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 문경희
섬
문경희
봄볕에 시큰 눈물이 괸다. 애써 기다리지 않아도 약속처럼 오가는 자연의 이치가 새삼 경이롭다. 하얀 쌀밥에 박힌 콩처럼 드문드문 남아서 떠나는 계절을 과시하던 잔설마저 이 아침엔 흔적도 없다.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이 저리 곱지 싶다.
장엄한 별리의 의식과도 같이 며칠 전 많은 눈이 내렸다. 늘 그러했던 것처럼 시늉만 하고 그치려나 싶던 눈발이 보란 듯 예상을 뒤엎은 것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열 자를 뱉어내고 돌아서면 어느새 이만치 다가와 있던 유년의 아이들처럼, 잠시 시선을 거두었다. 뒤돌아보면 낯선 풍경들이 한걸음씩 가까워져 있었다. 통화 중 갑작스레 혼선이 된 것처럼 때 아닌 눈발로 잠시 계절을 가늠하지 못할 뻔했다. 백 년 만의 폭설이라니 그만하면 겨울이든 봄이든 그 가고 오는 예령을 쩡쩡하게 울린 셈이다.
아니나다를까. 초저녁 무렵, 드디어 차량 통행에 문제가 생겨 버렸다. 가파른 오르막에서 헛바퀴만 굴려대던 자동차들이 속절없이 멈춰 서고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 마을버스조차 한갓진 곳을 정하여 아예 하룻밤 유하기를 청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발목을 적시는 눈도 눈이지만 시야를 가로막으며 허공을 분탕질치는 눈발이 좀체 멎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알장의 소리 없는 훈시, 하늘이 나리는 말씀에 세상 모든 것들이 수굿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온통 깎아지른 모서리와 차갑게 각을 세운 직선들만 난무하던 도시 하나가 금세 하얀 설편들에 항복을 하고 말았다. 경건한 예식을 치르듯 백색의 성장(盛裝)을 한 채 건물도, 도로도, 차도, 사람도 속속들이 마음을 열어 태초의 하나로 돌아가는 듯했다. 오랜 방황을 마치고 비로소 고해성사를 하는 이의 굽은 등처럼 숙연하게, 세상 모든 것들이 모난 시간들을 지우고 있었다.
이끌리듯 나섰던 밤길에 맞닥뜨린 아파트촌이 망망대해에 홀로 선 섬처럼 고적해 보였다. 섬의 불빛은 늘어트린 촉수를 거둬들이듯 여태 돌아오지 않은 식솔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저 끈적이는 귀소의 본능, 빼곡이 도로를 점령한 자동차 사이를 비집고 아슬아슬하게 돌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안도의 깊은 숨이 깃들어 있었다. 그 순간만은 사각의 창틀을 부풀리는 차가운 형광등 빛이 세상에 다시없을 희망의 등대였으리라.
건너편 도심의 불빛은 그날따라 아득하게만 보였다. 누군가의 고립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어제와 다름없이 다만 휘황찬란할 뿐이었다. 이렇게 영영 저 환한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옅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잠시 문명으로부터 유배되어 버린 듯했다. 새로운 곳에 아직 마음의 터를 잡지도 못했는데 그 예측치 못했던 고립이 황망했다. 편치 못한 교통 사정을 감수하고서라도 운신하기가 덜 자유로우면 세상일이 좀 느긋하게 지낼 만도 하다 싶어 산 아래 동네로 이사를 했건만 사람의 마음이란 이토록 간사한가 보다. 스스로 택한 고독 속에서 안온하리라 생각했건만 강요되는 고독이란 참으로 두려운 것이었다. 복병이란 언제 어디에나 있게 마련인가 보다.
지난 늦가을 무렵, 텔레비전에서 ‘모 산사의 겨우살이’ 라는 프로그램으 보았다. 강원도 어느 첩첩산중에 위치한 자그마한 절이었는데 첫눈이 내리기 시작할 즈음부터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이 되어 버린다고 했다. 뱃길이 끊어져 버린 외딴 섬처럼 온통 고독으로 배부른 계절이라고나 할까. 겨울이 일찍 오고 늦게까지 머무르는 곳이니 어림잡아 두 계절 동안 발이 묶이는 셈이다. 폭설이 잦은 데다가 고산지역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다.
절마당 위로 헬기가 생필품을 공수해 주고 있었다. 나지막이 내려앉아 울러대는 헬기의 위세에 주위의 울창한 솔숲이 사시나무처럼 떨더니 급기야 사색이 되어 반쯤 드러누워 버렸다. ‘타다다다’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산사의 해묵은 적요를 해일처럼 일으켜 세웠다. 첩보 작전을 연상시킬 만큼 무전기를 든 검은 제복의 사나이 몇 명까지 동원이 되어 문명의 이기가 참 속속들이 파고들어 있구나 싶었다. 비록 그럴싸한 편리의 너울을 썼으나 한편으로는 끝내 사수해야 할 무엇까지 침범당한 듯 씁쓸한 여운이 남기도 했다.
주지승은 생각보다 젊은이였다. 서둘러 겨우살이 준비를 한 때문인지 아니면 유유자적하며 세상사에 돌아앉은 이의 눈빛인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편안해 보였다. 외부와의 단절, 현실과의 유리, 고독과의 타협에 이미 만반의 채비를 한 듯 여유로운 섬지기의 모습에 다소 안도감이 들었다. 어찌 보면 완벽한 고립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가능한 연락 수단이나 전파 매체가 이미 그 곳에 상주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의 훈기로부터 격리될 각오는 해야 할 터이다.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는 동물이라 한다. 닳고닳은 그 한마디를 굳이 빌지 않더라도 사람과 부대끼지 않는 삶이란 쉬 엄두를 내어 볼 수 없는 일이다. 때때로 온전히 혼자만의 숨소리로만 채울 수 있는 시공을 갈구하기도 하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막상 맞닥트릴 그 단단한 고독이 두려워서인지도 모른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처럼, 나 역시 고독에의 진한 향수가 있다. 단 한 번 내가 가진 것들을 박차고 나서 보지 못했기에 쉬 달래지지 않는 갈증처럼, 스스로에게 올무가 되기도 하는 막연한 동경에 곧잘 사로 잡힌다. 몇 날쯤 두문불출로 어설픈시도를 해보기도 하지만 문득 혼자라는 생각이 소름처럼 끼쳐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슬그머니 일상 속으로 가라앉는다.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을 방패삼아…….
그 작은 산사가 떠오른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동안 설해목 뚝뚝 관절 꺾는 소리만 인적처럼 찿아 들었을 터이다. 폭설로 뒤덮어 버린 오솔길처럼 잠시나마 세상에서 지워졌을 암자와 스님 두어 분, 정작 그들은 사람의 온기를 다 잊고 고요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