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와 오리 / 최장순
백로와 오리
최 장 순
다음 생에서는 늘 홀로인 백로보다 오리로 태어나고 싶어.
저 탄천처럼, 문득 내게로 흐른 그의 말이 가슴을 쓸쓸히 훑는다. 수심 얕은 물에 서 있는 백로의 가느다란 다리가 그 감정을 더욱 짙게 한다. ‘홀로’라는 것은 독립성이지만 고독은 피할 수 없는 것, 명상가나 수행자를 연상시킨다. 저만큼 가다 뒤돌아봐도 그 자세 그대로인 백로는 내가 저쪽 징검다리까지 돌고 올 때쯤 과연 몇 발짝이나 옮기고 있을까.
하지만 사냥감을 찾는 백로의 눈빛은 예리하다. 정중동靜中動. 길고 날카로운 부리는 작살이다. 물고기 한 마리를 위해 무려 30분이 넘도록 참아낸다. 오랜 기다림 끝의 먹이를 향한 전력투구는 선천적 낚시꾼임을 입증한다. 장난기가 발동하면 점잖은 체면을 버릴 때도 있다. 물가의 수초를 발로 흔들어 먹잇감이 놀라 뛰쳐나오면 잡아채거나, 양 날개를 활짝 펼쳐 그림자를 만들어 피난처로 알고 숨어든 고기를 낚아채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공奇攻법이지 정공正攻법과는 거리가 멀어서, 언제 그랬나는 듯 멀뚱한 표정으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미동도 없는 근엄한 왕실 근위병의 모습이다.
새는 날 때가 가장 아름답다. 하늘과 땅을 자유롭게 오가는 신령한 존재. 백로의 비상을 보면, 비록 어리석다 할지언정 이카루스의 날개라도 갖고 싶다. 날아오르려 홰를 칠 때면 목은 앞으로 길게 뻗어 용을 쓴다. 물을 박차고 오른 후에는 다시 S자로, 다리는 꽁지깃 바깥으로 뻗어 날씬한 유선형의 비행체를 만든다. 성공적 이륙을 과시라도 하듯 머리 위를 한 바퀴 선회하고 나면 차츰 시야에서 멀어진다. 하천과 멀지 않은 산 어디쯤에 그들의 집성촌이 있을 것이다. 보통 혼자 있는 모습만 눈에 익지만, 그들도 분명 보금자리로 모여들고 물어온 먹이를 새끼에게 토해줄 것이다. 배부른 날개들은 청정하늘을 무대삼아 한바탕 군무를 펼치겠지.
오리는, 백로의 얕은 물보다 조금 깊은 곳에서 무리를 짓고 있다. 다리가 짧아 슬픈 짐승일까, 부리나케 물속을 뒤지고 거꾸로 서서 발버둥을 쳐야 겨우 사냥감을 포획한다. 안간힘을 쓰는 몸짓이 싱크로나이징을 연상시킨다. 먹이포획에 뜸을 들이는 백로와 달리, 오리는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나서는 적극적인 사냥꾼이다. 먹는데서 성격이 나온다고 하던가. 수초나 조개와 우렁이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에서 유추해볼 때, 오리는 다혈질일 것이다. 꿱꿱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마치 수다스러운 사람을 보는 것 같다. 부지런한 근성 덕에 배곯는 일은 없지 싶다. 단단한 몸, 뭉툭한 부리, 헤엄치기 좋은 물갈퀴는 생활력 강한 살림꾼을 연상시킨다. 무릎연골이 다 닳도록 시장을 드나들던 키 작은 어머니를 보는 것처럼. 어미오리가 새끼들을 이끌 때는 일렬이다. 어미가 앞장서고 새끼들이 끈처럼 뒤를 따른다. 고만고만한 어린것들을 이끌고 가는 어미의 모성애는 믿음직스럽기까지 하다.
수면이 주된 삶의 영역인 오리는 멀리 날아야할 이유가 없다. 기껏 주위 사냥터를 옮길 수 있는 거리만 날면 되는 짧고 낮은 비상이다. 온난화로 철새와 텃새의 기준마저 모호해지고 있는 요즘, 오리는 사철을 거주하는 친근한 텃새처럼 생각된다.
고고한 선비나 사색가는 따뜻함보다는 냉철함에 가깝다. 침묵은 필수의 벗, 말을 뱉기보다는 삼킨다. 그래서 실수는 적지만 속을 알 수 없으니 쉽게 다가갈 수 없다. 백로가 그렇다. 먹이를 포획하기 위해 한곳만을 주시하는 백로는 ‘속을 보이지 말라’는 전략으로 무장한 정치가 같다. 대중과 함께 하지 않는 정치, 자신의 입지만을 쌓으려는 이는 가까이하기 두려운 존재다.
쉽게 감정을 드러내고 무리를 지을 때면 소란한 장마당을 연출하지만 그 속에 보이지 않는 질서를 만들어 적응하는 것들. 열성과 부지런함을 삶의 철칙으로 삼는 실속 있는 사람을 닮은 오리에게서 무리의 힘을 과시하는 결속력을 본다.
그날, 나란히 걷던 그가 성큼성큼 나를 앞질러 갔다. 키가 큰 뒷모습은 영락없는 백로, 스타를 따르는 팬처럼 나는 그를 따랐다. 빼어난 외모와 늘씬한 키, 백로는 스타다. 하지만 친숙하기보다 홀로 즐기는 스타의식은 대중을 멀리한다. 군중 속의 고독, 그 주변으로 오리가 쉽게 몰려들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그러나 그는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비위를 맞추거나 친근한 웃음을 흘리는 백로이자 오리다.
고결함과 평범함으로 단정 짓는 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필요에 따라 우아하거나 통속적이거나 하니 말이다. 저마다 어쩔 수 없이 따라야만 하는 삶의 방식이 있다. 다른 것은 같지 않을 뿐 틀린 것은 아니다. 그 삶의 방식이 나와 다르다고 내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백로와 오리 사이를 우리는 얼마나 오가야만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