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파람 / 김현숙
마파람
김현숙
어머니와 점심을 할 약속을 하고 바닷가에서 만나기로 했다. 조금만 늦어도 전화를 걸어 재촉하는 탓에 서둘렀더니 너무 일찍 도착했다. 해녀들은 한창 작업 중이고 남들보다 먼저 나오는 어머니도 물질을 마치기엔 이른 시간이다. 약속장소 조금 못미처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차를 세웠다.
엊저녁 큰비가 내려서인지 바다의 상태가 썩 좋아보이질 않는다. 빗물이 흘러들어 바다엔 굵은 황토색 물띠가 여럿 생겼다. 민물과 바닷물이 하나로 섞이기엔 부침이 심한 듯 푸르고 누런 물결이 제각각 출렁인다. 해녀들은 해안 가까이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한 해녀의 두 다리가 위로 쭉 뻗는가 싶더니 물속으로 쏘옥 사라진다. 하나, 둘, … 마음속으로 세어보는데 수심이 얕은 곳이라 그런지 금세 올라온다. 혹시 어머니인가 싶어 눈여겨보나 어머니는 아니다. 어머니였다면 벌써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을 거다. 일전에 자식이 온다는 날엔 작업을 하면서도 자꾸 뭍을 보게 된다던 말을 했었다. 전에도 내가 뭍에 서 있을 때 용케도 어머니는 멀리서 알아보고 손을 높이 흔들었다.
바람에 머리가 흐트러진다. 후덥지근한 마파람이다. 지금 해는 쨍쨍하지만 빠르면 오늘밤, 늦어도 내일은 비가 내릴 것 같다. 해녀의 딸이라고 바람으로 날씨를 미루어 짐작하는 내가 가소롭긴 하나, 어머니를 통해 들은풍월에 오십여 년 섬에 살면서 몸소 터득한 짐작이다. 마파람이 불면 물이 간다. 마파람으로 인해 물이 해안가로 밀려오지 못하고 먼 바다로 밀려가는 것을 해녀들은 '물이 간다'고 한다. 오늘은 ‘물이 어둡고 물이 가는’ 날씨다. 해녀들이 가까운 만(灣)에 모여 물질을 하는 것도 다 그 조짐 때문일 게다. 물결은 벌써 너울너울 먼 바다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 바다에 든 해녀들에게 마파람은 칠성판을 지고 넘어야 하는 맞바람이나, 그걸 예감하면서도 해녀들은 바다에 들 때가 많다. 오늘처럼 경계경보쯤 되는 날씨까지 쉬어버리면 이 섬에서 물질을 할 날은 많지 않다. 대신에 해녀들은 안전한 곳에서 서로 조를 이루어 작업을 한다.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상대(따기 어려운 전복이나 큰 생선)를 만났을 때, 해녀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작업을 하다가 누군가 먼저 물이 가는 것을 감지하고 “물이 감수다!” 하고 소리치면 모두 작업을 멈추고 뭍으로 나온다.
나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물이 어두워서 빈 망사리’라거나 ‘마파람에 물이 가서 죽는 줄 알았다’고 아버지에게 하는 말을 종종 들었다. 아버지는 그 말에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농사를 짓는 아버지야 가뭄에 마파람이 무엇보다 반갑겠지만, 해녀 아내를 둔 지아비로선 그게 불안의 조짐이기도 했다.
어느 여름날도 마파람이 불자 아버지는 공연히 마당에서 서성거렸다. 그때 남쪽하늘엔 먹구름이 올라오고, 성하를 맞아 무성한 멀구슬 나뭇잎들은 심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아버지는 ‘비가 오려나’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마을회관엘 다녀온다고 집을 나섰다. 마을회관에 간다는 건 핑계였다. 마을회관은 우리 집과 바다의 중간지점 언덕배기에 있었고, 그곳에선 바다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다. 회관에 간다던 아버지는 얼마 안 되어 어머니와 나란히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아버지는 손수 해산물을 손질하고 그것을 안주삼아 반주를 하였고, 어머니는 그 옆에서 바다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였다. 오늘 수입은 얼마였고, 아쉽게도 큰 전복을 놓치고 말았다, 물이 가지 않았다면 놓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등등의 얘기였다. 그 때 아버지는 “욕심이랑 부리지 말게”라며 어머니에게 술잔을 건넸었다. 어머니는 술을 잘 못하지만 아버지가 건네는 잔은 받아들었다.
“나는 평생 동네 점방에서 한가하게 앉아 술잔을 기울여 본 적이 없었네. 사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그것이 네 어머니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어.”
언젠가 아버지가 하신 말씀인데, 사실 그랬다. 과묵하여 특별한 애정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농작물을 팔아 목돈을 손에 넣었을 때도 밖에서 기분을 내지 않았다. 어머니가 안주삼아 챙겨온 해산물로 반주 한 잔 하는 것, 그것이 당신 스스로 말하던 호사였다.
“나는 처복이 있는 사람이라 상처하지는 않을 거여.”
어느 해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고 생사를 넘나들 때 태연을 가장하고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었다. 결국 그 말씀대로 어머니는 목숨을 보전했다. 반면에 몇 년 되지 않아 아버지는 큰병에 걸렸고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제 어머니에겐 마파람이 불어도 걱정해 줄 이가 없다. 바다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던 친구도 바다에서 잃었다. 젊고 힘 있는 해녀들은 멀리로 나가고, 어머니는 뭍 가까이에서 혼자 물질을 하다 힘에 부치면 물을 나온다.
“죽어사 저 바당도 잊어 불주, 살앙사 어떵 잊어부느니?”
당신 친구를 잃었을 때 그만하시라는 내 말에 던지듯 하던 대꾸가 떠올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둘러 어머니와 약속한 곳으로 차를 몰았다.
어머니는 용천수가 솟는 곳에서 물옷을 입은 채 구부리고 앉아 해산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큰 소리로 불렀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어머니!” 가까이 가서 다시 외치듯 불렀으나 당신이 하는 일에만 열중할 뿐 미동도 않는다. 물질을 하고 난 뒤라 귀먹음 증세는 더 심해졌을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두 팔로 어머니의 어깨를 그러안았다.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더니 환하게 웃는다. 검게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에 아직도 가지런히 고운 이가 도드라진다.
“물이 가기 전에 나온다고 서둘렀는데 힘들어 혼났네.”
손질을 마치고 허리를 펴며 어머니는 먼 바다를 바라봤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물이 갈 거라는 걸 일찌감치 짐작했다는 걸까. 해녀의 삶 육십 년.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마파람을 이겨냈던 것일까.
<한국산문 2016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