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壇上은 바람이 차다
허세욱
내 나이 겨우 대여섯 살 때부터 제삿날이면 지방을 모신 제상을 향하여 꾸벅꾸벅 절을 했다. 다시 초등학교를 들어가선 철없는 식민지 국민이 되어 거기 신단을 향해 아침마다 절을 했다. 해방 후 초등학교를 나오고 중학교를 다니는 조회 때마다 교장 선생이 서 계신 연단을 우러러 보았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그 단상의 이야기가 지루해선지 단하의 우리들은 자오르기 일쑤요 심지어 입을 삐죽거리기도 했다. 더 자라서 머리가 큰 뒤, 단상을 보는 일은 늘었으나 좀처럼 우러러 듣는 일이 줄었다. 어쩌다가 뙤약볕 아래 손뼉을 치는 일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내 마음과 연단 사이는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럴수록 저 높은 연단은 굿을 하는 무대로 보였고, 무대에서 그 모든 것들은 왕왕 그날로 끝이 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연단은 휘황했다. 오색 테이프가 펄럭였고 젓대도 크게 울렸다.
단壇은 흙으로 쌓아올린 축대였다. 설문說文은 제단祭壇이라 했다 뿐만 아니었다. 맑은 선비나 무인들이 모여서 회맹會盟하는 곳이었다. 끝내 천지가 장상將相을 제수除授하고 제왕이 즉위하는 영광과 신성의 높은 자리였다.
이러한 연혁 말고도 무릇 생물은 높은 곳을 향하여 기어 오르는 본성이 있는가 보다. 담쟁이는 나무를 타다가 지붕을 오르고, 나팔꽃은 울타리를 타면서 대문을 쳐다보고 거미마저 처마 끝에 그물을 치고 하늘을 나는 나비를 잡는다.
글쟁이도 땅바닥만 갈 수는 없나 보다. 애써 추천을 받거나 현상에서 입상하는 것을 등단登壇이라 했다. 말하자면 글을 써서 높은 축대를 오르는 일이니 굳이 비유한다면 장상에 오르고 제왕에 등극하는 일에 상당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른바 등단하는 일이 요즘 너무 흔해졌다. 늦가을 진부령 막장에다 줄줄이 코를 꿰어 매달아 놓은 황태나 늦 봄 영광땅 처마밑에 새끼줄로 촘촘히 얽은 굴비 두름에 상당했다. 세상에 그 많은 월간 · 계간 · 반년간 · 연간 등의 무대에 더구나 새 시인· 새 수필가들이 꾸역꾸역 올라가고 있으니 아뿔싸, 단상이 비좁지 않을까?
문단의 단상에는 두 가지 사람들로 붐볐다. 하나는 글을 쓰려고 등단하는 사람들, 또 하나는 문단에서 용을 쓰려는 사람들, 신인들은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사방을 너울거리고, 잠룡潛龍들은 물속에 잠겨서 자기중심의 회맹을 노리고 있다. 어느 날 단상을 점거하는 날 잠룡은 당장 용두가 되고 용두는 투구를 둘러쓴 채 봉사와 단결의 깃발을 높이 들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아도 단상은 글 쓸 곳이 못 된다. 사람을 거느리고 조명을 받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그곳은 높아서 바람이 차고, 높아서 어지럽다. 용두에게는 천하를 호령하는 지휘대로 쓰일지 몰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내려올 수밖에 없는 영광인 것이다. 그곳은 지면보다 높아서 바람을 막는 어떤 장벽도 없는데다 열 사람의 눈초리와 열 사람 손가락이 집중되는 곳이다. 춥고 휑한 데서 어찌 붓을 들랴!
글을 쓰는 곳은 모름지기 낮고 한적한 곳이다. 그리고 혼자인 것이다. 용두가 된 사람도 글을 쓰려면 어서 단상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외로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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