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줄박이 / 김상분
곤줄박이
김상분
고추 모종을 하려고 고랑을 낸다. 호미질을 할 때마다 지렁이며 애벌레들이 꿈틀거려 징그럽지만 기름진 흙이어서 그러려니 한다.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때는 소리를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이제는 그런 정도는 보통이다. 오디나무가 무성하게 자라서 따지 못하는 열매들이 새까맣게 떨어져 좋은 거름이 되나 보다. 한 종일 그늘을 만드는 휘늘어진 가지들을 잘라내고 햇빛이 잘 드는 자리를 만들어 고추를 심을 요량이다. 몇 해 전, 다 된 고추 농사를 탄저병으로 못쓰게 만든 다음엔 아예 단념했는데 왠지 올해는 여남은 포기라도 다시 심어보고 싶으니 세월이 약인가 보다.
몇 포기를 심어도 줄을 맞추어 밭고랑을 내며 북을 돋우는데 곤줄박이 한 마리가 쏜살같이 날아와 앉는다. 혼자서 심심하게 일하다가 반갑기 그지없다. 참새보다 조금은 크고 검은 머리의 적갈색의 윤기 흐르는 통통한 배가 깜찍하다. 참새목 박샛과에 속하는 이 작은 텃새는 유난히 사람을 가까이한다. 오두막 앞에서 쉬면서 새참을 먹을 때면 어김없이 날아온다. 매실 가지마다 포르르 옮겨 다니면서 주위를 맴돌며 빵부스러기를 쪼아 먹는 모습이 무척 귀엽다. 가슴에 하얀 반점을 자랑하는 몸짓으로 배를 내밀기도 하며 겁도 없이 무릎 위까지 올라와서 깡충대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곤두박질을 치며 내려와 부리로 흙을 쑤셔대며 애벌레를 쪼아 먹으니 너무도 뜻밖이었다. 봄 내 매화꽃 가지 위에서 재롱을 부리던 자태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어안이 벙벙하다. 애벌레들을 실컷 잡아먹고는 호미 끝에서 죽은 척 꿈쩍도 하지 않던 굼뱅이까지 입에 물고 휙 날아가 버린다. 그동안의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굼뱅이도 기는 제주는 있다던데 잽싼 날짐승을 어찌 당하랴. 한입에 낚아채 올라가는 약육강식의 엄연한 질서를 어찌하랴. 아니 그것이 순리인가. 바로 눈앞에서 무서운 먹이사슬의 고리를 확인하며 곤줄박이가 날아간 벚나무 위를 하릴없이 올려다본다.
우리가 사물을 볼 때 보이는 것이 다 아닌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겉모습이 아무리 곱다 해도 고픈 속은 채워야 하리. 생존을 위한 먹이 사냥 앞에 무슨 다른 방도가 있으랴. 나의 새참 부스러기야 군것질에 지나지 않고 나와는 잠시 휴식을 취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더 큰 먹이를 찾기 위한 기다림으로 뱃심을 기르고 있었을까.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는 새들의 자유로운 날갯짓도 다시 보인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고 짝을 찾으며 새끼를 먹여 살리려는 필사적인 행위가 아닌가. 새 중의 새 독수리나 매는 물론이요 선비처럼 고고한 모습의 백로 또한 먹이 앞에서는 본능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호수에 유유자적 헤엄을 치며 한유를 즐기는 백조 이야기도 그렇다. 우아한 수면 위의 자태와는 달리 물밑에서는 두 다리를 버둥대며 수없이 물갈퀴 질을 해야 한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고달픈 모습인가. 세상만사가 보이는 것만이 참이 아닌 것을 오늘 저 곤줄박이가 내게 톡톡히 일러 주나 보다.
말 못하는 저 미물만 그럴까.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겉보기엔 우아하고 아름다운 차림으로 성장을 해도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에게 실망을 할 때가 있다. 그뿐이랴. 믿고 의지하며 정을 주던 친구도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하기도 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했듯이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보면 슬프다. 좋았던 친구 사이도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해타산이나 견해차이 때문에 결별하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겉모양처럼 그 속마음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각각의 개체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이해한다거나 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교만과 아집의 표리부동한 철옹성에 스스로 숨긴다. 마치 나는 온전히 바르고 옳은 존재인 양 상대를 굽어보는 듯한 자세로 서있는 것이다. 친구나 타인도 나를 향하여 비슷한 고뇌로 긴 밤을 새우지는 않을까. 아무리 올바른 생각을 하고 말하며 행동하여도 다른 누구에게는 피해가 되고 틀린 일이 될 수도 있기에 끝없이 갈등한다. 그러나 그 마음 비움이 허리 굽힘이 쉽지 않으니 어찌하리.
곤줄박이 한 마리가 나를 기쁘게도 했다가 슬프게도 한다.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했던 존재도 역시 힘겨운 먹이사슬의 굴레 안에 살아가고 있음을 본다. 꽃잎 풀잎에 맺힌 이슬만 먹고 살 수는 없으리. 어리석은 나에게 작은 새 한 마리가 사물이나 인간의 미적 거리를 알려주며 그 실상과 허상을 생각하게 해준다. 작은 새가 날아간 하늘은 푸르기만 하고 흰 구름은 유유히 떠간다. 더 무엇을 생각하리. 나는 몇 포기 고추모를 심어서 꽃 피고 열매가 달리기를 바라니 곤줄박이 보다 무엇이 다르고 낫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