양이었다. 산소를 찾아가던 날마다 내린 소나기는 아버지가 보내는 초대장이었나 보다. 축축한 흙내음이 올라오는 모든 시공에 향림의 문이 있었다. 향림은 더 이상 서면 구석의 허물어진 터에 발이 묶인 지박령이 아니었다. 생사의 경계를 넘어 아버지는 마침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곳에 향림을 되살려 놓으신 것이었다. 향림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산은 무너지고 있었다. 문득 거기 둥지를 틀어 살아가던 짐승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어졌다. 어떤 이유에도 무너지지 않는 산이 있다고, 내가 그것을 보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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