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주변인과문학 신인문학상 당선작]
신문
김응숙
오후의 게으른 햇살이 느릿느릿 병실을 돌아다녔다. 그 위로 병원 특유의 알코올 냄새가 먼지처럼 떠돌았다.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는 낡은 배 같아보였다. 세월의 파도가 새겨 놓은 상흔이 온몸에 가득했다.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은 주름진 얼굴 위로 퇴색한 깃발처럼 늘어져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전처럼 회복되지는 못할 것을 예감하고 계신 것 같았다.
“집에 가거든 내 방 청소를 좀 해라, 신문이랑 책들도 다 버리고.”
병실 문을 나서려다가 나는 몸을 돌려 아버지의 침대로 되돌아갔다.
“신문도 다 버려요?”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를 않아. 머릿속이 하얘진 것 같아”
아버지는 헐렁한 환자복 소매 사이로 마른 옥수숫대 같은 팔을 들어 올려 어서 가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문 앞에 서서 아버지를 한 번 더 돌아보고는 병실을 나왔다.
젊은 날, 아버지는 검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아침마다 신문을 읽었다. 한껏 부푼 돛을 올리고 그날의 날씨와 조류를 살피는 선장 같은 모습이었다. 신문을 펼쳐놓고 세상의 흐름에 따라 좌표를 설정하곤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배는 곧잘 항로를 벗어났다. 먼 바다를 떠돌다가 좌초된 적도 여러 번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출항하지 못할 마지막 항구에 쓸쓸히 정박해있다. 그 늙은 선장이 지도처럼 손에서 떼지 않던 신문을 버리라고 한다.
동네에서 아버지는 김 선생님으로 통했다. 수시로 동네사람들이 찾아오면 보던 신문을 옆으로 밀쳐놓고 각종 신고서나 계약서 등의 대서를 해 주었다. 가끔씩 편지를 대필해 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선반 한 쪽에 놓아두는 검은 먹물이 사용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감사를 표하며 돌아가다가, 마당에서 서성이는 나에게 다가와 “너희 아버지는 아직도 놀고 계시냐?” 하고 슬며시 묻곤 했다. 아마도 글 잘 쓰고 박식하며 더구나 매일 신문을 읽는 사람이 왜 이리 가난하게 사는지 궁금한가 보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외할머니는 혀를 끌끌 찼다.
“너희 아버지는 먹물이야, 먹물.”
옛날 먹을 갈아 글이나 쓰면서 집안 살림에는 통 무관심했던 선비를 일컫는 말이지 싶었다. 궁핍한 살림에 고생이 끊이지 않는 딸을 바라보면서 어찌 사위가 원망스럽지 않았겠는가.
어쨌든 아버지의 먹물이 동네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몇 번의 직장생활과 어렵게 시작했던 사업들은 번번이 실패로 끝이 났다. 가정경제의 책임이 점점 어머니에게로 옮겨지면서 신문을 읽으며 소일하는 날들이 더욱 많아졌다.
아주 작은 실마리를 찾으려는 탐정처럼 아버지는 세세하게 신문을 읽곤 했다. 저녁 무렵 동네 일로 하루 품을 판 어머니가 돌아오는 기척이 들리면, 신문 한 귀퉁이를 찢어 연초를 말아들고는 마당으로 나가셨다. 그리고 노을 지는 먼 산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세상의 돋을새김에다 탁본을 뜬 것이 신문이 아닐까. 날마다 새롭게 돋아나는 세상을 받아드는 아버지였다. 하지만 신문 밖의 세상에는 좀처럼 적응을 하지 못하였다. 조류가 급변하는 바다에서 원하는 좌표에 도달하기에는 배에 실린 먹물이 너무 무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견뎌온 긴 세월동안에도 신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신문은 또 다른 아버지의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신문에 드러나는 세상과 우리네의 세상살이는 얼마나 다른가. 돋을새김의 아래에는 행간이라는 깊은 골짜기가 있다. 어쩌면 그 골짜기마다에 세상살이라는 무연한 강물이 흐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아버지의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쇠약한 몸을 뒤척인 흔적이 켜켜이 배어 있는 이부자리가 그대로 깔려 있었다. 약과 휴지, 손톱깎이와 효자손 같은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널려 있고, 책상 옆으로 가지런히 쌓여있는 신문이 보였다. 신문은 창문 아래에도, 장롱과 벽 사이에도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아버지가 보았던 신문을 펼쳐 보았다. 활자와 사진들로 가득한 세상의 탁본이 나타났다. 신문 어디쯤에 먹물로 찍은 아버지의 좌표가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남아 있을 터였다.
펼쳐진 신문에서 하얀 점으로 소실된 아버지의 좌표가 흐릿하게 보였다. 그곳에서 바라본 항구에는 곤고한 삶으로 하루하루 낮달처럼 사위어가는 아내와 밤하늘 별들처럼 초롱한 어린 자식들의 눈망울이 아른거렸을 것이다. 당당히 입항하지 못하고 좌표와 좌표 사이를 떠돌았을 아버지의 빈 배가 저만치 사라졌다. 신문지 위로 눈물 한 방울이 툭하고 떨어졌다.
나는 비닐 끈을 가져다가 들어내기 좋도록 신문지를 십자로 묶었다. 한쪽에 포개어진 신문지 뭉치들은 마치 주인을 잃은 이삿짐처럼 쓸쓸해 보였다. 이제 이 방에 신문이 쌓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나온 시절, 한때는 세상을 찾아 나섰단 아버지의 지도였고 때로는 도피처이었으며 누구보다도 마지막까지 친구로 곁에 남아있던 신문이었다. 신문을 들어낸 자리가 아버지의 부재처럼 휑하니 다가왔다.
오후의 늘어진 햇살이 창문턱을 넘어들어 방바닥에 사각형의 밝은 빛 그림자를 그리고 있었다. 그곳에 이제는 먹물이 증발해버린 아버지의 신문이 하얗게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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