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시흥문학상 수필 우수상]
숨비소리
송귀연
휘-이유! 휘- 이유!
이랑사이로 가쁜 휘파람소리가 들려온다. 콩밭 매는 할머니가 굽은 허릴 펴면서 내는 소리였다. 이랑 사이로 묻혔다 다시 일어서길 반복하는 모습이 꼭 자맥질하는 해녀 같다. 둥글면서 깊고 애절하면서 먼 소리는 맞은 편 산봉우리에 닿았다 메아리로 되돌아오곤 했다. 어린 나는 밭둑에 앉아 그런 할머니 모습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휘파람소리도 줄어들고 해가 서산마루에 걸릴 때쯤에야 김매기는 끝났다. 나는 준비해간 호야를 앞세우고 할머니 함께 어둑해진 들길을 걸어 마을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꽃다운 열다섯 나이에 할아버지와 혼례를 치렀다. 원삼족두리 차려입고 초례청 너머로 훔쳐본 신랑이 어찌나 준수하던지 내심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고 한다. 때문에 시조부모 자리끼 시중도 힘들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무거운 밥상을 들고 하루에도 수십 차례 샛문을 드나들었지만 신랑 얼굴을 쳐다볼 때마다 힘이 불끈 솟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할머니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잠수하는 해녀가 물 위로 떠올라 참았던 숨을 휘파람처럼 길게 내 쉬는 게 숨비소리다. 언젠가 제주 앞바다에서 떼 지어 물질하는 해녀들을 보았다. 물속에서 소라며 전복 등을 딴 해녀들이 물 위로 떠오르면서 내쉬는 소리가 해변을 가득 메웠다. TV에서 본 고래 떼 같았다. 고래는 바다 속을 헤엄치다 숨이 차면 물 밖으로 나와 크게 숨을 쉬고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숨비소리는 물속에서 참았던 숨을 내쉬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들숨과 날숨의 수많은 숨비소리가 있고 나서야 해녀들은 그날의 수확을 망태기에 가득 담아 물 밖으로 나온다.
해녀가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처럼 할머니 삶에는 가슴을 짓누르는 커다란 고통하나가 있었다. 술과 노름으로 증조부 때의 가산을 거의 탕진해버린 할아버지는 해방과 함께 예전의 부(富)를 되찾겠다며 현해탄을 건너갔다. 그때 할머니 나이 사십 대 중반이었다. 하나 뿐인 사위마저 데려간 할아버지는 세월이 흘러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하는 수 없이 집안의 권유로 작은댁 큰아들이었던 아버지를 양자로 들였다. 일곱 명의 손자손녀가 태어났다. 열심히 피땀 흘린 보람으로 그나마 남의 집에 밥 빌러가지 않아도 될 정도의 살림을 일구었다. 그러나 곁에 홀로 사는 딸이 어렵게 사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할머니는 아들 내외 몰래 적잖이 도움을 주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에 시누이까지 돌봐주는 할머니가 못마땅해서 엄마와는 자주 다퉜다. 그런 날 저녁이면 할머니는 오랫동안 잠을 뒤척이며 한숨을 푹푹 내리쉬었다.
망부석이 된 당신의 마음은 풍파 일어나는 바다 같았지만 겉으론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인자한 덕성은 근동 마을까지 칭찬이 자자했다. 남편 없이 자식들을 잘 키웠을 뿐 아니라 동네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일인 양 두 팔 걷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수십 년째 할아버지로부터 소식이 없자 주위에서 재혼을 권하기도 했다. 그러면 “이 무슨 소리고?”라며 심하게 역정을 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반드시 살아 돌아온다고 믿었다. 가끔씩 할아버지 얘기를 해줄 때의 할머니는 그 옛날 열다섯 살 연지곤지 찍은 새악시처럼 두 볼이 빨개졌다. 언제나 웃음으로 우리를 다독여주었지만 그 근심의 바다 속 수심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삼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일본에서 인편으로 할아버지 소식이 온다는 전갈이 왔다. 온 집안사람들이 사랑채에 모여 기대와 희망으로 들떠 있었다. 낯선 남자가 검정 양복 차림에 사각가방을 들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루 끝에서 기다리던 시선들이 일제히 그 사람을 향한 가운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알게 된 사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한낱 시골 촌부에 지나지 않았던 할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흘러 들어간 곳은 조총련 산하였다. 이념이 다르고 왕래가 자유롭지 못한 곳이란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때가 늦어 있었다. 할아버지와 고모부는 어쩔 수 없이 현지에서 새 가정을 꾸렸다. 할아버지 슬하엔 자식이 없었으며 젊었던 고모부는 자식까지 두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눈을 감기 전까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며 할머니 얘기를 자주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고모는 쓰러졌고 할머니는 긴 침묵 사이로 담뱃대만 땅땅 두드렸다. 밤색 가방 안에는 생전에 할아버지가 쓰시던 안경이며 낡은 옷가지가 몇 벌 들어 있었다.
어떤 위로도 태산 같은 할머니의 슬픔을 덜어줄 수 없었다. 우리 식구들은 혹시라도 할머니가 어떻게 될까봐 전전긍긍했지만 할머닌 의외로 태연했다. 둘러 선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돈벌어와 호강시켜준다며 옹서간(翁壻間)에 떠난 사람들이 남이 되어 돌아왔다는 둥, 진즉에 재혼을 했어야했다는 둥 안타까워했다. 지켜보던 나도 가슴이 먹먹했다. 그 날, 저녁상을 물리기 바쁘게 홍시 몇 개 품에 안은 채 고모네로 향하던 할머니 모습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토닥토닥 고샅길 멀리 사라지던 지팡이 소리는 할머니의 한숨소리처럼 오래 여운을 남겼다.
정정하던 할머니의 기력은 시나브로 눈에 띄게 쇠잔해졌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탓일까. 할머니는 자주 한숨을 내쉬었으며 그 소리는 심해처럼 깊고 아득했다.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처럼 남편 없는 힘든 삶을 견뎌온 당신은 할아버지를 가슴에 품고 끝내 그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죽으면 무덤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유언을 따라 주검은 한줌 재가 되어 동해바다에 뿌려졌다.
살면서 나도 수없이 많은 순간을 자맥질하듯 살아왔다. 정규중학교도 나오지 못했고, 그것 때문에 수없이 많은 차별을 받아야 했다. 아버지가 재산을 몽땅 털어 장만했던 식당이 남의 손에 넘어갔을 때는 언니와 함께 죽어버리자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할머니의 숨비소리를 떠올리며 칠흑처럼 캄캄한 순간들을 넘기곤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숨비소리를 간직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해녀들은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있고, 할머니는 할머니의 숨비소리가 있고, 나는 나대로의 숨비소리가 있을 것이다. 그 숨비소리로 저마다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다시 삶이라는 바다에 자맥질을 시도하고 있는지도.
방파제엔 흰 파도들이 물이랑을 이루며 밀려왔다 밀려간다. 가끔씩 할머니가 그리우면 이렇게 바닷가에 앉아 쪽빛 바다를 바라보곤 한다. 발 아래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꼭 바다의 숨비소리 같다. 할머닌 지금쯤 꿈에 그리던 할아버질 만나 이승에서 못 다 이룬 정을 나누고 있을까? 갈매기들이 대답처럼 날아오르고 수평선 너머에서 할머니의 숨비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휘-이유! 휘-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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