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장 가는 길
김은주
길이 젖었다. 나누어준 우의는 몸속으로 들어앉지 않고 자꾸만 겉돌고 있다. 경내에 차려진 분향소에 사람이 지천이다. 생전 큰 스님의 그늘이 저리 깊었나 보다. 살아서 못다 한 설법이 이제 구름이 되어 모였다. 영정 안의 큰 스님은 평소 모습처럼 고요하다. 그 모습을 뒤로 한 채 열 명의 스님이 꽃상여를 멘다. 흰 장갑과 면 수건을 목에 감고 양말은 승복 바지를 얌전히도 모아 물었다. 바지가 모여 양말 속으로 들어가고 나니 단출한 고무신이 더욱 희다. 연꽃 상여는 비 탓에 머리에 비닐 고깔을 썼다. 앞서 구성진 염불소리가 나서고 그 뒤를 상여가 따른다. 오방색의 만장도 수없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나는 붉은 기 하나를 손에 쥐고 무리 속에 쓸려 떠내려가고 있다. 청죽 끝에 매달린 만장이 비에 젖어 무겁다. 만장을 매단 청죽은 금방 베어낸 듯 비릿한 죽 향이 코끝을 아득하게 한다.
다들 제 깜냥만큼의 무게를 등에 지고 살아가겠지. 다비장 가는 길에 안개가 짙다. 빠름을 잊어버린 행렬은 환의 세계에 접어들은 듯 몽롱하기까지 하다. 몰려온 안개는 눈앞의 상여를 삼켰다가는 뱉어내고 내 다리를 지웠다가는 다시 그린다. 오고 감도 저리 찰라 일 것이다. 삶이라 생각하며 죽어라 잡고 있던 끈 하나가 툭 터져 솔밭 사이로 달아나고 있다.
다비를 위해 파 놓은 구덩이가 비에 젖어 질다. 구덩이 가장자리를 흙과 돌로 쌓아 올려 항용 돌담 같다. 흙은 돌을 물고 돌은 흙 안에 깊숙이 박혀 그 견고함이 말랐을 때 보다 젖어 있어 더 끈끈해 보인다. 맨 위쪽에는 기와를 돌려 마무리 했다. 죽음의 집이 완성된 것이다.
구덩이 안 젖은 흙 위에 두껍게 숯을 깐다. 이미 한번 제 육신을 소신공양한 숯은 가볍지만 조용히 만물을 태울 준비를 끝내고 있다. 꽃 두건을 버린 관은 붉은 옷을 벗더니 숯 위로 내려져 편안히 누웠다. 세속의 연을 자르고 행자 시절을 거쳐 고뇌의 면벽수행에 이르렀을 스님의 장삼 한 자락이 그 옆에 와 나란히 눕는다. 다들 혼자 왔다가는 길이지만 이승의 흔적 한 자락이 같이 동행하니 질척한 흙구덩이가 그리 비감해 보이지는 않는다.
법구 위로 새끼다발이 쌓여진다. 그 양이 엄청나다. 육신의 흔적 하나를 지우기 위해 며칠 밤을 새웠을지 모르는 행자스님들의 울력이 새끼 줄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비틀어 꼬아 내면서 손바닥에 전해졌을 아린 생의 맛, 텁텁한 짚 풀의 맛을 다 보았을 터이다. 생솔가지로 새끼다발을 덮고 나니 다음 생으로 건너가기 직전이다.
관을 버린 빈 상여는 비닐을 벗고 생솔 가지 위에 앉았다. 비를 맞으면서도 꼿꼿이 앉아 있는 상여는 지금 명상 중이다.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불길을 기다리고 있다. 허리를 곧추 세운 직립의 불길들이 정수리를 관통할 때까지 상여의 결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종례에는 한 점 바람이 되어 공중부양이 이루어질 때까지 명상은 계속될 것이다. 비와 불은 상극이다. 서로 생 하지 못하고 멸할지 모르나 오늘 만큼은 스님의 마지막 길에 든든한 도반들이다.
장죽 끝에 칭칭 옥양목을 동여맸다. 기름 담긴 대야에 장죽을 담근다. 마른 논에 물 스미듯 기름이 장죽의 척추를 타고 오른다. 기름 먹은 옥양목이 무거워 보인다. 비 보다는 농도가 짙어 보이는 기름은 전부를 태우고도 남을 듯 끈적거린다. 주지 스님 장죽에 거화가 이루어졌다. 상좌스님이 목 놓아 소리친다.
“스님 불 들어 갑니데이”
“스님 집에 불났습니데이. 얼릉 나오이소.”
장삼 깃에 여며진 목덜미가 붉게 핏줄이 선다. 길게 몸을 앞으로 빼고 있는 힘을 다해 외쳐 보지만 큰 스님은 아무 기척이 없다. 각혈하듯 두 번의 외침이 지나 세 번째로 갈 때쯤 상좌 스님 목소리에 축축히 습기가 베어난다.
돌 축 맨 아래 뚫어 놓은 구멍으로 불이 들었다. 그 다음은 양 사방으로 난 불 구멍에 제 각각 장죽이 불을 물고 들었다. 그리고 상여 정수리에도 꽃불이 일었다. 화르르 얇은 꽃 지(紙)는 한순간에 타오른다. 순간 상여는 어디가고 꽃 진자리에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돌 축 안에서도 살과 뼈가 분리되어 제 갈 길을 가고 있을 터이다. 불길은 비 탓인지 맹렬하지는 않다. 연신 매운 연기를 피우며 이승의 연에 미련이 많은지 미적거린다. 다만 그 풍경을 지켜보고 있던 무리들의 흐느낌만 뜨거울 뿐이다. 생전 옷 깃 많이 스친 중생일수록 뜨거움이 깊다. 상좌 스님 한 분이 흰 장갑 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흐느낀다. 늘어진 장삼자락에도 흰 고무신에도 젖은 흙이 올라붙어 무거워 보인다.
방하착의 순간이다. 빈 몸으로 떠나는 육신을 보며 사념과 망념을 다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빈 마음이 되지 않고서야 어찌 도제와 멸제의 순간에 이를 수 있을까. 모든 선(禪)이 탈속이라면 방하착은 탈속 이전 경지다.
비가 그치고 거센 불길이 돌 축을 무너뜨렸다. 불길이 잦아들고 보니 남은 것이라고는 몇 점 뼈 조각뿐이다. 가시지 않은 불길에 얼굴이 뜨겁다. 순간 어둑한 숲에서 나방 한 마리 날아들었다. 제 몸 타는 줄 모르고 남은 불길 위로 사정없이 날아든다. 한 치 앞을 모르는 미물이라 생각했더니 퍼덕이는 떨림이 큰 스님의 마지막 임종(臨終)할 것 같다.
사람이나 미물이나 이승에 왔다 간 줄 누가 알겠는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생(生)의 이면, 그 이면에 큰스님의 고단한 화두 간택이 있고 미물들은 탈피의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큰 스님이 남긴 삶의 요체는 살아서 온 몸으로 푸르게 흔들리다 그 육신 아낌없이 소신공양한 뒤 가뿐하게 저 세상으로 돌아오라는 당부의 말일 게다.
한 줌도 되지 않는 육신의 무게를 흰 항아리에 수습하며 내 등에 올려진 많은 상념도 조용히 내려놓는다. 어둠이 내리는 숲을 건너 큰스님 낡은 가사를 접고 이승을 떠나고 계신다. 머지않아 나도 가야 할 길이기에 길 눈 어두운 나는 그 길을 찬찬히 훑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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