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당선 수필

[스크랩] [2015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부문 금상] 꽃살문 / 김은영

희라킴 2016. 6. 11. 14:01

[2015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부문 금상]

 

 

꽃살문

                                                                                                                                         김은영

 

 

 어떤 아름다움이든 긴장을 요구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을까.

 

 그래서 긴장이 필요 없는 편안함과 미적 쾌감을 느끼고 싶다면 절집의 꽃살문 보는 일을 나는 감히 권하고 싶다. 문은 벽으로 차단된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장치다. 그렇다면 꽃살문은 신성한 부처가 있는 극락세계와 사바의 고통을 안고 사는 중생을 만나게 하는 문은 아닌가 싶어진다.

 

 전나무 숲 그늘을 지나 내소사로 가면, 화려하면서도 음전함을 지닌 매창 닮은 모란 꽃살문이 있다. 줄포의 수런거리는 갯벌에 활짝 피어 붉디붉게 농익은 모란이다. 소금기 절절한 바닷바람에도 지워지지 않는 붉음은 아름다운 외로움이다. 여염집 처자의 단아한 동정 같은 운문사의 솟을 민 꽃살문은 해거름 내리는 시간, 어린 수도승을 눈물짓게 한다. 옥빛보다 푸른 머리, 가슴 봉긋이 부푸는 설레임은 아닐까. 봄날 한가로운 바람에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격자 매화 꽃살문은 범어사가 제격이다. 분을 바른듯한 연분홍 꽃잎은 부끄러워도 하지 않는다. 허리 굽은 긴 소나무 숲을 오르면 사랑만큼 아름다움 꿈이 어디 있느냐며 첫사랑의 안부를 물을 만큼 당당하다. 자색 연꽃에 앉은 동자의 몸무게가 궁금한 성혈사의 꽃살문은 개구리와 물고기까지 덧댄 재미가 마치 한편의 우화를 읽고 있는듯 하다. 그 선명한 색깔과 아름다움의 비밀이 자뭇 궁금해진다.

 

 꽃살문은 대목이 불심 깊은 소목에게 맡겨 만든다. 재질이 단단하고 결이 부드러우며 향기가 온 방을 진동하는 붉은 소나무인 춘양목을 최고로 친다. 춘양목 중에서도 북쪽에서 100년이나 300년 정도 자라야 나이테가 촘촘해진다. 이것을 북 남풍 부는 쪽에서 다시 3년을 말려 4년째에 작업을 한다. 그런 다음 부식과 충해를 막기 위해 오방색으로 단청을 입힌다. 오방색 중에서도 부처의 세계를 의미하는 녹색은 석록이라 하여 제일 귀한 색으로 친다. 그래서 다른 색깔들이 다 벗겨진 뒤까지 가장 오래 남아 있다. 요즘 짓는 절집의 인스턴트 꽃살문에 비하면 오래 전에 보아 온 이러한 작업은 기술도 기술이려니와 정성이 없으면 만들 수 없다. 못 하나 치지 않고 꽃들을 피워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신기에 가깝다.

 

 소목과 대목을 다 거친 아버지의 꽃살문 작업은 늘 나를 설레게 했다. 숨을 참느라 침 넘어 가는 소리를 낼 적마다 아버지는 "숨을 쉬면서 봐라 뭐 대단한 거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손은 이상하리 만큼 부드러웠다. 끌과 사포와 밥풀로만 작업하는 탓에 다른 이들의 손바닥은 덜 깍은 턱수염 같았다. 춘양목 냄새 가득 베인 푹신한 아버지의 손바닥은 어린 내가 코를 대고 킁킁거리거나 볼에 부벼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공작석과 꽃무릇, 황토와 치자, , 옻으로 빻고 으깨어 내는 색깔들을 나는 좋아했다. 치마 끝단을 알록달록 물들이는 바람에 혼도 많이 났지만 물이 조금 빠진 다음의 색깔에 혼자 만족하곤 했었다. 절집 공사가 거의 초가을에 이루어진걸 보면 자연에서 얻는 색과 꽃들이 피는 아름다움을 그들은 체험으로 알고 있지 않았을까.

 

 이처럼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오랜 세월을 지키는 꽃살문은 바랜 색 만큼이나 신비롭다. 내게 꽃살문은 중풍 들어 힘없는 손을 가진 늙은 아버지다. 그래서 그 아름다움 앞에 서면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나고 마음에 평화가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처럼 가을이 은행잎 되어 떨어지는 날 생각나는 하나의 꽃살문이 있다. 가을 햇볕에 잘 익은 색깔의 이파리들을 모아, 창호지에 싼 다음 무거운 다듬잇돌 아래 말렸다. 이렇게 해마다 잎들을 모아 두었다가 새로 창호지를 바를 때 창살 중간마다 겹으로 붙여 발랐다. 그러면 응달에서 창호와 함께 빳빳이 당겨져 말린 꽃잎이 꽃살처럼 박혔다. 문틈으로 달빛이 비치는 밤에 바람 소리만으로도 수십 송이의 꽃들이 피어나던 기억을 차마 잊을 수 없다.

 

 이렇듯 저마다의 다른 색과 모양을 한 꽃살문은 우리들 가슴에도 분명 있으리라. 어떤 것들을 구분하여 열리고 닫히는지는 오직 자신만이 알뿐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보고 느끼고 행하는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을 모으는 마음의 꽃살문은 자신의 어디쯤 달려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본다.

 

 

 

김은영씨 "깨지고 지쳐 움츠리고 있던 글 관심에 감사"

 

바람이 불었습니다.

햇살이 간간히 묻어나는 길 끝에 늘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입보다 마음이 먼저 웃는 모습으로.

폭신폭신한 손으로 문을 만들고 집을 만들고 세상을 만들었지요.

제가 넘어졌다 일어설 수 있도록 폭신폭신한 세상 말입니다.

늘 누군가로부터 한없는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빚을 집니다. 오늘도 갚아야 할 빚, 한 짐 졌습니다.

깨지고 지쳐 숨죽여 움츠리고 있던 글에 관심 가져 뽑아주신 관계자님,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무 곳에나 훌렁 벗어 던지지 않고 다독여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이 없네요.

오늘,

사랑하는 가족들과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어야겠습니다.

 

 

심사평 "흘러가는 글 흐름 거침없고 군더더기 한 올도 없어"

 

 심사석에 앉는 순간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원고 무더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예심을 거쳐 본심으로 넘어온 작품 수는 무려 300여 편에 달했다. 눈의 혹사는 이미 각오한 바이지만 인기 공모전에 참여하는 자체가 보람이자 영광이란 생각이 들었다.

 응모작품들은 대체로 높은 수준이어서 읽는 재미도 솔솔했지만 취사선택해야 하는 고통 또한 만만치 않았다. 전반적으로 볼 때 문장을 다루는 솜씨는 우수했지만 캐캐묵은 가족사를 들추거나 들으나마나 한 뻔한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쉬운 작품들이 태반이었다.

수필도 이젠 기억의 갈피에서 끄집어낸 추억 한 토막에 칼집을 넣고 양념을 뿌려 맛을 내는 진부한 작업에서 벗어 날 때가 되었다. 남들의 눈에 쉽게 뜨이지 않는 소재를 잡아 무거운 액자 속에 끼여 있는 기존 형식에서 과감히 탈출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사유의 뜰의 평수를 넓혀야 하고 자신만의 빛깔과 향기를 피워 올려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호명해 주지 않는다.

 두 사람의 심사위원들이 장시간에 걸친 장고 끝에 어렵게 결론을 냈다. 금상 김은영의 '꽃살문', 은상 임인택의 '살구꽃', 서상의 '도깨비 바늘' 동상 유인석의 '윤달을 살며', 김지연의 '도시의 청안', 김경엽의 '아버지의 꽃' 등이다.

금상 작품인 '꽃살문'은 빛깔과 향기도 출중했을 뿐 아니라 전편을 통해 흘러가는 글의 흐름이 거침도 없었거니와 군더더기가 한 올도 없었다. 특히 내소사, 운문사, 범어사, 성혈사 법당의 꽃살문에게 '첫사랑에 안부를 묻듯 한' 유려한 문체는 작가의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한다.

 작가의 꽃살문 기억은 춘양목으로 꽃살문을 만들었던 소목장이었던 아버지에게로 넘어 간다. 아버지가 생각 날 때마다 웃음 속에 눈물이 범벅이 되는 꽃살문의 슬프도록 아린 기억은 다시 가을 창호지 속의 색색가지 고엽(枯葉)으로 옮겨 앉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그러다 끝내는 우리들 각자의 가슴에 각각 다른 문양의 색깔로 칠해진 아름다운 꽃살문이 되어 튼실한 돌쩌귀에 박히게 된다.

수필은 첫째 재미가 있어야 하고 재미 속에는 의미가 녹아 있어야 한다. 그것들이 모여 코끝이 찡해지는 감동으로 연결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은상 작품과 동상 작품들도 문장력도 좋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좋았지만 구성이 산만하거나 진한 감동이 없었던 게 흠이었다. 응모에 참여한 글벗들의 발전을 기대한다.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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