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센서 / 오정순

희라킴 2016. 10. 25. 19:07




                                                                                                                                             오정순 


 친구는 나를 센서라고 부른다. 멀리서도 물체를 감지하고 가벼운 신호음을 내는 기능적 특성이 나를 닮았다고 한다.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먼저 알아채고 준비하는 나를 자신과 다른 특성을 가졌다고 이해하기보다 자신에게 없는 기능을 가졌다고 이해하는 편이다. 결코 수더분하고 어진 느낌이 들기보다는 민감하고 예리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리 싫지는 않다.

) -->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대로 풀어가며 살아야 마음이 편하다. 세월이 가면서 어떤 이는 예지력이 발달하고 어떤 이는 암기력이 발달한다. 그 친구는 외우는 기능이 뛰어나서 내가 감히 따라갈 수가 없다. 그래서 서로 어울려 지냈을 것이다. 다른 기질이 매력으로 작용하여 서로 이끌렸으며 다른 것들의 조합으로 조화를 이루어 오래도록 잘 지냈다. 공감의 기회는 적어도 상호 보완의 관계에 놓이면 상생할 것이기에 서로 다른 점을 긍정적으로 이해한다.


 한데 센서란 단어가 단백질과 연합되어있는 단어를 발견하였다. 단백질센서연구소다. 이곳 연구진이 혈액으로 노화 정도를 측정하는 칩을 개발했다는 소식이다. 총칭 노화로 표현했으나 동맥경화, 당뇨 등에 걸릴 위험도 사용자가 자가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한다. 왠지 내 몸 속의 모든 것이 비밀스럽게 진행되다가 병을 달리하는 편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다.


 연구팀이 발견한 내용은 노인혈청과 청년혈청의 고밀도지방단백질(HDL)이 서로 다른 모양에 착안하였다. 각기 다른 연령대별로 비교분석한 결과, 노화될수록 단백질이 부러지는 현상이 늘고, 이에 따라 전하량이 변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얼굴이 변하는 것은 핏속부터 변화가 와서 얼굴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혈청까지도 변한다는 게 노화인 셈이다.


 어디 젊어지는 것이 혈청의 모양새뿐이랴. 기억은 종종 끊어지고, 감각은 흐려지고, 속도는 느려지는데, 이러한 속의 사정이 겉으로 드러나서 피부가 탄력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오래 입어서 윤기가 없고 탄력을 잃은 스웨터 같은 피부가 연상된다. 아직 눈치가 빠르고 총기가 있으며 피부가 탄력이 있다면 노화가 덜된 사람일 것이다. 생각이 말랑말랑하고 수용능력이 크며 환경이 바뀌어도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다면 그 또한 혈청이 젊어서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단백질 센서라는 이름이 맞는 것 같다. 드러난 것도 앞서 읽지 못하는데 혈관에 숨겨진 혈청을 꺼내 보는 눈을 가졌으니 신기할 뿐이다. 500원짜리 동전 3개 크기인 이 칩은 극미량의 샘플이나 시료만으로도 건강진단이 가능한 화학적 처리장치라고 한다.


 맞지, 센서가 둔한 사람은 온몸을 보고 만져도 모를 수 있는 상황을 센스가 민감한 사람은 주먹 쥐는 정도를 보거나 양미간이 살짝 꿈틀거리는 모습을 통해 속내를 읽어버리지. 말이 달라도 말을 믿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반응한 변화를 읽지.

) --> 

 센서가 유연하게 작동하게 하려면 꾸준히 에너지를 공급하고 무리하지 않게 작동하며 먼지가 끼어 장애를 받지 않도록 관리를 해야 한다. 나는 센서라는 별명을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날마다 두 가지 신문을 읽고 밑줄을 그어가며 현실에서 멀어지지 않으려는 감각을 단련한다. 옆지기 남편과 다른 색으로 밑줄을 그으며 서로 다른 견해를 나눈다.


 우선 신문은 현실을 호흡하는데 가장 좋은 매체가 된다. 취재한 기사 중 가장 독자에게 궁금증을 덜어줄 내용을 골라 실으니 객관성을 확보하고 검증된 내용이라 인용하거나 상상으로 확대해 나가는데 재미가 있다. 문장에는 군더더기가 없는 게 특징이다. 최첨단 과학 정보며 역사 속을 뒤져 잊혀져가는 것까지 잊을 만하면 골라다가 감칠맛 나게 정리하여 들려주는 역할을 한다. 최고의 정보 경쟁을 하는 탓으로 독자는 마냥 즐겁다. 증거 없이 강조했다가는 탈이 난다.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은 철저히 독자의 몫이니 센스 있는 독자는 울림이 깊은 기사 내용에 대해서는 환호를 하고, 잔인한 세태의 보고에 대해서는 진저리를 치더라도 신문은 전하는 몫으로 끝난다.


 지금 내 책상에는 밑줄을 그은 신문조각이 13개나 쌓여 있다. 수필재료가 되는 것을 골라 그날그날 문장화하여 두기 때문에 웬만한 청탁원고가 밀려들어도 거절은 없다. 기사가 내게 와서 어느 정서를 건드리거나, 주관의 차이를 말하고 싶거나, 미래를 예측해보거나, 좀 더 깊이 파고들어 확대해보는 재미를 날마다 누린다.


 누가 날마다 나와 이렇게 진지하게 소통하고 대화를 나누며 친교를 맺을 것인가. 노트북 앞에 앉으면 스크랩한 신문조각이 기다리고 있고, 소파에 앉으면 중간 중간 접힌 책들이 내 손을 기다린다. 이들이 내 감각기관인 센서에 기름을 치는 것들이며 칼 가는 숫돌과 같은 역할을 맡는다.


 종종 광고의 카피가 신선하다. 어느 책은 머리말이 멋지다. 때로는 사진으로 처리한 기사도 좋다. ‘명저 산책은 고전을 다시 읽는 것 같은 즐거움을 안겨준다. 아무리 잘된 문장도 이미지를 보는 것과는 다르다. 보기 좋고 먹기 좋은 가사 반찬이 한 상 차려지면 나는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는 독자이다. 젓갈같이 짭쪼름한 귀퉁이의 한 줄이 나에게 보배가 될 때가 있어서 샅샅이 훑는 편이다.


 식욕이 왕성하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이며 독서욕이 왕성하다는 것은 센서의 기능이 아직 좋다는 증거이다. 운동을 하며 비우고, 글을 써서 비우며, 먹으니 매일 먹어도 맛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피는 아직 젊은 것 같다. 속을 꺼내 보지 않아도 겉으로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약은 저리 가라하고 따뜻한 물은 어서 오라고 한다. 끈적한 관계보다는 묽어서 흐르는 관계를 택한다.


 어제로 보낸 것들에 되도록 매이지 않기로 하고, 다가오지 않은 내일 일 때문에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기로 한다. 바로 내 앞에 놓은 것들 중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줄여가기로 한다.


 12월에 센서 점검하였으니 1월부터 풀가동이다. 바깥이 추우니 안이 차분하다. 4월까지 가기가 지루하면 중간에 풍년화 피기를 가다릴 것이니 센서의 삶, 이로써 족하리.


 고장 나기를 바라지 않아도 고장 가능성은 열어둔다.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한 구호이므로 고장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생각해둔다.


 거안사위(居安思危)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센서의 센스라고 나는 생각한다.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타는 무릎을 꿇는다 / 마경덕  (0) 2016.10.26
균형잡기 / 심인자  (0) 2016.10.25
하얀 낙타 / 김정화  (0) 2016.10.24
높드리 / 류영택  (0) 2016.10.24
작은따옴표 / 심인자  (0) 2016.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