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공중전화기 / 김응숙

희라킴 2017. 12. 8. 21:19


공중전화기

    

                                                                                                                                     김응숙

  

 아파트 단지 한 쪽에 공중전화 부스가 있다. 하늘색 지붕은 희끗희끗하니 빛에 바래있다. 여닫는 문은 이미 오래전에 떨어져 나갔고, 투명한 벽에도 여기저기 잔금이 가득하다. 군데군데 희뿌옇게 먼지가 말라붙어 있다. 그 안 가로놓인 삼각대 위에 때 묻은 공중전화기가 위태롭게 놓여 있다.


 바로 옆은 마을버스 대기실이다. 관리실에서 가까운 곳이라 늘 깨끗이 청소되어 있다. 단지에서 가장 활기찬 장소이다. 아침에는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모여 버스를 기다린다. 오전 열시쯤이면 시장에 가거나 외출을 하는 여자들이 모이고, 오후에는 학원 버스들이 아이들을 내려놓고 회차를 한다고 분주하다. 그리고 낮 시간의 대부분은 무료함을 달래는 할머니들의 전용 공간이 된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고, 앞이 탁 트여 시야가 시원한 탓이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공중전화기를 이용하지는 않는다. 아이들도 휴대폰으로 친구를 부르고, 여자들도 휴대폰으로 약속시간을 확인하며, 할머니들도 휴대폰으로 자식들의 안부를 묻는다. 공중전화기를 눈 여겨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며칠 전에 아파트 운영위원회에서 공중전화 부스를 철거하자는 안건이 논의되었다. 이용하는 사람도 없고 흉물스러운 모습이 보기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통신회사에서 이윤도 나지 않는 저 공중전화기를 새 것으로 바꾸어 줄 리는 만무하니, 아예 철거를 해 버리자는 것이었다. 모두들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우리 동 대표로 참석하고 있던 나는 손을 들었다.

그 공중전화기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도 우리 아파트 주민입니다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동자는 누가, 세 살부터 여든 살까지의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버릇처럼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 이 시대에 도대체 누가 공중전화기를 이용한다는 말인가 하고 묻고 있었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한 달 전쯤이었다. 실은 그의 국적도, 그의 이름도 모르니 안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었고, 그의 눈물어린 눈빛을 보았으니 모른다고 할 수도 없다.


 갱년기가 되어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잦았다. 그런 밤에는 밤 산책을 나가곤 했다. 그 날도 자정이 넘을 때까지 이리저리 시간을 보내다가 한 시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달 밝은 늦은 봄 밤, 산책하기 좋은 밤이었다. 유난히 일찍 핀 넝쿨 장미의 향기가 나를 따라 나섰다. 가로등 불빛에 어른거리는 나뭇잎 그림자는 인적이 없는 시간에 지나가는 나를 향해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어 주었다. 주변 산책로를 유유자적하며 거닐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따라 공중전화 부스 가까이 가게 되었다.


 물 흐르는 것 같은 목소리는 끊어질듯 이어졌다. 마치 단조로 된 노래를 낯선 이국어로 부르는 것 같았다. 가끔씩 짧은 한숨 소리가 섞이기도 했다. 나는 달빛이 고인 버스 대기실 의자에 앉아 그가 고국의 가족과 대화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내용을 알 수는 없었지만 가슴속에 슬픔이 차올랐다.


 통화가 끝났는지 조용해졌다. 나는 급히 일어나 자리를 피하려고 했으나 공중전화 부스에서 나오는 그와 그만 마주치고 말았다. 검은 곱슬머리에 눈썹이 짙었다. 거무스레한 얼굴에서 유난히 빛나는 두 눈이 물기에 젖어 있었다. 인근 공장에서 기숙사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 동 102호에 사는 외국인 근로자였다.


 나는 그와 여러 번 계단에서 마주쳤었으나 모르는 척 지나치곤 했었다. 행여 눈길이라도 마주칠까 걸음을 빨리하기도 했다. 딱히 싫지는 않았으나 구태여 관심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모양새가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는 그는 나에게 그저 이방인일 뿐이었다.


 깊은 밤 예상치 못하게 나와 마주친 그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른손을 약간 앞으로 내밀고 어정쩡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냥 까딱 목례를 하고는 총총히 그 자리를 떴다. 등 뒤로 그의 눅눅한 시선이 느껴졌다.


 오래전 초여름 어느 날, 나는 막내 동생을 독일로 떠나보내야만 했었다. 어머니를 여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유학이 아니라 입양이었다. 여러 가지 상황이 너무나 어려웠다. 열여덟 살, 아직 어리다면 어린 동생을 낯선 이국으로 떠나보내고 며칠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 시차를 계산해 새벽 두세 시에 가로등 불빛에 그 긴 국제전화 번호를 비추어 가며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었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인생의 행로는 종종 예상할 수 없는 곳으로 흐르기도 한다. 이방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 둥지를 떠나서 낯선 곳으로 가게 되면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내가 그와의 사이에 알게 모르게 선을 그으며 그를 이방인으로 만들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 선을 허물면 그도 이웃이 될 것이다.


 다행히 공중전화 부스는 살아남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바로 옆에 놓여 있는 공중전화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슬며시 부스 안으로 들어가 수화기를 들어본다. 그의 체온이 남아있을 리가 없을 터인데, 왠지 손바닥이 따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