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 박헬레나
말
박헬레나
가끔 말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 뜻밖의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곤 한다. '말 잘한다'는 말을 굳이 언짢게 들을 일은 아니지만 '말 잘하는 사람치고 속 찬 사람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혹 내가 간드러진 말재주나 부리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의문스러운 그 '잘'이란 의미를 가끔 되짚어 본다. 내가 하는 말이 사전적 의미로 주어와 술어에 맞게 사용하여 정확한 문장을 구사한다는 뜻인지, 기능적 의미로 음성과 발음을 똑똑히 하여 의사 전달을 분명하게 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논리적인 달변으로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뜻인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갖다 붙여 보아도 어느 쪽에도 해당사항이 없는 것 같다. 원래 심약해서 여럿 앞에 서면 의사표시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소심자 아닌가. 내 글쓰기의 원류도 결국은 말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뒷전에서 혼자 되뇌고 싶은 욕구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말은 자기표현의 수단이자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도구이다. 동시에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판단하는 일차적 기준이 된다고도 볼 수 있다. 적시적소에 자신의 의사를 알맞고 분명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 바람직한 일이겠는가.
오래 전, 아이들의 학교에서 어머니교실을 맡아 봉사하고 있을 때다. 졸업식 날 떠나는 아이들을 위한 축사를 부탁 받았다. 연단초보자이면 당연히 원고를 써서 읽어야 할 터인테 겁도 없이 요점 몇 가지를 기록해 가지고 연설을 하겠다고 덤볐다.
단상에 올라서자 수많은 까만 눈동자들이 반짝거리며 내게로 달려들었다. 순간 머리 속이 아뜩해지며 텅 비어 버렸다. 며칠을 생각하고 연습해 두었던 이야기들은 실타래 엉키듯 뒤죽박죽이 되어 횡설수설하다가 내려오고 말았다. 아마도 개교 이래 최악의 축사였으리라.
그날 이후로 여럿 앞에서의 말하기는 내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다시 회복할 기회가 없는 일회성에 더욱 주눅이 드는 것이다. 내뱉는 순간 사라지는 말이지만 그 위력은 또 얼마인가. 오늘날 매스컴의 위세로 보아도 말의 힘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경우를 역사를 통해서 수없이 보아 왔다. 이 위험한 도구를 우리는 얼마나 함부로 사용하는가.
가끔 한잔하자는 말이 오간다. 그것은 술 마시자, 차 마시자는 의미보다 한잔 앞에 놓고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자는 뜻일 것이다. 불의를 향한 울분도, 힘없는 자의 억울함도 술 한잔 앞에 놓고 질타하고 삶이 갖다 주는 아픔도, 혼자 삭이기 힘든 슬픔도 차 한잔 앞에 놓고 서로 나누는 그 중계 역할을 말이 하는 것이다. 말이 지닌 해학과 익살에 우리의 고단한 삶이 잠시 웃음을 선사받기도 한다
더러는 식상하여 귀를 틀어막고 싶은 말들도 있다. 진원지가 중부지방 어디쯤이던가. 궤변, 폭언에다 유창한 거짓말까지, 아무리 곤두세워도 그 곳의 이야기들은 도무지 새벽안개 속 같다. 그 큰 목소리의 주인공은 '잘 짖는다고 해서 좋은 개가 아니다.'라는 강자의 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최상의 웅변은 침묵이라지만 때로는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입에 자물쇠를 채운다는 것은 자칫 마음의 통로도 끊어진다는 것은 아닐런지. 말이 없는 우리네 삶이란 얼마나 어둠고 무겁겠는가. 말하는 즐거움, 듣는 재미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말을 주고받지 않는다면 인간의 만남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신이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창조를 하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셨다는 창조설화를 보더라도 말로써 존재가 드러나고 말에 의해서 가치가 매겨지고 인류 역사가 이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말은 한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를 대변한다. 말이 사라지면 문화도 사라지고 민족도 사라진다. 중국 땅에 이백만 명이 넘는 만주족이 그 이름조차 없어져 버린 건 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토록 인간사에 긴요한 말은 하기도 잘해야 하지만 듣기도 잘해야 한다. 같은 말이라도 억양에 따라 뜻이 달라지기도 하고 듣는 사람의 이해에 따라 혹이 될 수도 있다. 말을 잘 듣지 못함으로 생기는 오해로 인해 웃어넘겨 버릴 수만 없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오가는 연인과 연인, 눈길만 스쳐도 뜻을 헤아리는 오랜 지기 사이에는 눈으로 하는 언어, 가슴으로 하는 말도 있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아름다운 말을 한다고 해도 마음과 마음을 교감시키지 못하면 한낱 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고기는 씹어야 진미를 알듯 말은 해야 맛이다.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들을 고운 체로 걸러서 꼭 필요한 말만 할 수 있으면 좀 좋으랴만 얼마나 많은 수양과 훈련을 거쳐야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말은 하고 나면 후회할 때가 많다. 그러나 도로 주워담을 수 없는 것이 또 말 아닌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 말하기이거늘 말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래도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참말일 것이다. '말 잘한다고 해서 다 현인이 아니다.' 라는 격언을 다시 새겨 봄 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