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당선 수필

[스크랩] [제5회 천강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거미/ 박동조?

희라킴 2016. 4. 20. 12:05

[제5회 천강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거미

 

                             / 박동조

 

 

스산한 가을바람이 종일 불었다. 오전 내내 거미 한 마리가 오르락내리락 줄을 엮기에 근사한 그물을 짜는 줄 알았다. 숲속 나무 사이에 높이 걸려있던 은빛 바퀴모양 거미줄을 기대했었다. 거미줄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얼기설기 엮어놓아 하루살이 한 마리도 걸릴 것 같지 않건만 거미는 지쳤다는 듯 꼼짝하지 않는다. 몰아치는 바람에 거미줄이 끊어질 듯 낭창거려도 여전히 미동이 없다.

 

병상에 누워 있는 남자도 기척이 없다. 순간 내심장이 멎는 듯하다. 얼른 다가가 귀를 대어본다. 하루살이가 날갯짓하는 소리만한 숨소리가 가랑가랑 들린다. 나는 깊은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가슴을 쓸어내릴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건 간병을 하면서 생긴 버릇이다. 걸대에 걸린 혈액 봉지에서 남자의 몸속으로 방울방울 피가 흘러들고 있다. 남의 피를 수혈 받지 않으면 목숨을 잇지 못하는 저 남자도 한때는 근사한 은빛 저택을 갖고 싶어 했다. 부자가 되어 아내와 자식을 호강시켜 주리라는 꿈을 꾸었었다. 병상에 누워 남의 피로 연명을 하는 시간이 오리라는 상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숲속에서 보았던 은빛 거미줄은 얼마나 근사했던가. 드높이 드리운 거미줄에는 거미보다 더 큰 나방 두 마리가 걸려 대롱거렸다. 송알송알 맺힌 밤새 내린 이슬이 나뭇잎 사이로 비껴든 이른 햇살에 보석인양 반짝였다. 보석으로 둘러싸인 저택의 가운데에서 여덟 개의 다리를 활짝 벌리고 먹이를 노리던 거미는 제왕처럼 당당했었다. 시 그르고 때늦어, 다른 거미들은 땅속으로 나무틈새로 몸을 숨기는 계절에 궁색한 거미줄 몇 가닥 엮어놓고 도르르 몸을 말고 있는 창밖의 거미가 가년스럽다. 딴에는 있는 힘을 기울여 한 공사였으리라 생각하니 가슴 속에서 찌르르 연민이 솟는다.

 

남자에게는 세상이 내 손안에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패기와 자신감으로 무서운 게 없었다. 사업체를 꾸리고부터 꿈은 이루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잡으려 다가가면 멀어지는 무지개처럼 꿈은 번번이 저만큼 달아났다. 그럴수록 마음은 바쁘고 몸은 분주했다. 빨리 꿈을 이루려고 달음박질쳤건만 매번 엇길로 들어서 막다른 골목과 부딪쳤다. 인생길에서 엇길의 특징은 한 번 들어서면 되돌아 나오기가 쉽지 않은 미로라는 것이다. 한 걸음을 내딛었다가 두 걸음을 물러서기가 예사였다. 남자는 그런 일이 되풀이 되고서야 세상은 해서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때는 이미 청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젊음이 사라지고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내려도 남자에게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가족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려는 마음은 도무지 땅으로 내려놓지 못했다. 그게 ‘조리전 주인 마음’인 것이 문제였다. 조리전은 장사가 되지 않는 점포를 일컫는 말이다. 현대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가게다. 그러니 마음에서 불이 나고 피가 바짝바짝 말라갔다. 그에게 세상이란, 나방과 곤충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숲이 아니었다. 단단한 아스팔트길과 콘크리트 건물로 우거진 정글이었다. 거미가 깨어나면 못다 지은 집을 마저 지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완성을 한다손 치더라도 근사한 집이 되기는 애초에 글렀다. 도시의 건물 모서리에 터를 잡은 것부터가 옹색하기 이를 데 없다. 잠깐의 햇볕조차 들지 않는 북쪽 벽이 아닌가.

 

바야흐로 계절은 가을의 끝자락이다. 길 건너에 마주보이는 옹벽의 담쟁이는 갈색이 짙어졌다. 한두 이파리는 하마 지고 있다. 방송에서는 내일부터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했다. 지상의 곤충들은 오늘 밤쯤 땅속으로 깊이 몸을 숨길 것이다. 거미줄에 닿은 소슬한 바람의 파동으로 추위가 다가오리라는 걸 알아챈 숲속의 거미도 은빛 저택을 비웠으리라. 콘크리트 건물의 칠 층 모서리에 주소지를 정한 저 거미는 어디로 몸을 숨길까.

 

남자가 잠에서 깼다. 거미로부터 눈을 돌린 나는 얼른 다가가 손을 잡고 손등을 쓰다듬는다. 무척이나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이다. 한때는 이 사람이 없으면 죽을 것처럼 사랑을 했고, 한때는 이 사람만 없으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과도한 열정, 과도한 보호가 힘에 부쳐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남자와 나를 이어주는 자식이란 줄이 나를 당겼다. 나는 한 발짝도 줄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이제는 이 사람이 없으면 정글 같은 세상과 맞설 자신이 없다. 이승과 저승의 기로에서 지금 그는 어디로 가는 신호등을 기다리는 것일까.

 

수혈이 끝났다. 호스에 남은 한 방울의 피까지 몸속으로 흘려보낸 뒤 공기가 들지 않도록 호스를 잠근다. 남자의 눈에 희미하게 생기가 돈다. 누군가의 헌혈이 그를 이승으로 데려온 것이다. 남자에게 거미의 얘기를 들려준다. 날씨가 춥다며 거미를 걱정하는 나를 그는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남자의 마음에 이는 파문을 짐작하고 있다. 한낱 미물을 두고 걱정을 하는 내 모습이 생뚱맞은 것이다. 거미를 남자와 동의어로 바라보는 내 마음을 알 리가 없다.

 

창가로 다가가 밖을 기웃 내다본다. 두어 시간이 지났으니 어디로든 거미가 피신을 했을 거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밖을 기웃거리던 나는 그 자리서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광경이 벌어졌다. 좁쌀보다 더 작은 거미들이 오글오글 붙어서 거미의 몸을 파먹고 있다. 거미는 제 몸을 가족의 먹이로 내 걸기 위하여 그리도 부지런히 줄을 게워냈던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고 먹이가 떨어지면 자신의 몸을 새끼에게 내어주는 거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다. 온몸으로 진저리를 쳐도 심장의 떨림이 멈추지를 않는다. 나는 몸을 돌려 남자에게 다가가 가랑거리는 가슴에다 얼굴을 묻는다.

 

 

 

제5회 천강문학상 수필부문 심사평

 

한 편의 수필은 한 채의 집이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30명의 작품 약 100여 편을 앞에 두고 깊은 동굴 속 광맥을 찾듯이 작품을 읽어나갔다. 심사장 안은 무거운 침묵이 한동안 흘렀다. 그만큼 신중을 기한 심사였다고 생각된다. 심사가 아직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예감은 나쁘지 않았다. 눈에 띄는 작품이 좀 보인다는 말을 건넬 수 있었다. 심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나름의 기대가 있다. 이왕이면 훌륭한 작품과의 대면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예상한대로 비교적 감동적인 내용들이 많았다.

 

의병장 곽재우 홍의장군의 숭고한 충의정신을 기리기 위한 ‘천강문학상 제정’의 의도와 자긍심을 보여주는 듯 했다. 좋은 작품들이 전국 각처에서 응모된다는 것은 천강문학상의 품격을 말해주는 일이었다. 한동안 초등학교 아이들부터 대학입시를 위한 ‘논술쓰기’ 훈련으로 인한 글 다루기 교육의 성과가 아니겠는가 유추하게 된다. 글을 알고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최소한 10여 년 전 심사의 양상과는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수필은 사실 체험의 문학이며 그 사실이라는 개념 속에서 주제를 어떻게 다루는 가에 대한 관건이 주어진다. 다시 언급하자면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설계가 필요하다. 한 편의 수필은 한 채의 집이다. 함부로 무턱대고 지을 수 있는 집이 아니다. 최소한의 재료로 맛깔스런 음식을 완성해 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수필 장르도 엄연한 문학예술의 한 울타리 안에서 존재하는 까닭이다. 수필이 주제가 있는 글이라면 주제를 들어낼 수 있는 소재를 체험의 토대 안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대상작품으로 당선된「거미」의 박동조씨 작품은 한 마리 거미가 오전 내내 오르락내리락 줄을 엮고 있는 모양을 언어로 보여준다. 그러나 근사한 그물을 짜는 줄 알았던 거미의 거미줄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고 한다. 은빛 바퀴모양의 거미줄을 기대했으나 얼기설기 엮어 놓아 하루살이 한 마리도 걸릴 것 같지 않았는데 이제 거미는 지쳐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몰아치는 바람에 끊어질 듯 낭창거려도 여전히 미동이 없다. 도입부에 제시한 거미 한 마리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이 수필의 중심축으로 놓여 있는 화자의 남편(대리자)이다.

 

한 때는 근사한 은빛 저택을 갖고 싶었던 남자가 병상에 누워 피로 연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증수혈 환자가 남편이다. 나약하기 짝이 없는 거미의 일상을 병상에 누운 남편의 삶과 동일시하여 이 수필은 의미를 전개해 나간다. 집요하게 관객을 끌어당기는 영화의 스크린처럼 거미와 병상의 남편이 교차되는 긴장감은 빈틈없이 잘 직조된 피륙의 감촉을 느끼게 한다. 결국 화자는 문밖에서 제 몸을 좁쌀보다 더 작은 오글거리는 거미들에게 내어 주는 실체를 발견하고 만다. 가족의 먹이로 제 몸을 내어주기 위해 거미줄을 게워냈을 거미가장의 고단한 삶의 시간들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개별사적 이야기 신변사적 이야기를 한 마리 나약한 ‘거미’의 삶과 죽음으로 병든 가장의 아픔 속으로 끌어다 의미를 확대시키는 수법이야말로 이 수필가의 내재되어진 역량을 가늠하게 했다.

 

수필 현경미의「경계에서」, 수필 허효남의「벽, 너를 더듬다」를 우수상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두 작품의 내공 또한 만만치 않아 수필문단의 미래가 든든하다는 생각을 했다. 수필 「경계」는 안과 밖의 거리를 그녀와 나의 한계로 설정하여 바라보지만, 고창읍성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 듯 내 안의 안과 밖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깨우침을 봄날의 기대로 보여주는 따뜻한 정감을 이는 수필이었다. 수필「벽, 너를 더듬다」는 인간관계에서 부딪치게 되는 고통과 소통의 한계를 ‘너’라고 지칭하는 벽으로 의미화 한다는 개념적 서술의 수필이다. 실생활의 무게로 체험되어지던 고통과 고뇌의 너(벽)를 불러 짚어내는 중량감 있는 수필이다.

 

 

심사위원 : 지연희(수피가), 강돈묵(수필가)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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