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죽 먹는 호랑이/ 강호형
죽 먹는 호랑이
책을 뒤적이다가 배가 고파 시계를 보니 열두 시였다. 아침에는 과일주스 한 컵에 감자나 달걀 한 개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오랜 습관이라 늘 이 시각이 기다려진다.
아내는 외출 중이니 오늘 점심은 내 손으로 차려 먹어야 한다. 우선 전기밥솥에서 밥을 퍼서 흰죽부터 쑤어
놓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반찬이 즐비하다. 김치, 장조림, 오이지, 멸치볶음…. 주섬주섬 꺼내다 놓고 작년
여름에 담근 매실주까지 한 잔 곁들이니 한량의 밥상 치고는 성찬이었다.
서둘러 수저를 들었으나 죽에도 반찬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치아가 고장이라 벌써 여러 날째 치르는
곤욕이다. 차거나 뜨거운 것이 닿으면 눈물이 날 만큼 이가 시고, 조금만 힘을 주어 씹어도 깜짝 놀라게 아픈
것이다. 밥은 죽이 되었으니 그럭저럭 삼킨다지만 반찬 먹을 일이 난감했다. 밥보다 반찬을 많이 먹는 것이
취향인데 아무리 살펴봐도 내치아 사정에 만만한 반찬이라고는 장조림간장 하나뿐이었다.
향긋한 매실주 한 모금에 씹을수록 맛이 나는 장조림 고기 한 점, 밥 한 술에 새콤한 오이지나 얼큰한
김치 한쪽 어석어석 씹는 맛을 이미알고 있는 내 입에는 벌써 군침이 가득하지만 모두가 그림의 떡이었다.
수저를 놓고 수저통에 꽂힌 가위를 집어다가 장조림 고기부터 부스러기가 되도록 잘게 썰었다. 그러고
보니 그 상큼한 오이지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릇째 들고 가 전기믹서에 붓고 거품이 일도록 사정없이
갈았더니 세상 어느 요리사의 요리법에도 없을 오이지 죽이 되었다.
이렇게 저작詛嚼의 즐거움을 그 비정한 쇠붙이들에게 고스란히 헌납하고 부스러기 고기나 우물거리고
있는꼴이 스스로도 가련하기 그지없었다. 죽이 된 오이지를 숟가락으로 퍼먹으려니 처량한 몰골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내게도 병뚜껑을 이빨로 물어 따고, 구운 생선을 뼈째 씹어 삼키던 시절이 있었건만 어쩌다가 이 꼴이 되
었는지…. 그러고 보니 내가 치아를 너무 혹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앙증스러운 유치乳齒가 돋아나던 유
아기부터 거금 70여 년 동안 내 이빨에 희생된 동·식물의 수량이 무릇기하이더뇨!
나는 지금 내 치아에 희생된 수많은 먹잇감의 혼령들에게 보복을 당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고 보니
인간들이 찬미해 마지않는 단순호치丹脣皓齒의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치아도 그들의 눈에는, 아름답기는
커녕 악어나 호랑이의 이빨보다 더 흉물스럽고 비정하게만 보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지금 내 꼴을 보고 깨소금 맛이라며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원리대로 살아가고 있는 자연계의 먹이사슬을 보면 약육강식이 비정하기는 하지만 불가피한 자연의 순환
원리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포식동물들은 대체로 초식동물을 잡아먹고 사니 포식동물의 수가 더 많아야
한다. 더구나 포식자들은 초식동물들보다 더 많은 새끼를 낳는다.하지만 생존율은 정반대이니 그 조화가
신비롭다.
짐승도 나이가 들면 늙기 마련이다. 늙으면 힘이 떨어지고 눈도 어둡고 치아도 못 쓰게 된다. 그런 몸으
로는 사냥을 할 수 없고 사냥을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태생적으로 힘이 약한 놈은 사냥을 배우기도
전에 도태되기도 한다. 이렇듯 서로 먹고 먹히면서 적정한 숫자의 균형을 맞춰 공존하는 것이 자연의
질서이거늘, 오직 꾀 많은 인간들만 온갖 동물을 다 잡아먹고도 이 원리에서 벗어나 ‘영장’임을 자처하고
있으니 희생물들의 혼령인들 어찌 복수심이 끓어오르지 않으랴.
나는 잡식 동물이지만 사주에 호랑이가 셋이나 들어있어서인지 육식을 좋아한다. 그동안 내게 학살당한
희생물들의 복수심도 그만큼 클 것이다.
무릇 생명 있는 자들에게 먹는 일보다 더 큰 즐거움이 무엇이랴. 나는 이제 이 빠진 호랑이 꼴이 되어
고기 씹는 즐거움은 고사하고 초식마저 죽을 만들어 퍼 삼키고 있다. 내가 만일 포식동물이었다면 눈앞에
얼씬거리는 영양 한 마리도 잡아먹을 힘이 없어 벌써 굶어 죽고 말았을 것이다.
습관처럼 멸치볶음을 집으려다가 뒤미처 내 처지를 깨닫고는 슬그머니 젓가락을 거두었다. 드넓은 바다
에서 플랑크톤이나 먹으며 사는 것이 무슨 죄라고 지옥 같은 인간 세상에 끌려와 집단 학살을 당하고도
모자라 기름 가마에 볶이기까지 한 멸치들의 시신을 보니 나는 갈데없는 저승사자였다. 멸치들에게도
혼령이 있다면 무시로 자행하던 악행을 포기하고 잔뜩 기가 죽어 죽이나 퍼먹고 있는 내 꼴을 보고
환호작약할것이다.
나는 눈앞의 먹잇감도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는 이 빠진 호랑이, 멸치들에게조차 조롱받는 저승사자가
되었을망정 목숨을 부지하려면 죽이라도 퍼먹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