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고구마 덩굴 / 허문정

희라킴 2018. 2. 1. 19:52




고구마 덩굴


                                                                                                                         허문정

 

 고구마 덩굴이 담쟁이처럼 화장대 거울을 타고 오른다. 아기자기 매달린 연두 이파리들이 어미 등에 업힌 아기들 모습 같다. 양분이라야 고작 창문을 넘어오는 햇빛과 물뿐이지만 고구마가 덩굴을 여덟 개나 뻗은 것은 붉은 엉덩이를 물에 담그고 인내한 덕이다.


 이파리는 작고 연약해서 물이 마른 걸 깜박하면 금세 사들사들해진다. 사들사들해진 이파리는 물을 채워주고 한 시간쯤 지나면 다시 생생해진다. 아프리카에서 자라는 수령 1200년 된 어떤 나무는 뿌리에서 물을 빨아들여 제일 높은 곳까지 올려보내는데 24일이나 걸린다는데, 고구마 덩굴이 그만큼 걸리려면 동화에 나오는 잭의 콩 나무줄기처럼 자라야 하지 않을까.


 거울을 타고 오르는 고구마 덩굴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중, 문득 고구마 덩굴이 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환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링거주사를 맞고 있는 환자의 모습을 떠올리자 갑자기 미안해지고 고구마를 물 컵에 담가 놓고 푸른 잎을 보겠다는 심사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속에 내린 하얀 뿌리가 흙에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부랴부랴 화단으로 옮겨 심었다. 대문간을 드나들며 눈을 떼지 못하는데 며칠 지나자 연두 이파리는 초록색이 되고 덩굴도 튼실해졌다. 내 염려가 기우였다는 걸 깨우쳐 주기라도 하듯 덩굴은 사방으로 벋어나갔다. 뿌리를 내리고 적응을 하기까지 저도 몸살을 많이 했을 터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팔랑이는 이파리가 경이롭고 빛나 보였다.


 허나 나의 욕망은 얼마나 가없는지. 싱싱한 잎줄기를 보자 갈치나 고등어를 지져 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견하고 안도하던 마음은 잠시뿐, 바로 줄기를 따서 갈치 한 토막을 지졌다. 가족들에게 유기농이라 생색까지 내며.


 며칠 후, 뿌리에 고구마가 달렸는지 또 궁금해졌다. 슬며시 덩굴을 당겨 보았다. 호미를 대지 않아도 쉽게 뽑혔는데 뿌리에는 원래의 묵은 고구마만 하나 달랑 매달려 있다. 작은 고구마가 조롱조롱 달렸을 것을 기대한 나는 실망했다. 고구마를 씹어보니 스펀지 같은 게 아무 맛도 없다. 잎과 줄기에 양분을 뽑아 올리느라 한 방울 진액까지 모두 소진한 늙은 어미의 모습이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동안 고구마를 어지간히도 힘들게 했다. 비좁은 물 컵에 담가 새순을 돋게 하고, 덩굴을 허공으로 추켜올려 자라게 하고, 영양실조는 물론 물마저 제때 주지 않아 굶게도, 탈진하게도 했다. 동정심에 화단으로 옮겨 심고는 흙에 적응할 만하니 줄기를 따 갈치를 지져 먹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고구마가 달렸는지 덩굴째 뽑아 보기까지 했으니…….


 영악한 내 손. 고구마 덩굴은 움직일 수 없어서 순응했을 뿐, 내게 원망을 많이도 보냈을 터이다. 덩굴로 내 온몸을 감을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나의 이기심을 동정했을지도 모른다. 자유롭지 못한 그 속이 오죽 갑갑했으랴. 자연의 순리라지만 인간의 이름으로, 어미의 이름으로, 가족들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숱한 목숨들을 많이도 훼손했다. 그동안 내 손에 목이 꺾인 꽃들과 머리채가 잡혔던 풀들과 팔이 꺾인 나무들. 발에 밟혀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죽어 간 벌레들과 무심히 지른 소리에 놀란 새들과 짐승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함께 부대끼며 상처받은 사람들은 또 오죽 많을까. 내 목숨 부지하려 했다는 부끄러운 변명밖에 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살겠네, 못 살겠네 불평만 많았는데 고구마 덩굴은 척박한 환경에도 꿋꿋이 견뎌내는 의연함을 보여줬다. 맨땅에 엎드리는 겸손과 제 길 고집하지 않는 유연함으로 어우렁더우렁 어울리며 물 흐르듯 살아냈다.


 사람이 산다는 것도 이처럼 유연하게 흐르는 일이리라. 참회하는 마음으로 고구마 덩굴을 거둬내니, 덩굴에 가렸던 풀꽃들이 부신 눈으로 웃는다. 내려앉는 햇살이 있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