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일어서는 숲 / 김선화

희라킴 2017. 3. 31. 21:19




일어서는 숲 


                                                                                                                                        김선화 

 

  인적 뜸한 호숫가 산자락에 바람이 분다. 피어나는 활엽수들이 초록이랑을 만든다. 물결보다도 유연하게, 그리고 질서 있게 미끄러지는 은빛 파도……. 나는 그 대자연의 파노라마 앞에 우뚝 멈춰 선다. 호수를 끼고 둑길을 거니는 남녀의 모습이 그림처럼 한가롭다. 숲을 지키는 백로 몇 마리가 초록 배경에 점으로 찍힌다.


 민감할 정도로 계절을 타는 나는, 1월 하순이면 이미 봄을 느낀다. 혼자서 길을 걸으며 보이지 않는 사물과 대화하는 일이 좋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잎문을 키우던 줄기가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또 흙에 묻힌 씨앗이 배아의 용트림을 하는 것처럼, 내 안의 내가 요동친다. 그러는 사이 2월이 간다.


 3월이 되면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깨어나는 자연을 만나러 길을 나서야만 성이 풀린다. 그러다가 후미진 산길을 해매기도 한다. 이름 모를 산새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봄의 협주곡은 여느 음악회에 댈 게 아니다. 물가의 버들개지는 푸른 눈을 띄우며 뽀얀 열매를 살찌우느라 여념이 없고, 개복숭아 가지에도 불그죽죽 물이 오른다. 겨울을 견디어낸 소나무는 이때에 더욱 푸르게 솔 순을 밀어 올린다.


 이처럼 새 생명의 훈풍이 몰아치는 곳에서 나는 수목들의 기침(起寢)소리를 받아 안는다. 하지만 그 소리들을 그리지 못해 가슴만 탄다. 보이지 않는 형상마저 유추해내는 것이 글 쓰는 사람의 자질이련만, 변화하는 자연 현상 앞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화가를 꿈꾼다. 내가 만약 화가라면, 눈앞의 풍광들을 화폭에 휙휙 담아낼 것 같다.


 고도의 훈련에 의해 그런 절묘한 표현이 가능한 것이겠지만, 문장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에도 화가는 접근하는 것 같아 그 오묘함에 젖는 것이다. 주절주절 떠벌리지 않고도 꽃을 피우는 나무들처럼, 한 편의 짧은 글에 그런 명징(明澄)한 이야기들을 담아낼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를 ‘숲’이라 노래한다. 그런데 그 도시의 숲엔 시끄러운 소리들이 끊이질 않는다. 물고 찢고 허물어지는 소리의 아수라장이다. 그런 속에서 순수를 꿈꾸는 사람들은 기를 못 편다. 들려오는 잡음에 귀를 막아야한다.


 이럴 때 화합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5월의 숲으로 가보자. — 혼화하던 숲이 불끈 일어선다. 온 산의 나무들이 어깨에 어깨를 걸고 춤을 춘다. 서로 얼싸안고 한 덩이가 된다. 그 안에서 고요가 흐른다. 작은 물줄기도 흐르고, 배아기에 있던 생명이 눈을 뜬다. 생명의 환희에 젖은 숲에 평화의 그늘이 드리워진다. 옥신각신하는 소리들이 이곳엔 얼씬도 못한다.


 이보다 더한 독재가 있을런가. 자연의 독재 앞에서 나는 사람들간의 신의를 찾는다. 이곳에선 가녀린 풀들도 일어나 살풋 살풋이 춤을 춘다. 드디어, 사람 사는 소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