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하고 아린 맛
마경덕
눈으로 먹는 음식이 있다. 그 식당에서 파는 음식은 실물과 유사한 모형으로 전시되어 식욕을 부추긴다. 메뉴판에 있어야할 음식들이 이제 실물로 제작되어 식당 앞에 자리를 잡고 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웃고명을 얹어 겉모양새를 잘 꾸미는 것은 요리의 마지막 공정이다.
한때 외국에서는 음식 메뉴를 정물화로 그려 식당에 전시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보아온 정물화는 대부분 식당의 메뉴판이었다고 하니 단순한 글자보다는 모양과 색깔이 가미된 그림이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지금은 음식사진이 메뉴판에 나오지만 평면인 사진만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실감이 나는 입체형 모형을 만들었을 것이다. 시각으로 느끼는 맛은 구매와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 커피, 케이크 등 토핑은 기호식품에까지 다양하게 이용된다. 대부분 색깔이 화려한 것들로 장식을 하는데 음식과 대비되는 색으로 시각적 효과를 얻는다.
썩지 않는 음식, 음식모형은 실제의 음식과 흡사하다. 좀 더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모형, 진품과 구별되지 않는 모형은 고가로 거래된다. 그만큼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 시인이 공을 들여 시를 짓는 것처럼 지금도 누군가는 식당이 아닌 작업실에서 요리재료를 선별하듯 물감을 고르고 모형을 짓고 있을 것이다. 음식모형은 약품냄새가 나는 가공(加工)의 맛, 딱딱한 플라스틱의 맛, 말랑한 염화비닐의 맛이다. 이것들은 화려함 뒤에 숨어있는 냉정하고 쓸쓸한 맛이다.
토핑이 화려한 음식모형들
먼저 눈으로 맛을 본다
견본見本이란 최상의 재료로 최대의 효과를 노린 것,
주문한 음식은 진열장의 모형과 다르다
상술은 과장되기 마련이다
주방에서 조리사가 요리를 하는 동안, 지금도
누군가는 작업실에서 PVC로 음식을 제작한다
주걱 대신 붓을 들고
한 톨 한 톨 밥알을 채색하고 상추 한 잎의 싱싱한 숨소리와
섬세한 잎맥을 복사한다
그것은
찌개를 끓이고 밥을 짓는 것보다 더 긴 시간,
오븐에 굽고 본드를 바르고 코팅을 하는 동안
붓끝에서 재구성된 식감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물감으로 미각을 조립하는 전문가의 감각은
요리사보다 더 사실적이다
앞은 치밀하고 뒤는 허술한 모형들
부패를 모르기에 맛과 향도 없다
실물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저 음식모형에 한 덩어리 허기가 도사리고 있다
-「음식모형」전문
거꾸로 자란 콩나물, 콩싹이 3cm쯤 자랐을 때 뒤집어 키운 콩나물이다. 물구나무로 자라 피가 거꾸로 돌아 생긴 맛이다. 아삭아삭 씹힌다. 질기지도 않고 무르지도 않아 마침맞다. 딱 씹기에 좋은 맛이다. 이 맛이 날 때쯤 콩나물은 국밥의 재료로 사용된다. 저항력이 생겨 농약도 치지 않았다니 그렇다면 오기가 섞인 맛이다. 식감이 좋은 어린 속살의 맛은 미처 자라지 못한 통증의 맛이다.
전주콩나물국밥집
다른 집보다 천 원이 비싸다하니 주인아주머니 벽에 붙은 광고지를 가리킨다
콩싹이 3cm쯤 자랐을 때 뒤집어 키운 콩나물이란다
키가 3cm라면 아직 세상물정도 모르는 어린것들인데 피가 거꾸로 돌도록 물구나무를 세우다니,
재배장치로 발명특허를 받은 콩나물은 잔뿌리가 없다. 그것은
아직 첫발도 떼지 못했다는 것
거꾸로 자라
저항력이 생겨서 농약을 치지 않았다는데, 그 저항력을
뒤집어 보면 악착스럽고 모질어졌다는 말
살기 위해 오기를 부렸다는 말
입도 떨어지지 않은 것들, 얼마나 독심을 품었으면 뿌리조차 썩지 않으랴
콩켸팥켸 뒤섞여 머리만 키운 콩나물
아삭아삭 씹힌다
피가 거꾸로 돌기 시작한다
-「거꾸로 콩나물」전문
식당여자가 담아온 꽃잎 한 접시, 꽃등심은 접시 위에서 꽃처럼 붉게 피었다. 짐승이 몸으로 피운 꽃이다. 제 몸에 몇 근의 꽃이 있다는 걸 소는 알고 있었을까? 죽어서야 꺼내볼 수 있는 목숨으로 피운 꽃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 이 꽃을 피우기 위해 소는 얼마나 땀을 흘렸을까. 문득, 입에 씹히는 고기가 눈물 맛이다. 이것은 죽은 소의 감정, 나의 감정과 일치한 꽃등심은 아무래도 생전에 소가 감당했던 노역의 맛이다. 마지막 외마디 울음처럼 아린 맛이다. 불판에서 지글지글 향기를 피우던 피꽃이, 내 몸으로 천천히 지고 있다.
둥근 접시에 꽃이 활짝 피었다
칡꽃에 앉은 뻐꾸기 울음도 핥아먹고
기름새, 깔다리, 억새를 흔들던 바람마저 우물우물 삼키고
논두렁 밭두렁 들판도 뜯어먹고
붉은 살점 사이 하얀 꽃망울
목다랭이를 하는 순간,
꽃은 순을 틔웠을 것이다 부리망을 쓰고 느릅나무 코뚜레로
지고 온 산그늘을 부려놓으며
꽃망울은 점점 여물었을 것
길마를 매던 고단한 등에
몇 근의 꽃을 피우기 위해 평생 되새김질로 살아야했다
등에 꽃을 심고
쓰러진 소여,
죽어야 피는 꽃이었구나
선지처럼 붉은
꽃잎 몇 점
눈꽃처럼 스르르 꽃이 녹는다
지글지글 향기가 피어오른다
-「꽃등심」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