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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글쓰기의 오류(가져온 글)

희라킴 2016. 4. 2. 08:26

<글쓰기의 오류>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외침은 공허하고 무책임하다. 중요한 것은 ‘분량’이 아니라 ‘방법'’이다. 어떻게 읽고, 어떻게 쓰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글쓰기에 대한 가르침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까다롭게 가려 읽고, 정성들여 다듬어 쓰고, 어긋나게 생각하라.”


<불완전한 문장이란?>


필요치 않은 말이 들어간 문장은 ‘비만’이다. 필요한 말이 빠진 문장은 ‘빈혈’이다. 한자어, 외국어, 비속어를 남발한 문장은 ‘피부병’이다. 맞춤법에 맞지 않은 문장은 ‘골절상’이다. 말의 순서가 바뀐 문장은 ‘소화불량’이다. 모두가 병든 문장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병을 고치면 된다. 몸을 고치는 것보다는 문장을 고치는 것이 훨씬 쉽지 않은가.


<완전한 문장이란?>


깊은 사유의 진액이 흘러나와야 살아있는 문장이다. 거기에 색깔과 향기가 더해지면 독특한 문체가 태어나게 된다. 단, 문장은 완전해야 한다. 문장은 생각과 느낌의 한 단위다. 따라서 완결되지 않은 문장은 글쓴이의 생각이 더 다듬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불완전한 문장은 뜸이 덜 든 밥과 같아서 질고 맛이 없다.


<뜻이 함축된 말을 사용하라.>


시어에서만 함축된 말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산문에서도 마찬가지다. 독자들은 말이 많은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함축된 말로 간결하게 표현할수록 읽는이의 마음이 크게 움직인다. 특히 글의 분량을 많게 하려고 문장을 늘여 쓰는 것은 비겁하다. 적은 내용을 길게 쓰다 보면, 밥을 지으려다 죽을 쑤게 된다.


<글쓰기는 세상과 맞장을 뜨는 것>


글쓰기는 나 혼자서 세상과 맞장을 뜨는 일이다. 혼자서 수천, 수만 명의 독자와 맞서야 한다. 그런 불균형한 싸움이 가능하기나 할까? 그렇다. 독자들 대부분이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비수를 품고 매복해 있는 독자도 더러 있다. 따라서 글 쓰는 이는 녹슬지 않는 비장의 무기를 늘 준비해야 한다. 함부로 나섰다간 코피 터지기 십상이다.


<할 말이 없으면 쓰지 말라.>


글쓰기 공부에 들어선 사람들이, 글감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일이 흔하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면 되묻고 싶다. 할 말도 없으면서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글을 쓸 일이 없는데 왜 글쓰기를 고민하는가?


<가슴 속에 맑은 샘물을 채워라>


글쓰기는 마음속에 고인 샘물을 퍼내는 것과 같다. 마구 퍼서 쓰다 보면 금방 바닥이 드러나고 만다. 그러면 기다려야 한다. 바닥난 샘에 수돗물을 들이부어 놓고 샘물이라 우기지 말라. 세상에 넘쳐나는 글과 책들은 관(管)을 따라 흐르는 수돗물과 같아서 이미 죽은 물이다. 오직 그대의 마음속에 차오른 샘물을 퍼내어 글이 되게 하라.


<독서는 나무처럼>


어렸을 적의 독서는 나무뿌리처럼 하라. 사방으로 뻗은 실뿌리처럼 다양한 양분을 흡수할 수 있게 하라. 청년기의 독서는 나무줄기처럼 하라. 어떤 분야에 대해서 집중하여 굵은 밑동을 키워라. 그리하면 장년기에 죽죽 뻗은 나뭇가지 끝에 주렁주렁 지식의 열매가 맺히게 된다.


<많은 독서가 때로는 병이 된다>


다독(多讀)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많은 독서가 글쓰기에 병이 되는 수도 있다. 그것은 독창적인 생각이 자리 잡을 공간을 앗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생각을 표류하게도 한다. 그렇다고 책을 적게 읽는 것이 좋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글쓰기와 관련된 독서는 이것저것 마구 읽어대는 귀납적 방법보다는 갈래별로 묶어서 하는 연역적 방법이 좋다. 연역적 독서를 하게 되면 얼마나 많은 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베껴 쓰였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약이 되는 책과 독이 되는 책을 가려내는 안목을 키울 수 있다.


<좋은 책이란?>


출판된 책의 절반은 팔리지 않고, 팔린 책의 절반은 읽히지 않고, 읽힌 책의 절반은 이해되지 않으며, 이해된 책의 절반도 잘못 이해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끝까지 살아서 제대로 이해된 책이 대부분은 좋은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초고는 버리려고 쓴다.>

 

로버트 맥기는 말한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나는 말한다. “초고는 버리려고 쓴다.” 하지만 쓰레기를 만들고 그것을 버리기 위해서 초고를 쓰는 사람은 없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해도 초고는 대개 쓰레기로 판명되고 만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바로 그 '판명'이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판명하기 위해서도 초고는 대단히 중요하다. 당신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는 그냥 아이디어일 뿐이다. 먼 곳에 있는 친구보다는 가까운 곳에 있는 이웃사촌이 낫다. 마찬가지로 머릿속에 있는 빼어난 아이디어보다 시나리오의 형태로 씌어져 있는 허섭한 한 신이 낫다. 아이디어는 아이디어일 뿐이다.

그것은 구체적인 신으로 변화되면서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E. M. 포스터는 말한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것을 종이 위에 써보기 전에는.”

 

 

 

 

출처 : 화타 윤경재  |  글쓴이 : 화타 원글보기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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