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블루시티 거제문학상 은상]
바람의 영토에 들다
문경희
미완의 그림처럼, 자그마한 어촌마을은 여백으로 넘쳐난다. 붉고 푸른 지붕이 퍼즐처럼 아귀를 맞추고, 연초록 색감의 야트막한 언덕은 키 작은 인가들을 넉넉하게 아우른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 대신 푸른 바다를 마당삼아 거느린 탓일까. 여백이 키워놓은 마을의 배포가 여간 두둑해보이지 않는다.
따끈한 햇살이 소박한 화폭을 분주하게 오간다. 시시각각 채도를 달리하는 태양의 화법에 그림 속의 풍경들이 소리 없이 뒤척인다. 내내 펄떡이던 숨결을 한 템포쯤 늦춰주는, 묘한 위력의 그림 앞에서 잠시 망연해진다.
해금강의 길목, 거제 도장포마을이다. 바다와 길이 만들어내는 절경 속을 한참 동안 달려왔다. 간만에 ‘빨리’를 벗어 놓고 가능하면 느리게 해안길을 에둘러 온 참이다. 내비게이션은 연신 길이 아닌 길이라고 경고성의 신호음을 보냈지만 여행의 묘미는 길을 벗어나는데 있노라고, 운전석에 앉은 남편을 부추기며 마을 어귀에 다다랐다.
이곳에도 시차라는 게 존재하는 것일까. 하오의 생동감으로 충만한 바깥세상과 달리, 작은 어선들은 제 그림자를 물속으로 드리우며 나른한 오수에 빠져 있다. 철썩이는 물살에 뒤꿈치를 적시며 정물처럼 그저 멎어 있을 뿐이다. 꾸덕꾸덕, 뜨거운 시멘트 바닥에서 바다의 기억을 말리고 있는 멸치 떼들만 분주했던 새벽을 말없이 증언해준다.
바다라는 광활한 출렁거림을 마주하고 선다. 물은 생명이 탄생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란다. 태초의 어느 순간, 생물체가 살아 꿈틀거릴 수 있었던 것은 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말이다. 인간 또한 어머니의 자궁, 그 이전으로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오르노라면 마지막으로 만나지는 것이 물이지 싶다. 넘실대는 바다는 결국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발원지이며, 모태라는 결론이다. 하여, 바다를 앞둔 사람들의 표정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생기로 그득 차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바람의 야성이 거들지 않고서야 어찌 제대로 된 바다라 할 수 있으랴. 푸르다 못해 감청으로 짙어진 바다 속에는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바람 한 줄기가 심어져 있었던 게 아닐까. 깊디깊은 수심으로 속내를 감추다가도 물 위를 불어가는 또 다른 바람의 기척에 본색을 드러내며 천길만길로 세상을 평정하는 씨바람. 철따라 대양을 횡단하는 물고기의 군무도, 이따금 허공을 용솟음치는 바다의 포효도 그 바람이 부리는 농간일 게다. 요조한 숙녀의 치맛자락 같았다가도, 일순 삶과 죽음을 재단하는 망나니의 무지막지한 칼날이 되는 바다, 그 예측불허를 켜는 손이 바람이었는지 모른다.
‘그곳에 가고 싶다! 바람의 언덕’
마을의 끝자락, 우뚝 선 안내판의 글귀가 바람결에 몸을 실은 쪽빛 머플러 같다. 구속도, 속박도 없는 무중력의 세상을 안내하는 화살표처럼 바람체의 글씨는 선동적이기까지 하다. 당장이라도 일상이라는 고삐를 풀고 바람의 꽁무니를 따라 나서야 할 것 같다.
바람의 주소지를 찾아, 언덕으로 향한다. 나무 계단을 한 칸씩 오를 때마다 바다 너머의 바다가 성큼성큼 일어선다. 눈으로 들어온 바다가 가슴으로 켜켜이 쟁여지는 기분이다. 이대로라면, 나도 출항의 깃발을 높이 올리고 어디든 떠날 수 있겠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고작 두어 시간 거리에 이런 영험한 곳이 있었던가 보다.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거추장스런 수인사 따위는 가차 없이 생략해버린다. 바람의 위세는 차라리 완력에 가깝다. 머리카락을 헝클고 옷깃을 풀어 헤치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챙 넓은 모자까지 접수하겠노라 엄포를 놓는다. 대뜸 멱살부터 쥐고 흔드는 인사법이 당황스럽지만, 바람의 영토에 들기 위한 신고식이라면 이 정도의 수모쯤이야 못 견디랴. 사람도, 바다도, 나무도 바람의 지엄한 계율에 따를 수밖에 없는 곳, 비로소 바람의 언덕을 실감한다.
자유라 이름하고 불어가는 저 난만한 기류. 말과 소리와 생각을 벗어 놓고 침묵의 피정에 들었던 바다가 바람을 업고 분연히 일어선다. 거칠 것 없이 들이치는 바람의 보법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통을 틔워 준다.
영화 ‘타이타닉’ 속의 아름다운 청춘, 로즈와 잭의 로맨틱 무드까지야 욕심내랴. 그러나 거제의 유명한 바람만은 포기할 수 없겠다. 가슴의 빗장을 열어젖히고 바람이 불어오는 곳, 시리도록 푸른 바다에 주파수를 맞춘다. 내 안에 숨겨진 부레가 있어 좀 더 유연하게 세상을 헤엄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며, 바다를 품은 바람을 양껏 들이마신다. 나와 바다와 바람이 삼투압을 하듯 속엣 것을 아낌없이 주고받는 이 순간, 나도 잠시 바다가 되고 바다를 불어가는 바람이 된다.
삐거덕삐거덕.
그런 내가 가소로웠는지, 언덕바지의 풍차가 육중한 날개에 속도를 붙이기 시작한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하여 부정할 수 없는 존재, 바람. 풍차는 노련하게 바람의 실체를 증언하고 나선다. 아니, 따지고 보면 풍차야말로 바람이 아니고는 스스로를 증명할 방도가 없는 처지다. 앙상한 네 날개에 투명한 바람의 옷을 걸치고 온몸으로 자신을 외치기 위해 고독한 기다림을 이어왔을 게다. 그에게 바람은 바람(願)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겠다.
바람을 향한 바람(願)이 낯설지만은 않다. 어쩌면 그것이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을 것이다. 역동의 바람으로 밑불을 놓으면, 이미 오래전 정박의 닻을 내려버린 내 안의 바람도 결코 한 곳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뜨거운 속성을 기억해낼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부산하게 일상이라는 무게를 떨어내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나만의 나를 외친다. 수없이 떠나지만 그보다 더 자주 돌아오게 만드는, 집이라는 안전장치가 있는 한, 잠시 낯선 바람과 질퍽하게 놀아난다한들 금기의 빨간불을 켤 필요까지야 있으랴. 휴(休)라는 방점을 찍고, 보이지 않는 바람의 궤적을 좇아 바다보다 더 먼 곳으로 출사표를 던진다.
거친 바람의 노래가 귓전을 때리는, 바람의 언덕에는 사람도 표표히 불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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