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옥
김희자
삐죽 열린 대문 앞에 노을이 쓰러진다. 버려둔 집의 안채가 아슬아슬하게 살아 있다. 마당으로 들어가는 고샅길에는 웃자란 잡초들이 무성하고 그 집은 침묵 속에 가라앉아 있다. 늙은 감나무 한 그루가 버려진 집을 지키고 안방 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어 출입을 저지한다. 신문으로 바른 벽지가 누렇게 퇴색되어 글씨조차 희미하다. 먼지를 수북이 뒤집어쓴 신발 한 켤레가 마루 아래서 침묵의 세월을 차지하고 있는 폐옥이다.
흐르는 정적이 무섬증을 일으킨다.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다. 함께 길을 든 친구는 을씨년스럽다며 뒷걸음질을 치지만 나는 버려진 집에 호기심이 생긴다. 주인이 언제 떠났는지 알 수 없지만 태풍으로 지붕마저 날아가 버렸다. 한때는 이 집도 하루 세끼 끼니때가 되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정답게 밥숟가락을 놀렸던 피붙이들이 있었을 터.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마당과 뒤편을 오가며 숨바꼭질을 하고 먼지 풀풀거리던 집이었으리라.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집도 그 순간부터 늙기 시작하고 온기를 잃고 만다. 온갖 푸름으로 둘러싸여 있어도 인기척이 없는 곳은 음산하기 그지없다. 심장이 강한 척해 보지만 오스스 소름이 돋는다. 양쪽으로 길게 뻗친 처마가 내려앉은 걸 보니 문득 폐옥처럼 살아온 C여인이 떠오른다.
그날은 C여인이 이승에 마지막으로 머물던 날이었다. 다급하게 부르는 간병사의 목소리가 들려 병실로 달려갔다. C여인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말없이 누워 숨만 헐떡이는 여인의 낯빛이 창백했다. 입가에는 분비물이 흘러나와 있었고 입술은 새파랗게 짙어가고 있었다. 몸에는 산소가 부족하여 청색증이 나타났다. 한 시간 전, 병실을 돌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워낙 조용한 여인이고 평소에 눈을 감고 지내는 편이라 주무시는 줄 알았다.
호흡 상태를 보니 위중했다. 급히 산소통을 끌고 와 산소마스크를 씌웠다. 기도를 열어주기 위해 흡입기로 이물을 제거했다. 젖꼭지를 꼬집어보았지만 미간을 조금 찡그릴 뿐 반응이 없었다. 이름을 부르며 눈을 떠 보라고 했지만 이미 눈동자는 풀려 있었다. 나도 몰래 마스크를 찾았다. 그녀가 결핵 환자였던 것을 의식한 탓이었다. 나 역시 이기적인 사람이라 생각하니 부끄럽고 미안했다. 언젠가는 터질 일이라 예상은 했었지만 이리 급하게 닥칠 줄은 몰랐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여인과 두 시간 동안 사투를 버렸다. 산소량을 올리고 의식을 되찾게 하고 싶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운명은 준비되어 있었다. 상주라고는 아들 내외와 손자뿐이었다. 정을 내는 딸 하나라도 두었더라면 쓸쓸함을 덜했을 텐데. 외로이 지내는 모습을 엿볼 때면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오랜 병수발에 시달린 탓인지 통곡은커녕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침묵하며 굳어 있는 얼굴 뒤로 해방감이 언뜻언뜻 엿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 해방감은 내 눈을 피할 수 없었다. 한 생의 마지막 모습이 참으로 초라하게 느껴졌다.
지난 초겨울, 첫추위가 세상을 얼게 만들던 날 병원에서 만난 그 여인은 오래 방치된 폐옥 같았다. 요새 사람 같지 않게 몰골이 초췌했다. 몸은 마르고 결핵약까지 먹고 있었다. 머리는 삼발이고 머리에 난 상처는 언제 입었는지 얽히고설켜 손을 댈 수 없었다. 동굴 같은 방에 혼자 살아왔는지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삐쩍 마른 체구가 그 동안의 삶을 말해 주었다. 너무 오래 방치된 듯 살결이 메마르고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그녀는 인적 뜸한 어느 시골 산 밑 동네 외딴집에서 노루잠을 자며 노후를 혼자 보냈다. 엄동설한에는 사람들의 발길조차 뜸해졌다. 소식 뜸한 피붙이들을 기다리다 세월만 흘렀다. 마음만 먹으면 달려올 거리를 미라처럼 말라 가도 아무도 찾지 않았다. 폐옥처럼 방치된 세월이 그녀를 폭삭 늙게 만들었다.
무관심만큼 무서운 건 없다. 집도 사람도 매한가지다. 방치가 오래되면 폐허에 이른다. 폐결핵은 영양이 부족하거나 방치되었을 때 오는 병이다. 입원을 한 후에도 웅크리고 있는 걸 보면 불쌍했다. 직원들은 마스크를 끼고 돌보았다. 미열은 계속 이어졌다. 기저귀 값을 아끼려고 고집을 부렸지만 침대에서 내려설 기운조차 없어 기저귀를 차고 요양을 했다.
끼니를 멀리하고 약도 이불 속으로 숨겼다. 대체 무슨 병인지 머리의 상처는 낫지 않았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 치료를 해도 헛수고였다.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했지만 보호자는 코빼기도 내보이지 않았다. 여인은 버려진 집처럼 고독했다. 무념무상으로 침대에서 세월만 갉아먹었다. 다행히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머물던 날에는 아들 내외가 다녀갔다. 가까워진 죽음 앞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들을 보았고 그 앞에서 점심을 다 먹었다고 했다.
묵언하며 단련된 슬픔도 그렇게 끝이 났다. 버려진 세월이 막을 내리고 하얀 시트로 여인의 육신을 덮었다. 여인은 버려두어 낡아 빠진 집처럼 고독했던 삶을 마감하고 안식에 들었다. 식어가는 육신을 실은 침대가 간호사실 앞을 지나갔다. 나도 몰래 눈자위에 뜨거운 것이 고였다. 버려져 있어 마음이 더 가던 여인이었다. 여인을 영안실로 보내고 푸르러 가는 대추밭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들녘에는 폭포수처럼 부서져 내리던 노을이 스러지고 있었다.
C여인의 생을 뒤로하며 폐옥의 대문을 나선다. 대문 앞에 쓰러진 저녁을 감나무 잎들이 한 장씩 펴 마당으로 넘겨주고 있다. 이 폐옥에도 휴식을 위한 초저녁 그늘이 툭툭 쌓이고 있다.
-<수필세계>(2015 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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