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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 곽흥렬

희라킴 2016. 8. 10. 12:29

 


수필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곽흥렬


   ‘수필은 비전문적이어서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다.’  

   수필에 대한 이러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시도 마찬가지고 소설도 마찬가지 아닌가. 누구든지 시를 쓸 수 있고, 소설을 쓸 수 있으며, 그리고 세상에 내놓을 수도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런 일련의 작업을 못 하게 말릴 권한은 아무한테도 없다. 단지 항시 문학적 완성도만이 문제라면 문제일 따름이다.  

   또한 본래부터 누구는 비전문가(여기서는 정식으로 등단 절차를 밟지 않은 아마추어를 가리킴)이고 누구는 전문가인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다 비전문가이다. 치열하게 갈고 닦으면 얼마든지 비전문가도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비전문가의 시나 소설 작품이 전문가의 그것보다 반드시 수준이 떨어진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따라서 유독 수필만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는 것은 심히 못마땅한 일이다. 다만, 수필이 여태껏 그런 폄하를 받아 왔고 지금도 그런 깎아내림으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것은, 몇몇 지각없는 지난 세대의 수필작가들이 저지른 치명적인 자격지심의 결과이다. 수필을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며 자의(字意) 그대로 자리매김 시킨 그들의 생각 없는 뜻풀이가, 천형처럼 따라다니는 족쇄가 될 줄이야. 이것이 급기야 형식이 자유로운 글로까지 확대 해석 되었으니, 스스로 무덤을 판 꼴이 되고 만 셈이다.  

   ‘무형식의 형식’이란 역설적 표현만 해도 그렇다. 일정한 형식이 없으니 소나 개나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형식이 없으니, 뒤집어 생각하면 얼마나 쓰기가 어려운 글인가. 만일 뚜렷한 형식이 주어져 있다면 그 형식에다 적당히 꿰어 맞추면 된다. 이것은 오히려 수월한 일이다. 회화에서 말하는 ‘무기교의 기교’란 것이 최상의 기교를 뜻하는 표현임은 누구든 인정하리라. 그렇다면, 무형식의 형식 또한 최상의 형식이라 말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줄 안다. 이것은 불교식 표현을 빌리자면 법열의 경지이다.  

   덧붙여, 우리 자신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 독자들에게 지금까지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 주었다면, 그것은 수필이 본래부터 그런 장르이어서가 아니라 수필 쓰는 사람들이 그런 인식을 갖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수필가란 이름을 단 많은 사이비작가들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별다른 사유나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마구 주절거려 놓는 까닭에, 독자들의 눈에 시답잖게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창작 강의를 하다 보면 언제나 보고 듣고 느끼게 되는 점이 있다. 그것은, 처음 수필을 공부해 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면 하나같이 수필을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인 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한결같이, 배우며 차츰 알아 갈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수필이라는 호소를 한다. 이러한 경우만 보아도, 수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충분히 확인하고도 남는다.  

   무릇 좋은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체험을 어떻게 의미화 하여 완성도 높은 문학작품으로 형상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여기서 체험과 사유를 어느 정도의 비율로 얽어 짤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물론 절대적 기준이야 있을 수 없을 터이지만, 앞엣것과 뒤엣것이 대략 3 대 7 혹은 4 대 6 정도로 배분되었을 때 좋은 수필이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요사이 문예지에 발표되는 수필작품들을 보면 대다수가 그러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 같다. 자랑인지 넋두리인지, 그저 자신이 겪은 시답잖은 신변잡사들만 잔뜩 늘어놓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 채 덜 여문 생각 몇 줄 넣어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어물쩍 봉합해 버리기 일쑤이다. 이러니 수필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라며 욕을 얻어먹는다. 따라서 그런 항간의 평가는 어쩌면 자업자득인지도 모르겠다.  

   수필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라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줄 때, 수필이 옳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필 쓰기를 목숨처럼 아끼는 치열한 작가정신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세야말로 수필이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의 자존을 지키는 길이다.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는 호락호락한 장르가 아니다. ‘시는 울면서 들어가서 웃으면서 나오지만, 수필은 웃으면서 들어가서 울면서 나온다.’라고 한 여러 문인지망생들의 푸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이는 그만큼 수필다운 수필을 쓰기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수필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다. 그러나 진정 수필다운 수필은 아무나 쓸 수 있는 시쁜 글이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