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 송복련
집
송복련
집이 아프다. 여기저기가 들썩거린다. 밖으로 나다니는 동안 돌보지 않았더니 이제 구석구석 살펴달라고 외친다. 안방인가 싶어 열어보고 건넌방을 휘이 돌아 나와 대청마루에 서 본다. 반질거리던 마루는 어느덧 빛을 잃고 엷은 먼지 위로 고양이 발자국처럼 검은 꽃이 피었다. 딱히 어디가 탈이 난 것인지 모르겠으나 집 전체가 우는가 싶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기둥들이 등 굽은 아버지처럼 작아 보인다. 내 집이 이렇게 작았던가. 윤이 흐르는 검은 기왓장들을 거뜬히 받쳐 올려 넉넉한 품으로 감싸주었던 곳인데.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도시의 건물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 하나가 스친다. 아파트단지의 촘촘한 건물들 사이로 철거되지 않아 섬처럼 남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집이다.
살구꽃이 피어 담 너머로 연분홍빛을 흘리며 마냥 향기를 뿜어내던 그 시절, 작고 보드라운 아이를 품어 안으며 우윳빛 가슴을 풀어헤쳐 보이던 곳이다. 딸랑이와 밥숟가락이 노랫소리가 되고 앳된 언어들도 여물어 갔다. 그곳은 에너지가 늘 샘물처럼 솟아올랐다.
먼 곳을 향해 늘 열려 있는 창은, 집밖으로 나간 남편과 아이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바깥 풍경마저도 집인 줄로만 여겼다. 아이들이 머무는 교실이며 운동장과 돌아오는 길목들, 먼 곳에서 일하던 직장이며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다 집이었다. 때로는 먼 우주까지 시선이 열리던 곳이다.
세상은 눈길이 가는 만큼 이곳으로 스며들었다. 모든 부분들은 예민한 감각으로 통통 튀어 오르고 뜨거워졌다. 계절이 묻어오고 세상의 소문들도 실려 왔다. 비오고 눈 내리는 날에는 뜨신 온돌과 구수한 밥 냄새를 찾아 식구들의 귀갓길이 빨라졌다. 언제나 이곳에서 기운을 회복했다. 여기 머무는 동안 식구들의 숨결은 골랐다. 지금은 푸르고 싱싱한 근골로 떠받들어온 세월을 추억한다.
몸져누웠던 날, 뼈마디들이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끼며 몸집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림자를 눈치 채지 못하듯 그동안 몸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이 작은 뼈가 이루고 있는 몸집이 내 정신이 머물렀던 곳인가. 거죽으로 검은 꽃이 피어오르고 피돌기는 생기를 잃어가지만 본래의 나와 만나게 되었다.
집은 그동안 자신을 봐달라고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여기저기 조금씩 탈이 나기 시작한다. 이 보잘것없는 뼈대 속에서 수많은 일들을 해내느라 많이 헐거워지고 누추해졌다. 부쩍 작아진 몸집이 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슬픔이 놀빛처럼 번진다. 마음도 덩달아 허약해지나 보다.
낡아가는 집을 어루만져 조금씩 손보며 더 깊이 사랑할 때다. 허물어지는 속도와 함께 손때 묻은 것들에 대한 소중함은 더욱 깊어지리라. 함부로 써버린 것들을 다독 다독거릴 날이 더 많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