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자반을 먹으며 /유병석

희라킴 2017. 12. 8. 20:31




자반을 먹으며  

  


                                                                                                                                             유병석


 우리가 자랄 때는 시골에서 어지간히 잘사는 부농이어도 평소에 고기 반찬을 먹을 수 없었다. 명절이나 제사 때에야, 또는 집안 어른의 생신에나 고깃국을 먹을 수 있었는데 그것도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았다. 고기라고 해야 멀건 국물에 몇 점 떠다니는 것이지 갈비찜이라든가 불고기처럼 고기만 빡빡하게 먹은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기에 꼬마인 우리들은 제사 지내고 음복할 때 한두 점 얻어먹는, 탕 위에 얹었던 고기점과 산적꽂이에 눈독을 들였었다.


 그렇다고 우리 몸에 필수적인 동물성 단백질을 전연 섭취하지 못하고 산건 아니다. 가끔 가다 대수롭지 않은 손님이 와도 핑곗김에 닭을 잡아 국을 끓이고(닭고기도 돼지고기나 쇠고기와 마찬가지로 고기만 빡빡하게 먹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특히 여름철에는 값이 치이지 않는 개를 잡아(그래서 개값이란 말이 나왔을 것이다) 온 식구가 포식하곤 했다. 그 밖의 거의 끼니마다 밥상에는 생선 종류가 올랐다. 하다못해 새우젓이라도 올랐다. 생선이라고 했지만 이건 현대적인 표현이고 우리 시골말로는 그것을 괴기또는 괴기 반찬이라 불렀다. ‘생선이라는 음식은 글자 그대로의 싱싱한 생선을 그것만 가지고 싱겁게 국 끓이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말하자면 동물성 단백질은 물고기가 주종이어서 생선을 괴기라고 했던 것 같다. 우리 시골이 바닷가였던 이유도 있으려니와 고기라면 물고기였을 정도로 생선은 많이 먹은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선도 생선국인 생선으로 해서 먹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경제성을 앞세워야 했으므로 대부분의 경우 짜디짜게 절인 자반으로 해서 먹었다. 요즘처럼 생선 조기를 통째로 싱겁게 소금 뿌려서 굽거나 심심하게 조려 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생선의 몸부피보다 별로 적지 않을 양의 소금을 포함한 짜디짠 자반이 괴기 반찬의 주종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시골에서는 건건이라 하면 흔히 비린 것’, 곧 자반 생선을 뜻했던 것이다. 자반이라고 해도 흔히 먹는 종류가 정해져 있다. 관솔같이 쪽쪽 째지는 암치포나 굴비 같은 것은 예나 이제나 다름없이 고급 어종이어서 아무 때나 먹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귀여운 맏손자에게도 평소에 그런 것을 먹이지 않는다. 흔히 먹는 자반은 갈치나 고등어를 소금에 절인 종류였다.


 우리 집은 밥상이 셋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맏손자인 나, 할머니와 삼촌과 둘째인 내 동생, 어머니와 여동생들, 이렇게 삼상(三床)이 정립되어 있었는데 상마다 반찬이 달랐다. 반찬의 종류가 다르기도 하지만 질에 차이가 난다. 편의상 할아버지 상을 갑, 할머니 상을 을, 어머니 상을 병이라 기호화하면, 갑상이 가장 질이 우수하고 병상이 가장 형편없다. 가령 배추김치만 해도 하얀 속고뱅이는 갑상에, 퍼런 꼬리 부분은 을상에, 그리고 병상에는 뿌리와 잎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상태의 것이다. , 을상의 것은 통배추를 가로로 절단했는데 병상의 것은 흔히 세로로 쪼갠 것이 많았다. 갑상에서 남은 것은 다음 끼니에 을상으로, 을상에서 남은 것은 다음 끼니에 병상으로 가는 일도 흔했다.

 

 갑상에 자리한 나는 으레 생선의 가운데 토막 중에서 등 부분의 살코기만 먹었다. 할아버지가 가시 없는 부분을 뚝 떼어 내 밥에 올려놓으시곤 했고, 그러다 보니 나는 당당히 그 부분만 먹을 권리가 있는 것이라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멀컹멀컹하고 재미없는 배 부분을 드시거나 뼈를 씹어 자시었다. 좋은 부분을 놓아두고 왜 하필 그런 것을 자시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진짜는 그것이 맛있는 부분이라고 대답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 뒤 40여 년이 지난 얼마 전 우리 아이들과 내가 아버지를 모시고 3대가 한 상에서 식사할 때였는데 무심코 내 젓가락은 조기조림의 복부(배때기)를 헤집고 있었다. 큰놈은 습관대로 등허리 부분의 살코기를 헤집어다 먹었다. 아버지는 큰놈이 헤집고 난 곁부분의 살코기를 뭉텅 떼어다가 둘째아이의 밥 위에 올려놓으시는 것이었다.


 40여 년 전의 갑상의 형식의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다른 것은, 아버지는 지금도 당신의 아들과 마찬가지로 복부와 뼈를 자시려 드는 것뿐이었다. 50을 바라보는 이 아들이 아직도 살코기밖에 못 먹는 줄 아시는지, 아니면 가시를 삼킬까 걱정이 되셔선지, 그것도 아니라면 복부와 뼈야말로 생선의 가장 맛있는 부분이어서 그러시는지. 이 아들을 제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어느덧 생선의 살코기는 먹지 못하는 부분으로 인식하게 되어 버렸는데도 말이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언제나 복부와 뼈만 먹고, 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아이들 엄마는 항상 머리 부분(대가리)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나는 생선의 내장 근처와 뼈가 정말로 맛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얼마 있다가 손주를 보면 생선의 살코기를 덜렁 떼어다가 그놈의 밥 위에 올려놓게 될 것이며, 그 놈의 아비인 우리 아이들은 배때기와 가시의 맛을 그제서야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쇠고기를 구워도 빨간 살은 제 아이들이 먹고, 저희들은 기름기가 섞인 조각을 먹을 줄 알 것이며, 갈비는 제 아이들이 대충대충 뜯다 버린 뼈를 갉아 먹으며 이게 정말로 맛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생선은 배때기, , 대가리, 고기는 기름기가 섞인 조각과 뼈와 밀착된 힘줄이 맛있다는 사실을 오랜 세월의 체험으로 알게 되면서 사람은 어른이 되어 간다. 세상은 아무래도 이러한 어른들이 다스려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는 물론이고 잘못된 아이들을 잡아가는 사람들, 재판하는 사람들의 자격 시험으로 생선과 고기를 아이들과 함께 먹어보게 하는 과목을 과하면 어떨까. 오늘도 집의 아이들과 자반을 먹으며 부질없는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