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쓰기의 여섯 훼방꾼 / 신현식
수필 쓰기의 여섯 훼방꾼
신현식
무엇이든 막힘없이 통하는 것을 만사형통이라 한다. 이것을 만인이 소원하는 것으로 보아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만사형통은 아니더라도 무슨 일이든 척척 잘 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잘 되는 사람은 덕을 쌓은 조상님이 곁에 계실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일을 그르치는 훼방꾼이 곁에 있는 게 틀림없다.
수필 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을 줄줄 잘도 쓰는 분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해 끙끙 앓는 분이 있다. 물론 여건이 좋지 않을 때에는 글쓰기가 쉽지 않은 게 당연하다. 우환이 있거나 신경 쓸 일이 있는데 어떻게 편안히 글을 쓸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런 경우도 아닌데 글을 쓰지 못할 때에는 글쓰기를 방해하는 훼방꾼이 분명 곁에 붙어 있는 게 틀림없다.
첫 번째는 글감을 찾지 못 하게 하는 훼방꾼이다.
이 훼방꾼은 매사를 건성으로 보게 하거나 아예 글쓰기 자체를 잊게 한다. 이 고약한 훼방꾼을 쫒는 데는 일상이 모두 수필이라는 생각밖에는 없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늘 수첩을 지니고 다니며 체험을 바로 바로 기록해 두는 것이다. 그러면 건성으로 보지 않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수첩에서 글감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등록할 체험 자체가 없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은 소재주의에 빠진 분들이다. 보통사람에게는 애당초 거창한 소재는 없다. 일상의 작은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거나 해석해야 한다. 보려하면 꿈에서라도 보인다고 했다. 지금부터라도 모든 것에 관심을 갖자.
두 번째는 생각을 흐리게 하는 훼방꾼이다.
소재는 겨우 찾았지만 이 소재로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즉 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이냐이다. 수필은 주제나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필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주제나 의미는 쓰고자 하는 대상이 지닌 가치이다. 그러므로 내가 쓰고자 하는 대상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가를 발견해 내어야만 한다. 좋은 수필은 소재에서 주제를 바로 찾을 때 나온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쉽지가 않다. 가치를 쉽게 찾지 못할 때엔 우선 체험만이라도 써놓고 보자. 그렇게라도 해놓으면 이내 찾을 수 있다. 만약 그래도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때에는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또 찾아낸 가치나 의미가 너무 미미하다면 일반화를 하여 확대시키면 된다.
세 번째는 시작을 가로막는 훼방꾼이다.
소재와 주제를 다 찾았는데 쉽게 착수를 하지 못하는 분이 있다. 시작을 가로막는 훼방꾼이 있기 때문이다. 이 훼방꾼을 물리치는 방법은 개요 작성이다. 글을 쓰기 전에 필히 해야 하는 과정이 개요 작성인데, 절대로 머리에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다가는 일 년에 한두 편밖에 쓰지 못한다. 당장 컴퓨터 앞에 앉거나 백지에다 몇 자 적어보자. 훨씬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다. 아니면 바로 쓰기를 하자.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부분이나 체험이 일어난 그 순간부터 쓰기 시작하면 된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던가. 집합이니 정렬 같은 구성은 뒤에 하는 수도 있다.
네 번째는 잔뜩 힘을 들이는 훼방꾼이다.
소재도 찾고 가치도 찾고 개요도 작성 했건만 그래도 글을 쓰지 못하는 분이 있다. 잔뜩 힘을 주기 때문이다. 운동선수에게 코치는 힘을 빼라고 한다. 어깨나 팔에 힘을 주면 결코 KO펀치나 홈런을 날릴 수 없기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잘 써야지 하면 오히려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초고 때에는 마음 내키는 대로 써라. 아무 부담 갖지 말고 소재의 분위기에 푹 빠져서 써라. 잘 쓰려고 하다가 못쓰는 것보다 아무렇게나 쓰고 난 다음 두 번, 세 번 고쳐 쓰면 명작도 나올 수 있다. 평소에 잘 쓰다가도 공모전에 당선 되거나 등단을 한 후에 영영 작품을 쓰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등단을 했으니 잘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머리에 잔뜩 힘을 들이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는 소심하게 만드는 훼방꾼이다.
유명 작가나 솜씨 좋은 동료의 작품을 보고 도대체 ‘내 글은 무엇인가’ 하며 실망하고 좌절 하는 분들이 많다. 무서운 훼방꾼임에 틀림없다. 이 훼방꾼은 진드기처럼 붙어서 시나브로 마음 약한 작가의 붓을 꺾어 놓는다.
글은 개성이다. 피천득님은 피천득님의 문체로 윤오영님은 윤오영님의 문체로 쓴다. 다 명작을 남기신 분들이다. 멋있는 문장, 고상한 단어를 구사할 수 없어도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내 스타일대로 나의 삶을, 나의 역사를 쓰면 되는 것이다. 명작은 기교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훌륭한 골격(자신의 삶)이 만들어 준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러나 문학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은 해야 한다.
여섯 번째는 짬을 내 주지 않는 훼방꾼이다.
바빠서 글을 쓰지 못한다는 분들이 많다. 가장 많은 분들이 이 훼방꾼을 만나는 것 같다. 물론 시간에 쫒기면 글을 쓸 수 없다. 생업이 가장 우선이다. 세상에 먹고 사는 일 보다 더 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바쁘다는 분들의 대부분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열정이 식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열정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을 만들어 낼 것이다. 열정이 없는 훌륭한 예술가는 이제껏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글쓰기의 여섯 훼방꾼들을 만나보고 대책을 강구해 보았다. 대책은 그저 대책일 뿐이다. 실행하지 않으면 결코 훼방꾼을 물리칠 수 없다. 이 대책을 실행케 하는 힘은 오로지 열정밖에 없다고 본다. 열정은 불가능도 가능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지 않는가. 열정은 정신을 번쩍 들게도 하고, 용기를 주기도 하고, 시선의 폭을 넓혀 주기도 하고, 지혜도 주고, 사고를 유연하게도 하고, 습관도 고치게 할 것이다. 자- 지금부터라도 열정에 불을 지피자. 처음 시작했을 때의 활활 타올랐던 그 열정으로 다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