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라면 / 정성화?
라면 / 정성화
내가 처음 먹어본 라면은 주황색 봉지에 담김 삼양라면이었다. 자잘한 노란 기름이 덮여 있는 국물에다 꼬불꼬불하면서도 고슬고슬한 면발, 거기다가 회가 동할 만큼 기막힌 냄새를 가진 아주 경이로운 음식이었다.
우리 여덟 식구가 한 끼 먹을 국수다발 값이 사십 원이었던 것에 비해 라면 한 단의 값은 이십 원이나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국수와 라면을 대개 삼대 일의 비율로 섞어 한 냄비를 만드셨다. 국수가 섞이지 않은 라면을 먹고 싶어 하는 우리 마음을 알면서도 어머니는 모른 체하셨다.
국수가 시골집 평상에 어울리는 음식이라면 라면은 맛과 모양으로 볼 때 양옥집 식탁에나 어울릴 음식이었다. 엄마가 집에 계시지 않을 때나 춥고 허기질 때, 기대했던 일이 무너진 날이면 나도 모르게 라면이 생각났다. 라면에는 ‘위로’라는 첨가물이 들어있는지 한 그릇 먹고 나면 몸이 훈훈해지고 배가 불러오면서 마음의 주름이 쫙 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라면의 몸은 최소한의 뼈대로 되어있다. 누가 부르면 재빨리 달려가기 위해 그렇게 단출하고 단단한 모양새를 가진 걸까. 딸린 식구라고는 스프 한두 봉지뿐이다. 얇은 비닐 포장이만으로 집과 옷을 해결하는 소박함도 눈여겨볼 만하다. 어떤 이의 앞에 놓이든 언제나 따뜻한 표정을 짓는 ‘감정노동자’이기도 하다. 라면은 자신의 희망 소매가격이 몇 백 원 정도이기를 바란다. 가난하거나 밥을 해 먹기 힘든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그동안 라면이 베풀어온 공덕이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라면은 참 묘한 음식이다. 전혀 생각이 없다가도 누가 라면을 끓여 갖고 오면 “한 젓가락만!” 하며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드라마에서 라면 먹는 장면을 보는 순간, 어느새 코끝으로 라면 냄새가 풍겨오는 듯하다. 거의 조건반사에 가깝다. 냄비 받침대보다는 책이나 신문지를 깔고 먹어야 제 맛이 나고, 더운 밥보다는 식은 밥을 넣었을 때 맛이 더 살아나는 것은 라면의 개성으로 봐야 한다.
라면에는 단점도 많다. 나트륨과 화학조미료가 많이 들어있고, 고칼로리에 지방과 콜레스테롤 함량도 높으며, 소화도 더디다. 그런데도 꾸준히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뭘까. 빠른 시간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고, 저장과 휴대가 간편하여, 얼큰한 국물을 좋아하는 우리 식성에 잘 맞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에도 두 가지 라면이 있다. ‘그 때 ~했더라면’이라는 과거 후회형 라면과 ‘내가 만일 ~라면’이라는 미래 소망형 라면이다. 과거 후회형 라면에 유난히 집착하는 사람들은 운명이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었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들볶고 자책한다. 깊은 웅덩이에 바퀴가 빠졌을 때, 부르릉거리며 바퀴를 돌려봤자 웅덩이가 더욱 깊이 파이고 마는 것처럼, 이 라면은 먹는 날은 더욱 속이 부대낀다.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반성하는데 필요하다 하지만, 이 라면은 자주 먹지 않는 게 좋다.
그에 비해 미래 소망형 라면을 자주 찾는 사람은 어느 정도 낙천적이면서 계획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이 라면도 자주 먹으면 현실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자신을 제련시키는 힘이 약해진다. 이 라면의 스프에 들어있는 ‘환상’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의 허기를 느낄 때마다 이 두 가지 라면을 번갈아 찾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는 더부룩해진 속을 안고 한 평생 살아가는 것이다.
얼마 전, 라면을 제대로 끓여주지 않는다고 기내에서 대기업 간부가 승무원을 폭행한 일이 일어났다. 그는 그 일로 결국 옷을 벗었고, 본의 아니게 세상에서 제일 비싼 라면을 먹은 셈이 되었다. 라면이 나서서 한 인간의 진면목을 밝혀낸 것이다.
라면, 결코 우습게 볼 음식이 아니다.
- 정성화 수필집『봄은 서커스트럭을 타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