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마차
허세욱
어느 날 거짓말처럼 훌쩍 남쪽으로 이사를 나왔다. 생전 거기서 말뚝박고 살 줄 알았던 역삼동, 25년 전에는 장화 신고 다녔던 그 마을을. 최근 10년 동안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쇠바퀴들이 발광하더니만 결국 밀려나고 만 것이다. 구룡산을 뚫고 판교를 지나 형제산 저 남쪽 양지 끝까지 반나절 흔들리며 흔들리며 여기까지 왔다. 수지水枝라는 곳, 이름은 물 오른 나뭇가지라. 암 - (봄바람이 훈훈하겠지)
남쪽으로 서재를 앉혔다. 무언가 끄적거리다 고개를 들며 산 하나가 통째로 안긴다. 오던 날이 장날인가? 울긋불긋 산자락에 단풍들이 고함친다. 아무래도 잘못 내린 정거장 같았다. 턱을 괴고 한참 동안 두리번거리지만 먼 먼 타관에서 단아한 여인을 만날 때처럼 가슴이 설렌다.
창 너머로 기인 발코니, 발코니 앞에 하얀 철제 난간이 울타리인 양 뻗어 있다. 난간 아래로 작은 공원, 공원 건너로 시내, 시내 너머로 작은 옛 마을, 마을 뒤로 서서히 올라가는 안산이 있다. 높이야 고작 백여 미터겠지만 오선지를 방불케 대여섯 줄기의 능선이 동서로 뻗어 있다. 첫눈에 서쪽을 향해 늘어지게 쉬고 있는 황소다. 저-기 고삐를 죄고 일으키면 텁수룩한 목덜미로부터 넙죽한 등짝과 허리, 그 위로 살짝 가랭이를 걸치고 내 손바닥으로 철썩 엉덩이를 치고 싶다.
저 앞산에 누워 있는 황소라면 나의 둥지는 8층 높이 두둥실 달려가는 마차라면 좋겠다. 이 난간은 마차의 팔걸이요, 내 의자는 마차의 안을깨, 기인 채찍으로 휘휘 원을 그리면서 이랴 낄낄 소리치면 허리가 아프도록 달려가리라.
달밤이면 파란 안개 속에서 입을 꼭 다문다. 초저녁이면 호수처럼 자욱하지만 깊을수록 안산의 형체가 드러난다. 저 어깨와 저 정강이, 저 허리와 저 엉덩이, 때로는 비죽거리는 속살까지 보인다. 그때 우리 집 불을 밝히면 나의 마차는 야간열차로 바뀌고, 교교하게 으슥할수록 철마는 덜커덩거릴 것이다. 이윽고 서재와 발코니의 등불을 끄면 넓은 황야에 한 덩이 달만 동그마니 남을 때, 아- 나는 어느 천애天涯로 가는 마부인가.
저 산을 넘으면 수원이다. 6·25가 끝나고 대학을 다닐 때, 수원은 일 년에 서너 번 지나치는 통과역이었다. 그때마다 차창 밖으로 플랫폼에 비친 수원은 고물고물 졸고 있는 호롱불이거나 모락모락 부연 김 속에 길게 꿈틀거리는 가락국수였었다. 그렇게 방학이면 몇 번쯤 어두운 철로 위에서 만나는 수원인지라 내게는 아직도 낯선 타관이었다.
수지에 온 지 벌써 두 달이 가까워짐에도 아직 홀연히 와서 잠시 기류하는 휴양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것은 한 주일이면 사흘을 서울로 출강하는데 그때마다 휴양지서 서울 집으로 귀향歸航하는 느낌이다. 구룡터널을 지나면 거기서 낯익은 호프집과 시끄러운 골목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석양에 돌아갈 제면 다시 소풍을 떠나는 마음이다. 옛날 그렇게 멀었던 통과역 이웃에서 마차를 타기 때문일까? 날마다 소풍을 가서 가을을 소요하다가 땅거미가 내리면 주막으로 머리를 돌리듯 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그럼에도 내게는 턱없는 오만이 생겼다. 글쎄 내 눈앞에 잡힐 듯 보이는 저 누워 있는 황소를 나의 소유로 망상한 것이다. 곧 내가 사랑하면 나의 편이요, 곧 내가 이름하면 나의 소유라는 사고 때문이다. 한밤중을 밝혀 주는 보름달이나 새벽에 걸려 있는 그믐달은 더욱 그렇다. 그를 보는 사람이 적을수록 오직 나의 애정과 나의 관찰만으로 그 산과 그 달을 임대한 것이다. 더구나 황당한 것은 나의 마차마저 나의 소유가 아닌 것이다. 시쳇말로 나는 돈 몇 푼으로 빌려 사는 세입자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옛 시인은 우리를 역려(逆旅)에 머물다 가는 과객이라 했지만 차라리 기객(寄客)이라면 얼마나 다정하랴! 잠시 기류하고 기숙하는 곳이다. 과객이라면 휙 스쳐가는 그림자, 한눈 팔고 어느 집 울타리를 올라가는 나팔꽃을 보기에도 모자란다.
옛날 젊었을 때 셋방, 셋집으로 전전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혈기방장하고 자신만만했건만 집주인의 하찮은 표정에도 불안하고 불편했었다. 지금은 혈기점쇠하고 임대 기간도 한정되었건만 불안하거나 불편하지도 않은 채 되려 마차를 타고 있는 것이다. 이제사 타관살이에 이골이 났고, 이 세상 과객으로 그만치 관록이 붙은 것이다. 더구나 빌려 산다는 것, 그것이 빚으로만 생각되지 않는 것은 나도 누구에게 빌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내가 돈 몇 푼을 주고 소유한 것들을 우리는 구청이나 법원 등기소에 올려놓고 그 권리를 영원한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그것들도 우리들 이름 밑에 잠시 기류할 뿐이다. 우리가 소유했거나 임대하고 매매하는 그 모든 것들은 우리가 태어나면서 이 땅을 빌려서 벌인 사건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마차를 타고 말방울 울리며 저 서쪽 노을을 계속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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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1934~2010)님은 중국문학자, 시인, 수필가이다. 저서로는 <움직이는 고향>, <인간 속의 흔적>
<실크로드 문명기행>, <허세욱의 중국문학기행>, <배는 그만두고 뗏목을 타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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