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스크랩] 풍장 / 심선경

희라킴 2016. 3. 21. 08:55

 

풍장

 

                                                                                                                             심선경

 

 아랫집에 손수레 빌리러 간 사람을 기다린다. 한참이 되어도 오질 않는다. 김장하러 오랜만에 온 시댁 마당엔 아직도 한가로움이 바장이고, 담벼락엔 겨울햇살 묻은 담쟁이가 잠시 반짝이다가 가볍게 몸을 떤다. 대청마루에서 내려와 대문간에 쪼그리고 앉아 무심코 솟을대문 지붕을 올려다본다. 뭔가가 거미줄같이 가느다란 실오라기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처음엔 생쥐인가 했는데 찬찬히 보니, 새였다. 서녘으로 쫓겨가는 무기력한 햇살에 처연히 빛나는 갈색깃털과 작은 몸집을 보아 참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이 끊어진 지 오래인 듯 아무런 기척이 없다. 마른나무의 잔 가지 같은 연약한 다리가 끄나풀에 감겨 옴짝달싹을 못하고 묶여버렸나 보다.

 

 날짐승이 어쩌다가 저런 최후를 맞게 되었는지 안타깝다는 생각으로 눈길을 거두려는 찰나, 다시 내 눈을 붙든 것은 흙바른 지붕 서까래 틈사이의 새둥지였다. 저런 곳에 보금자리를 틀어놓다니. 혹시 새끼들이 있나 싶어 살펴보았지만 둥지는 비어있었다. 어미 참새는 이곳에 둥지를 새로 만들어 알을 까려고 했었을까. 아니면 먼젓번 살던 곳에서 쫓겨나 새끼들을 이곳에 옮기려고 보금자리를 다시 꾸미려 했던 걸까.

 

 부리에는 아직도 지푸라기 몇 개가 물려있다. 거미줄 같은 실오라기가 지탱할 정도라면 몸속의 수분은 이미 다 빠져나가고 빈 껍데기만 남았으리라. 바람이 불 때마다 마른 나뭇잎처럼 빙글빙글 맴도는 어미참새의 주검 위에 이제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한 여인의 모습이 겹치며 함께 흔들린다.

 

 잔잔히 흔들리는 것들을 보면 가슴이 아린다. 늦가을 산을 은빛으로 뒤덮고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휩쓸리던 억새꽃은, 시장에 나가 다 팔지 못한 무거운 짐을 이고 산 하나를 넘어서 오던 어머니의 흰머리카락 날리는 모습같다.

가진 것 없는 낮은 지붕아래서 어린 3남매 모자람 없이, 남에게 엄한소리 듣지 않게 하느라고 고생만 죽도록 하다 가신 어머니. 그 소박한 바람을 들어드리지도 못하고 철없이 아무렇게나 던졌던 서슬 퍼런 언어들. 그것이 돌멩이가 되어 당신의 가슴에 툭툭 던져졌을 소리를 내 아둔한 귀는 이제야 듣는다.

 

 깊은 산이 해를 꿀꺽 삼킬 때쯤, 강가에 서면 금빛으로 부서지는 햇살이 눈부셨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맥을 놓고 있다가 부모는 저 노을처럼 자식을 부각시키기 위한 하나의 배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겨울밤엔 어머니가 손수 말려 꼬챙이에 끼워둔 곶감을 하나씩 빼먹는 재미로 날새는 줄도 몰랐다. 햇볕과 바람에 수분을 빼앗겨 겉모양은 쪼그라들지만 쫄깃쫄깃하고 달콤한 맛이 애간장을 살살 녹였다. 껍질을 벗기우고 알몸인 채로 서늘한 바람에 풍장된 감. 그대로 두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썩고 말았으리라.

 

 그리고 보니, 알게 모르게 내 손으로 풍장을 치른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늦가을, 빛고운 단풍잎을 책갈피에 넣어서 말리거나, 꽃다발을 거꾸로 매달아 바람에 말렸다가 주둥이 넓은 항아리에 아무렇게나 꽂아두곤 했다.

 

 꽃씨를 받아 말려서 종자주머니에 넣어두는 일은 얼마나 신성한 풍장 의식이었던가. 이미 죽어버린 듯했지만, 새봄이 되어 흙에 뿌려주면 얼마 있지 않아 참새 혓바닥 모양의 연두빛 싹을 쏙 내미는 모습이 어찌나 기특해 보였는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만 비로소 수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이 오묘한 자연의 이치를 바람에 단단히 여물어진 꽃씨들이 귀엣말로 속삭인다.

 

 어쩌면 우리가 현실에서 가지려고 하는 모든 욕심이 과욕이요, 빛깔이며 향기인지도 모르겠다.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을 지켜내기 위한 마음속의 번뇌는 또 다른 올가미가 되어 자신의 목을 조여온다. 몸과 마음에 욕심만 가득 채우려고 한다면 영혼이 가벼워지기는 일찍이 포기하는 편이 낫다.

 

 비바람에 향기를 내어주고 햇볕에 고운때깔이 바래지면 비로소 육신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피와 살과 물이 모두 증발한 다음에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얻을 수 있듯이, 세상 만물이 온갖 流轉과 방랑, 離合集散을 거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것처럼 생명의 질서는 곧 우주의 법칙이 아니던가.

 

 어쩌면 삶과 죽음은 한 가지에 함께 피어난 꽃인지도 모른다. 생성과 소멸을 거치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생명의 영원함을 깨달으면, 죽음은 생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시작임을 알게 된다.

 

 볕 좋은 날 빨래를 넌다. 가끔은 내 모습이 물기로 축축한 빨랫감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감정에 젖어 산만해지기 일쑤고, 지나친 감수성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돌아서면 후회한다. 아무리 풍부한 감정이라도 적절히 자제하지 못할 바엔 빨래처럼 물기를 비틀어짜서 햇볕에 내어다 말리고 싶다. 자기 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남의 일손을 들어줄까. 도우려면 빈손이 되어야 하지만, 작은 것 하나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는 도리어 적게 가진 사람의 도움을 받고야 만다.

 

 지난밤, 머리 싸매고 썼던 한 편의 글 속에도 알맹이보다는 포장의 무게로 더 버거웠다. 언제쯤이나 모든 것 훌훌 털어버리고 새처럼 가벼운 날갯짓을 할 수 있을까. 내 마음에 가득 찬 욕심의 주머니를 풍장 하여, 투명하게 빈 영혼의 눈이 되어 사물을 이제는 좀더 뚜렷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면 싶다. 그리하여 내 손으로 거대한 우주를 빚어내진 못할지라도 작은 들꽃 한 송이나마 피울 수 있다면, 그 일이 내 모든 걸 바쳐 얻은 것이라면 한 우주를 빚는 일에 갈음할 수도 있으리라.

 

 따귀라도 칠 듯이 매서운 바람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참새가 생각나 대문 지붕위로 눈길을 주었다. 거기, 평생을 칼바람 부는 벌판에 서서 가슴 졸이며 살아온 여인이 아직 매달려있다.

 

 눈발까지 날린다. 이른 저녁을 준비해야겠다. 처마 밑에 엮어둔 마른 시래기 한줌을 쥐니, 이내 바스라진다.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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