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지우고 싶은 점 하나 / 허창옥

희라킴 2016. 8. 30. 16:59



지우고 싶은 점 하나

 

                                                                                                                                      허 창 옥

 

 거울을 들여다보면 지우고 싶은 점 하나가 있다. 뺨 한쪽에 엷은 멜라닌 색소가 팥알만한 넓이로 침착(沈着)되어있다. 날마다 거울을 보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하다가 어느 날 문득 눈에 띄었다. 얼굴에 하나 둘 생기는 잡티쯤 그저 그렇거니 하고 마음 편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도 거울을 볼 때마다 여전히 신경 쓰인다.

 

 보람이 엄마가 처음 약국에 들렀을 때 나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반쪽이 검푸른 반점으로 덮여 있었다. 상담을 하면서도 나는 눈 둘 곳을 찾지 못해 당황하였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스스럼없이 나를 대하였다. 그런 그녀는 어딘가 품위가 있어 보였다. 내면에서부터 푹 젖어서 배어나오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나는 차츰 마음을 빼앗겼다.

 

 하늘이 칙칙하게 내려앉은 썰렁한 오후였다. 마른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다니는 바람처럼 마음이 스산했다. 때마침 들른 그녀에게 녹차 한잔 나누기를 청했다. 우리는 우연히도 동갑내기였다. 결혼을 해서 만삭이 되었을 때 그녀는 딸을 낳고 싶었다고. 다행히 그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녀는 자기 얼굴을 처음 인식한 것이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며, 사춘기 시절의 좌절감도 결혼 적령기 때 겪었던 수모도 이제는 다 뛰어넘었노라고 했다. 보람이와 보배가 해맑은 얼굴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마음이 넉넉해지면 겉으로 보이는 결함에서 자유로워지는가 보다.

 

 눈이 아닌 가슴으로 심연의 거울을 유심히 본다. 수많은 점들이 여러 가지 빛깔로 물들여져 있다. 사람은 누구나 지우고 싶은 점 한두 개는 가지고 있으리라. 잘못 생각하고 행하여서 돌이 킬 수 없는 회한으로 남은 점, 남에게 입힌 상처, 보람이 엄마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아픔으로 가슴속에 시커멓게 침착된 점 따위의 크고 작은 얼룩들을 지니고 있으리라.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마음속의 점들을 더 뚜렷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랑하지 못해서 생긴 점, 미움을 키워가면서 만든 점들의 넓이와 두께가 감지되었다. 교만 때문에, 욕심 때문에, 허영 때문에 생긴 점도 있다. 나는 이제 그 점들을 하나하나 지워 나가고 싶다. 백만장자가 된 것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사각 원고지를 메워 나가면 점들은 서서히 퇴색 되리라.

 

 글을 쓰면서 나를 정화시키고 싶다. 이제까지 내가 살아온 삶의 깊이와 폭을 돌이켜본다. 정화 작업이 수월하지는 않으리라. 죽을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물거나 오히려 늦가을의 고엽(枯葉)처럼 살아온 만큼의 얼룩으로 더 지저분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음속의 점들을 지워 나가는 작업이 글을 쓰면서 통증으로 다가올 것임이 분명하다. 지향하는 바와 실제로 행하는 것 사이의 괴리 때문에 나는 무척 괴로워하게 될 것 같다. 누구와 조금이라도 마음이 상하면 그것이 켕겨서 전전긍긍 해 왔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은 도저히 참지 못했다. 억울한 말을 들었을 때는 어떻게든 해명하였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의 점들이 생겨났으리라. 작은 일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한다. 놓여나는 자유를 얻기까지 수양이 부족한 나는 뼈아픈 성찰을 해야 한다. 나는 벌써 아릿하게 통증을 느낀다.

 

 꽃이 피고 무서리가 내리기를 거듭하는 동안에 내 인격의 결함은 내 마음속에 무수히 많은 점들로 가라앉을 것이다. 그 점들을 지우기 위해서 나는 또 끊임없이 글을 쓰게 되리라. 이러한 수업으로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면 고통이 차츰 줄어들어서 넉넉한 마음이 되어 질까. 그때는 얼굴에 새겨진 많은 점들도 연륜의 빛깔로 기꺼이 받아들이게 될까. 거울을 들여다본다. 아직은 점 하나가 눈에 거슬린다. 그것은 아마 내 마음속에 지워야 할 점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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