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 조각
민명자
새벽 네 시, 컴퓨터를 켠다. 불빛 따라 모기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와 모니터 화면에 앉았다가 앵~ 소리를 내며 공중을 선회한다. 천리를 가지 못할 이 작은 물것은 제가 앉은 자리, 날아오르는 자리가 세상 전부인 줄 알지 않을까.
아파트 밖에서는 갖가지 소리들이 뭇 존재의 움직임을 알려준다. 삐~익 삐리리릭, 잠들지 못한 새 한 마리가 날카로운 장단음을 내며 정적을 가른다. 그 소리에 잠에서 꺴는가. 왜왜왜왜 왜~, 홀연한 매미 울음이 물음표로 들린다. 큰길에서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소리, 누군가 술에 취해 아파트 앞을 지나며 고래고래 부르는 노랫소리가 13층 꼭대기까지 올라와 메아리처럼 허공을 맴돌다 흩어진다. 고요한 새벽에 들리는 소리는 유달리 가깝고 크다. 마치 "나 살아 있어요.' 하듯, 존재의 깨어있음과 생명의 파동을 알려주는 소리들이다.
한낮의 소요(騷擾)와 한밤의 고요를 껴안은 새벽은 고독해서 막막하고 고독해도 행복한 모순의 시간이다. 제 상처를 핥아내는 들짐승처럼 치열한 소요 속에서 겪어야 했던 소외와 갈등을 스스로 달래고 꿰매는 자아는 고독해서 막막하다. 그러나 세상의 잡다한 관계에서 벗어나서 고요 속에 머물며 오롯이 홀로 있음에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는 자아는 고독해도 행복하다.
새벽은 어둠과 빛에 한쪽씩 발을 담근 무경계의 시간이다. 새벽은 그 시공간에서 빛의 세계로 이동하면서 존재들의 역사를 쓴다. 건너편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신축공사장에서는 전조등을 켠 대형 트럭들이 줄지어 건축자재를 실어 나르기 바쁘다. 한밤중에 문을 여는 도매시장에서는 상인들이 지금 대낮같이 백열등을 밝히고 흥정하는 소리로 새벽을 맞을 것이고, 어느 먼 바다에서는 어부들이 집어등(集魚燈)을 밝히고 그물 끌어올리는 소리로 새아침을 열 것이다. 땅 속 어두운 곳에서는 풀과 나무의 뿌리들이 한껏 수액을 빨아올려 몸을 키울 것이고, 작은 벌레들은 빛나는 생명의 완주를 위해 꿈틀거리며 기어 다닐 것이다. 또 저 높은 밤하늘에서는 여객의 꿈과 고뇌를 실은 비행기가 불빛을 깜박이며 창공으로 난 길을 날아갈 것이다.
새벽은 어렴풋한 실루엣과 함게 온다. 내 아버지는 가족의 밥을 위해 희붐한 새벽에 집을 나섰다. 나의 볼에 닿는 아버지 입술의 감촉 때문에 가끔 눈을 뜨긴 했지만 어린 나는 그 시간에 잠들어 있기 일쑤였고 어머니는 대문 앞에서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루를 열었다. 아침밥상에 아버지는 거의 매일 부재중이었다. 밤 근무가 잦앗던 내 남편은 박명(薄明)의 골목길로 새벽안개를 묻히고 들어올 때가 많았다. 남편이 좁은 골목 쪽으로 난 안방봉창을 톡톡 두드리거나 그 앞에서 큰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나는 눌렸던 용수철이 튕기듯 나가서 작은 한옥대문의 빗장을 열었다. 그가 귀가할 때까지 안방전등을 끄지 않았으며 깊이 잠들지 못했다. 남편은 귀갓길에 집안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그렇게 그 시절은 되돌아가 착지할 수 없는 시공 저편으로 흘러갔다. 이제는 퇴임을 한 그의 새벽잠은 달고 나는 종종 이 시간에 깨어 내 민낯과 만난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 혹은 남편과 내가 겪어온 수천수만의 새벽, 그 어슴푸레한 영상들이 오늘 우리 가족의 안위를 지키는 뒷심이 되었다.
이제 내가 있는 여기 이곳에는 동이 틀 것이고, 어느 먼 땅 저기 저곳에서는 땅거미가 기웃기웃 어둠을 향해 발걸음을 서두를 게다. 내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저 우주 밖, 누군가 천안(天眼 )을 가진 이가 있어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잇는 나를 본다면 모니터 앞을 날고 있는 저 모기 같아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광대한 우주 앞에서는 늘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와 다를 바 없고 창해일속과 같은 존재이니 무엇을 안다고 함부로 나댈 일 아니다.
혹여 전지전능하신 분이 계셔 '네게 세상사를 꿰뚫는 능력을 부여하겠노라.'하신다 해도,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제발 그 힘을 거두어주소서'하고 손사래를 쳐야할 일인지 모른다. 언감생심 그런 과욕을 품을 생각도 없거니와, 어차피 보통사람으로 태어난 내가 그런 능력을 조금 가진다 해도 세상을 구원할 힘 같은 건 없을 터이니 근심만 늘어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지근에서 만나는 존재들의 마음결이나마 제대로 헤아릴 줄 아는 독심술 정도라며 얼른 '네'하고 받아도 좋을까.
어느새 동이 훤히 텄다. 푸른 어둠 속에서 어렴풋한 실루엣에 잠겨 있던 물상들이 선명하게 자태를 드러내고 수목들은 아침바람에 이파리를 떤다. 갓난아이의 갓 씻은 얼굴처럼, 새벽은 그렇게 새날과 새달과 새해를 열고 와서는 수억의 얼굴을 가진 미지의 시간들을 부려놓는다.
나의 새날도 다시 열렸다. 세상은 다시 한낮의 소요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나는 여전히 탄생과 소멸을 거듭하는 시간 속에서 뭇 존재들과 접속을 시도하면서 불가사의한 세상이치를 읽으려 헤맬 것이고, 소요 속에서 고요를 탐하며 내 생의 행간을 메워나갈 것이다. 내일도 오늘처럼 내 안의 나를 만나고 순한 마음으로 심연을 채우려는 도로(徒勞)도 끝내 놓지 못하리라. 순응과 거부 사이를 오가며 몸과 마음을 통과하는 시간의 작은 조각들이 모여 내 생의 도형을 그려나갈 것이다. 만상(萬象)과 함께 새벽 한 조각의 품에 안겨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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