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눈물의 영산홍 / 서영희

희라킴 2017. 9. 4. 17:18


눈물의 영산홍


                                                                                                                                 서영희

 “카톡 할 수 있나요.”

 등산을 가려고 막 옷을 챙겨 입는데 메시지가 들어온다. 지난주에 어머니를 영영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명희씨다. 그렇잖아도 내내 짠했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 그럼요. 많이 힘들죠.” 얼른 답장을 보냈다. “자고 일어났는데 하늘이 파랗게 드높은 거예요. 가을이구나, 해야 할 텐데 눈물이 폭풍처럼 쏟아지네요.” 마치 마주보고 앉은 듯 가만가만 속말을 털어 놓는다. 눈물로 홍수가 졌을 그녀의 작고 가무잡잡한 얼굴을 떠올리자니 덩달아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도 가끔씩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창으로 쏟아져 들어 온 햇볕이 너무 투명하다든지, 바람에 갈대가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면 괜스레 가슴이 철렁해지며 알 수 없는 슬픔이 목구멍을 타고 넘는다. 더러는 남모르게 눈물을 찍어내기까지 한다.

 

 얼마 전, 남편과 같이 서울 나들이를 갔을 때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언니 집에 들러야 할 일이 있어 남편과 방향이 다른 버스를 타게 되었다. 무심히 내다 본 차창 너머에는 초로의 중년이 된 남편이 나를 배웅하느라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다. 유리창을 통해 본 남편이 새삼 낯설어보였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세월의 소낙비를 고스란히 맞고 멀거니 나를 올려다보는 남편을 보는 순간 주르륵, 소리 없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한때 그토록 당당하게 그를 곧추세우던 청춘은 대체 어디로 가버렸는지.


 번연히 눈앞에 세워두고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영영 이별을 선고 받고서야 오죽하랴. 더구나 세상 끝에서도 가장 든든한 응원군을 자처하는 어머니가 아닌가. 육신의 어느 한 구석이 눈물의 사태로 무너져 내린다한들 과하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돌아보면 눈물로 점철된 시간이 나에게도 있었다. 큰 언니가 아이를 낳고 의료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을 때 억장이 무너져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는 엄마를 보며 흘렸던 침묵 같은 눈물이 있었던가 하면, 그런 언니를 남겨두고 세상을 뜬 엄마의 마지막 앞에서 짐승처럼 절규했던 눈물도 있었다. 작은 언니의 결혼은 또 다른 눈물을 선사했다. 그나마 유일한 비빌 언덕이었던 언니가 짝을 찾아 내 곁을 떠나자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에 숨죽이며 흐느꼈다. 눈물이 감정의 유희가 아니라 절절한 상실감의 다른 이름이던 시절이다.


 결혼식 날에도 눈물이 났다.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훑고 지나간 오랜 방황에 종지부를 찍는 이별 의식이었는지, 한 남자에게 나의 전부를 걸며 흘린 눈물이 벅찬 행복의 예감 때문이었는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다른 표현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곱게 화장한 얼굴이 온통 눈물로 얼룩졌다.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했던 날도, 지극한 산고 끝에 핏덩이 아들을 품에 안았을 때도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기쁨도 환희도 눈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고나 할까.


 그 중에서도 유독 잊지 못 할 눈물의 추억이 하나 있다. 봄이 되면 나는 종종 꽃시장에 들른다. 그날도 친구와 함께 석대 꽃시장에 갔다. 겨우내 옷을 벗고 지낸 관목들이 따스한 햇살 아래서 해바라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온실 속에 갇혀 지내던 여린 묘목들도 앞 다투어 알록달록 새 옷으로 갈아입느라 분주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귀한 봄볕 아래서 재잘재잘, 소곤소곤 야단스러운 그들만의 언어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화사하고 사랑스럽고 앙증맞은 봄꽃들과 눈을 맞추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뭉근한 시선이 느껴졌다. 뭔가 환한 빛 같은 것이 나를 비추는 듯도 했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사람 키만 한 영산홍 한 그루에 흠칫 놀랐다. 하늘하늘한 실크로 온 몸을 휘감고 잔뜩 성장(盛裝)을 한 여인처럼 그윽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이유 없이 가슴이 서늘해졌다. 감전되듯 온 몸에 저릿한 전율마저 흘렀다. 마치 장정의 고봉밥처럼, 활짝 핀 꽃 송아리를 수북하게 이고 있던 영산홍. 가녀린 가지를 온통 휘덮고 있던 짙은 핑크빛의 꽃송이들은 정결하고 아름다웠다. 아름답다 못해 처연하다고나 할까. 만개한 꽃인데도 전라(全裸)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농염하거나 방자하기는커녕 고아한 품위가 전신으로 흘러내렸다.


 “어쩌면, 어쩌면.”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단순한 꽃이 아니었다. 참고 참았던 설움이 일시에 터져 나온 통곡이었다. 애달픈 절정의 순간을 앞두고 부끄럽게 드러내는 환희의 눈물이기도 했다.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영산홍의 울음이 화창한 봄날을 사정없이 흔들어 대고 있었다. 그 처절하리만치 아름다운 만개 앞에 석상처럼 굳어진 나는 어떤 치하의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울컥, 눈물이 났다. 나도 한 그루 영산홍처럼 서러운 속내를 옷고름처럼 풀어재끼고 목 놓아 울고 싶었다. 그건 아마도 인고의 세월을 보상 받기에는 봄이라는 계절이 너무나 짧고 덧없다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머잖아 부드러운 바람과 순한 햇볕은 허망하게 사라질 것이며 짧디 짧은 봄날도 뒷모습을 보이며 야속하게 돌아서고 말 것이라는 예감이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을 몰고 왔던 지도 모른다.


 폭풍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명희 씨가 그 날의 영산홍을 닮지 않았을까. 그녀에게 이별의 체감온도를 낮출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가 눈물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내게서 떠나가는 것들,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을 보내며 흘리는 눈물이야 말로 인간이 내지르는 가장 곡진한 언어라고 풀어 본다.


 세상의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한다는 글귀를 읽은 기억이 있다.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그리움도 그 극점에서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눈물이 아닐까. 그녀의 뺨에 흘러내리는 붉디붉은 눈물을 읽으며 말로는 가닿지 못하는 내 마음을 한 줄금 눈물로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