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감꽃 목걸이 다시 걸고 / 허창옥

희라킴 2017. 1. 30. 17:57



감꽃 목걸이 다시 걸고 


                                                                                                                                         허창옥  

 

 동네 한가운데로 뚫린 골목에는 공동 우물이 있었다. 몇 가구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으므로 끼니 때가 아니면 우울가는 대체로 조용하였다. 예닐곱 살쯤 된 바짝 마른 계집아이는 늘 우물가 한 귀퉁이에서 혼자 꼼지락꼼지락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우물가에 핀 물에는 이웃집 담장 넘어 뻗은 감나무에서 감꽃이 하얗게 떨어져 있었다. 아이는 감꽃에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하루는 감꽃으로 어렵게 목걸이를 만들었다. 그 목걸이를 걸고 감나무를 올려다보았을 때 감나무 잎사귀 사이로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렸고 감나무 잎들은 온통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감꽃들은 감나무 가지 끝에서 아이의 가슴으로 무더기로 떨어져 덮이는 듯했다. 그것이 아름다움이란 것은 몰랐지만 어렴풋이 번지는 기쁨을 알게 된 것이다.


 날마다 새 감꽃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다 걸었다. 감꽃이 모자라는 날은 바람이 불기를 간절히 빌었다. 어머니가 심하게 꾸지람을 했다. 이상한 짓을 한다는 것이었다. 실에 꿰어져 있는 감꽃을 하나하나 찢어서 먹어 버렸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목걸이는 내 가슴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내 속으로 들어간 목걸이는 그 뒤로 내 목에서 다시 보이지 않았다.

 

 어떤 의미로 내 존재가 거부당하면 나는 말없이 문을 닫아 걸었다. 최초로 내가 거부당한 기억은 꽤 오랫동안 내 의식을 아프게 지배하였다. 그 이야기를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제는 그런 아픔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투병을 하던 마지막 몇 년에는 나도 홍역과 뇌막염으로 온 집안을 어지럽힐 때였던가 보다. 나는 온종일 빽빽 울어대서 집안일이랑 아버지 병간호에 반쯤 혼이 나간 어머니를 안절부절케 했다고 한다. 병으로 날카로워진 아버지는 나만 보면 고함을 질렀고 나는 악을 쓰며 울었으니……. 아버지가 다른 세상에 갈 즈음에 나는 병에서 벗어나서 겨우 사람꼴을 갖추었다. 아버지 곁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나에게 아버지는 회해를 청했다.

 “내가 저 아이의 마음을 풀어주고 가야 하는데…….”

온 가족이 매달려서 달래고 치켜 세우고 야단을 쳐 보았지만 나는 끝까지 아버지의 품에 안기지 않았다.

 “내 잘못이다.”

아버지는 탄식하셨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나는 가슴에 빗장을 질렀다. 사람보다 하늘이나 땅, 꽃을 좋아하였다. 이들과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존재에 대한 인식의 눈을 떠 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글짓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갇힌 의식을 풀어내는 나름대로의 숨쉬기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마음을 열지는 못했으므로 내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언제나 자신을 의식하며 남의 이야기만 했다. 중 ‧ 고등학교에 다닐 때 백일장에서 몇 번인가 상도 탔지만 「소나기」나「좁은문」같은 작품을 어쭙잖게 흉내낸 소품들을 썼다.


 사랑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있었다. 분명히 그것은 사랑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의미를 채 깨닫기도 전에 아침 안개처럼 사위어갔다. 내가 마음의 빗장을 다 열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렇다. 나는 계속 거부하면서 살았다. 나에게 있는 순백의 외로움을 위로해 주고 싶다고 하는 글친구가 있다. 누구에게나 외로움은 있으리라. 위로 받기를 거부했다. 외로움을 순결처럼 간직해 왔다. 위로 받으면 그 정절(貞節)이 무너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세월은 잔잔한 바람결처럼 혹은 세상을 뒤엎는 폭풍처럼 내 곁을 지나갔다. 약국에 서게 되었고 이 세상에서 가장 경건한 의미를 지니는 ‘어머니’가 되었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었다. 날마다 사람들과 부대껴야 했다. 조금씩 벽을 허물었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노력했지만 차츰 나와 똑같은 존제로 타인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때로는 인간에 대한 연민에 푹 젖어들기도 했다. 나를 내어 주는 것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갔다. 내어 주는 것은 언제나 내게 기쁨으로 되돌아왔다.


 이태 전에 이장을 할 때 나는 아버지의 유골을 뵈었다. 비로소 닫힌 문을 활짝 열었다. 훨씬 전에 열려 있었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은 다 열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그날 남김없이 열었다. 아버지 당신에게, 나 자신에게, 타인에게, 나를 둘러싼 자연과 우주에게 마지막으로 신(神)께.


 내 의식은 갑각류 동물처럼 쓰고 다니던 딱딱하고 무거운 등딱지를 내려놓았다. 나는 이제 감꽃 목걸이를 다시 걸고 내 이야기—수필—를 쓸 수가 있다. 무엇보다 나는 사랑을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