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마당 / 김응숙

희라킴 2018. 7. 16. 17:16



마당 


                                                                                                                          김응숙


 애초 거기에 무슨 이유가 있지는 않았을 성싶다. 그저 지축에 둘둘 말려 있다가 어느 날 누군가의 손에 의해 우리 집 앞에 깔렸을 것이다. 안방 장판을 까는 아버지의 손길처럼 쓱쓱 바닥을 밀어내고, 들뜨지 않도록 네 귀를 꾹꾹 눌러서 말이다. 어쨌거나 마당은 이사를 갔을 때부터 그냥 거기에 깔려 있었다. 평평하게 데데하게.


 마당 한쪽에는 낮은 슬레이트 지붕을 이고, 쪽마루에 코가 닿을 듯이 현관문이 달려 있는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초라하고 좁은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발끝으로 죄 없는 마당을 차댔다. 마당은 폭폭 파이면서 옅은 한숨 같은 흙먼지만 피워 올릴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미처 들이지 못한 세간들이 흩어져 있는 마당 구석에 비쩍 마른 사철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금이 간 블럭 담벼락에 이마를 박고 있는 마당은 정말 볼품이 없었다.


 그래도 그 마당을 어머니는 아침마다 깨끗이 쓸었다. 옆옆이 세를 들어 사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도 슬며시 치우시곤 했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아 볼멘소리를 했다. "이게 엄마 마당이야? 왜 맨날 엄마만 치워?" 그런 나를 돌아보며 어머니는 그냥 말없이 웃으셨던 것 같다.


 전학을 자주 다녀 친구가 없었던 나는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다. 사철나무 그림자에 들어앉아 마당에 낙서하는 것이 좋았다. 동생이 잠든 방문을 조금 열어 놓고 혹 깨지나 않았는지 살펴 가며 낙서를 했다. 나뭇가지 끝으로 그림을 그렸다가 발바닥으로 쓱쓱 지우고는, 동네 아이들에게서 들었던 욕 한마디를 써 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마당과 비밀을 나누어 가지기라도 한 듯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 집 쪽마루에서는 마당 한쪽에 있는 수채가 바라다보였다. 두레상만큼 시멘트가 허옇게 발린 수채는 꼭 뒤집어져 귀만 내놓은 채 마당에 묻힌 커다란 소라고둥 같았다.


 어느 날 빗소리를 듣고 현관문을 열어보니, 두두두둑 지붕에서 흘러내린 빗방울들이 처마 밑을 박음질하고, 마당에 떨어진 빗방울들은 작은 보리새우처럼 퉁퉁 튀어 오르고 있었다. 빗줄기가 거세어지자 흥건하게 고이던 빗물은 소용돌이를 치며 소라고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간 모든 소리들도 따라서 빨려들어 가는지 사방이 고요해졌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마당에도 귀가 있다는 것을. 마당이 이 가난한 집에서 삐어져 나오는 질박한 소리들을 이미 다 듣고 있었다는 것을.


 말을 하지 않고 듣기만 한다는 데 있어서 어머니는 마당과 닮아 있었다. 옹알거리는 할머니의 지청구나 벼락같이 내지르는 할아버지의 호통도 듣고만 있었다. 변변한 가장 노릇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입매가 굳게 다물어질 때마다, 거기서 묻어나는 더 큰 소리들도 가슴으로 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아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게 되자, 몇 날 며칠을 새벽에 집을 나가 깊은 밤에야 돌아오곤 했다. 거칠게 마당을 뛰쳐나가는 발자국 소리와 힘없이 다리를 끌며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를 어머니는 저 마당에 묻힌 소라고둥처럼 다 듣고 있었으리라.


 그 모든 소리들은 소용돌이를 이루며 어머니의 가슴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마치 가슴속에 무한한 동굴이라도 버티고 있다는 듯, 어머니는 소리 없이 그 많은 소리들을 받아들이셨다.


 제각기 제 삶이 버겁다며 뱉어 놓은 소리들이 어머니의 가슴으로 잦아들고 나서야 평화로운 날들이 찾아왔다. 그제야 나는 사철나무 아래에 어머니가 심어놓은 봉선화도 보고, 허술한 담장을 타고 피는 나팔꽃도 보았다. 마당가로 나지막이 채송화가 줄지어 피면 데데하던 마당은 꽃그림을 두른 편지지 같이 화사해졌다. 이제 낙서는 그만하고 근사한 시나 연애편지를 쓰라는 듯이.


 키 작은 꽃들이 피고 하늘이 맑은 날이면, 어머니는 마당에서 빨래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말수는 적었지만 노래를 잘했던 어머니의 노랫소리는 소라고둥 속을 휘휘 돌아나오는 듯 맑고도 고왔다. 나는 빨래를 널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특히 '아, 목동아'를 부를 때 "나 항상 오래 여기 살리라."하는 고음 부분에 이르러 어머니와 나는 소리 높여 합창을 하곤 했다. 어머니의 가슴에 산들바람이 불자, 마당도 기분이 좋은지 가뿐가뿐 빨래 그림자를 흔들었다.


 그러나 마당이 언제까지나 한결같을 수는 없었나 보았다. 서산에 설핏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해가 노을 섞인 잔광을 풀어놓은 날 저녁, 아버지의 밥상이 마당으로 날아들었다. 그릇들이 뒹굴고 반찬이 쏟아졌다. 어머니는 말없이 함지박을 들고 와 엎어진 그릇들을 주워 담았다. 해가 기울고 마당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어머니가 병을 얻어 앓아누운 뒤부터 마당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때때로 깊은 밤 은은한 달빛만이 서성이는 내 어깨를 조용히 두드려 주었을 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운구가 지날 때, 마당은 내 가슴속 깊이 가라앉았다. 어려웠던 시절, 삶의 한 가운데에서 그 질박한 소리들을 품어 주던 마당이었다. 마당이 가라앉은 쓸쓸한 가슴 위로 봄이면 풀이 나고 가을이면 낙엽이 쌓였다.


 마당은 지나온 세월을 품은 듯 구름 그림자를 안고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한옥마을을 구경나온 참이었다. 150년은 되었다는 고택의 마당이 의외로 소박해 보였다.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땀을 식히며 마당을 내려다보았다. 대숲에서 산들바람이 마당 귀퉁이의 풍경 그림자를 흔들었다.


 문득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우리 집 마당이 생각났다. 환한 햇살이 불 꺼진 마당을 다시 밝힌 듯, 한쪽에서 빨래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마당을 건너가는 산들바람에 귀를 대면, 어머니의 고운 노랫소리도 들릴 것만 같았다. 마당 저만치에서 그날 그때처럼 키 작은 꽃들이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