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언덕 너머 저쪽 / 헤르만 헤세
저 언덕 너머 저쪽
헤르만 헤세
소년 시절부터 나는 자주 산 꼭대기에 홀로 올라가 섰다. 그리고 나의 눈길은 먼 곳, 안개가 자욱이 낀 저 너머의 보드라운 느낌을 주는 언덕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아, 저 언덕 너머 저쪽에, 세계는 아름다운 남색에 잠겨 있는 것이다. 나의 젊디 젊고, 무엇이든 구하려는 영혼에 깃든, 애정의 모든 것은 합쳐져서 하나의 커다란 동경이 되고, 눈물이 되어, 나의 눈시울을 적셨다.
그리고 그 젖은 눈은 만사를 잊은 듯 먼 곳의 부드러운 남색을 삼킬 듯이 바라보는 것이다. 발아래 펼쳐진 향토는 나에게 너무나도 냉랭하게 느껴진다. 너무도 딱딱하고, 너무도 확실하기만 한 것으로 생각이 된다. 너무나도 분위기와 신비가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저 멀리야말로 만물은 저렇게 상냥함이 있고, 저렇게 해음(諧音)과 수수께끼와 꼬임이 충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표박(漂泊)을 좋아하는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저 어렴풋한 먼 곳의 구름들을 남김 없이 찾아 가서 그 위에 섰다. 그 언덕들은 냉랭하고 지나치게 확실했었다.
그러나 또 거기서 바라보는 저 멀리에는 다시 그 예감을 가득 담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푸른 심해(深海)가, --- 더 숭고하고, 우리들의 영혼을 부르며 가로 누워 있는 것이다.
그 후에 나는 가끔 그 푸른 저쪽에서 유혹하듯 손짓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매력에 거역하지 않았다. 나는 그 먼 세계와 친밀하게 지냈다. 그리고 가까운 발밑의 언덕에서는 타인이었다.
또 나는 지금 그 일이야말로 행복이라고 부른다. 저 멀리 저 멀리 몸을 기울이는 것을, 희뿌연 모색(暮色) 속의 푸른 물을 바라보는 것을, 그리고 가까운 장소의 냉정스러움을 잠시 잊는 일을 --- . 그것은, 소년 시절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행복이다.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고독한 행복이다. 아름다우나, 창연한 행복은 아니다.
나의 고독스럽고 은거에 가까운 생활의 행복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지혜를 배웠다. 그것은 모든 사물에서 간격이라는 솜털을 비벼 뜯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에도 나날이 근접이라는 잔혹한 빛을 쏘이지 않는다는 일이다. 만물에 대해서 금박에 씌어진 것에 접촉한다는 기분으로 대할 일이다. --- 가볍게, 살살, 마음을 가다듬고 ---
아무리 귀중한 보석일지라도 자주 보고 쓰고 해서 냉담하게 취급하게 되면, 가치 있는 것으로서의 빛이 감소되리라. 그러한 취급을 받으면서도 그 빛을 잃지 않을 만큼 그런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보석이란 없다. 그렇게 고귀한 직업도 없다. 그렇게 여유 있는 시인도 없다. 그렇게 혜택이 큰 국토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은 구해 볼 보람이 있는 기술이라 여겨진다.
그것은 우리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아름다운 사물에 쏟는 귀의(歸依)와 사랑과를 가깝게 있어 자주 대하는 사물에도 쏟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침의 태양과 영원한 성좌를 신성한 것이라고 추앙하는 마음을 변치 않고서 우리들은 우리들 주변의 자그마한 것에 상냥한 미광(微光)과 향기를 수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듬고, 상냥하게 취급하며,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이 결국 어느 한 구석에라도 가지고 있는 시적 분위기를 손상치 않음으로써 --- .
물건을 아무렇게나 향수(享受)하면 그 물건은 맛이 쓴 것이 되고 향수자도 품위를 상하게 된다. 초대받은 손님 같은 심정으로 취급하면 우리에게 귀중한 것이 되고, 스스로를 고귀하게 한다.
그런 일을 배우는 학교라고 하면 절제, 금욕의 학교보다 훌륭한 곳은 없다. 너는 너의 고향의 생활에 만족할 수가 없는가. 너는 더 아름다운, 풍부한, 따듯한 땅을 알고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너는 너의 동경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너는 더 아름답고, 더 일광이 눈부신 타국으로 간다. 너의 마음은 넓어지고 온화한 하늘이 너의 새 행복을 감싼다.
거기가 너의 낙원이다 --그러나 잠깐 기다려라, 네가 그곳을 칭찬하는 일을 -- . 불과 몇 년만 기다려라. 아니 최초의 환희와 신선미가 지날 때까지만 기다려라. 머잖아 때가 오리라. 그때 너는 산에 올라 너의 옛 고향쪽을 찾게 될 것이다. 고향에서는 얼마나 여기저기의 언덕이 부드럽고 푸르렀던가. 그리고 너는 거기서 마음에 짚이는 것이 있어, 너는 느끼리라. 거기에는 아직도 네가 유년 시절에 놀던 집과 뜰이 있다는 것을, 거기서 너의 청춘의 모든 성스러운 추억이 어려 있다는 것을, 그리고 거기에는 너의 모친이 지하에 잠들어 있다는 것을.
이렇게 해서 부지중에 옛 향리는 너와 친밀하면서 거리를 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향토는 타인스러우며 가까이 있게 된다. 이것은 [소유하는 것]과 [허물 없어진다는 것]의 모든 경우를 통해서 그런 것이다. 그것이 우리들의 애처러운, 정한 바가 없는 삶의 약속이다.
- 헤르만 헤세 에세이 [사람이 산다는 것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