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잔소리 / 박순태

희라킴 2016. 5. 17. 10:10



잔소리


박순태


  하늘은 지구를 배필로 삼았나 싶다. 그래서 그럴까. 지구촌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바람과 비, 천둥 번개가 섞인 잔소리를 시시때때로 해댄다. 구름 한 점 없이 쾅쾅거리며 벼락도 친다. 하늘은 태생적 우둔함을 깨우치지 못한 채 대꾸 없이 받아넘기는 배우자가 안쓰럽거나 미울 때가 많을 것이다. 반대로 지구는 하늘의 잔소리에 몸이 데워지곤 한다.


  하늘의 부산떨기는 여행채비 이상이었다. 초등학교 동기생 나들이를 위해 집을 나설 때는 대문이 삐거덕거렸다. 이곳 성산일출봉에는 하늘이 한층 더 높은 목청으로 ‘윙윙’거린다. 듣고 있으니 몸에서 서릿발이 서고 정신이 혼란스러워진다. 생각은 구겨지고 느낌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덩달아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할 팔삭둥이 들풀도 제 처지를 모르고 꽃망울을 내민 채 오들오들 떨고 있다. 동병상련의 마음이 자꾸만 저려든다. 말라빠진 풀까지 발밑에서 버석거리니 잔소리의 아픔을 더해온다. 여기조차 하늘은 잔소리하고 대지는 묵묵히 받아들인다. 

 

  발길을 돌리니 해송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 온다. 몇 안 되는 가지를 달고 선 배불뚝이라 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듯하다. 어쩌다 저렇게 기형이 되었을까. 안쓰럽기만 하다. 하늘의 잔소리를 적게 들으려고 가지로 향하는 성장 호르몬 통로를 막아버린 것일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무 옆에 앉았다. 휘몰이장단이나 자진모리장단이나 진양조장단을 가리지 않고 소나무는 열창한다. 이젠 목이 잔뜩 쉰 상태다. 굽은 몸과 쉰 목소리로 ‘내 생명 보전의 비책은 가르침에서 익힌 게 아니라 살아오면서 터득하였노라’고 전해주는 듯하다. 그 노련미에 마음이 끌린다.


  친구들의 호주머니 속에서도 잔소리 예비 음이 울리기 시작한다. 하나 둘씩 머쓱한 표정으로 기기를 잡는다. 만물은 하늘의 잔소리에 몸을 맡기고, 동료들은 잔소리 전달기기에 신경을 묻는다. 친구들 짝지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한데 어울려 나에게까지 들려온다. 그 소리들이 내 온몸을 예민하게 만든다.


  집을 지키고 있는 짝지들의 잔소리 내용은 이랬다. 술 많이 먹지 말고, 허튼짓 하면 안 된다는 주문, 챙기고 간 약 시간 맞춰 먹으라는 당부, 영양가 없는 말 함부로 하지 말고 일직 자라는 애원 섞인 명령조 일색이다. 산을 오르내릴 때 조심하라는 염려도 조금 담겨 있기는 하다. 언제 어디서든 묵묵히 이겨내야 할 말들이다.


  한 여자 친구가 전화기에 입을 붙인 채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야단이다. 싱긋 웃으며 그녀 왈 “우리 영감탱이 질투가 있구먼.” 그녀 짝은 남자 몇 명이 함께 갔느냐는 것이었다. 이어진 잔소리는 수놈이 여럿이면 그 중에 분명 엉큼한 수작 부릴 수컷이 있을 거라는 우려였다. 밤에는 불침번을 세우고 걸을 때는 여자끼리 팔짱을 끼고 걸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그 소리를 들은 어느 남자 친구가 “꽃도 더 이상 피지 않는 나무에 뭐 하러 앉을까 걱정 놓고 잠이나 자라고” 이른다. 아내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남자였다.


  동창 중에 잔소리에서 석방된 친구가 있다. 모두가 전화 받느라 열을 올릴 때, 초점 없는 눈으로 먼 산만 바라보는 그가 분위기를 착잡하게 만든다. 힘 빠진 그의 모습은 외로움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실체였다. 그 친구의 아내는 몇 해 전 눈을 감았다. 외로워지면 누군가 그리워지고, 그리워지면 밉던 얼굴도 보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보지 못하는 설움 때문에 가슴을 아프게 한다. 또 한 친구는 고개를 숙인 채 목석이 되어 있다. 이틀이 지나도록 부부간에 전화통화 한 번 없었다. 누군가 귀를 간질인다. “저 친구 지금 따로국밥이 되었다.” 두 명의 모습을 보고나니 잔소리가 귀에서 굴렀으면 싶다. 옆지기의 잔소리가 오랏줄이 되어 마음을 칭칭 감았던 게 스르르 풀리기 시작한다.


  후회스러움이 마음속을 파고든다. 물결에서 파도로, 드디어 폭풍으로 몰아치는 옆지기의 잔소리. 그 때는 첫닭 울음소리가 들릴 쯤 귀가한 경우이다. 자정을 넘긴 시곗바늘을 지켜보며 내 짝은 포탄을 차곡차곡 쌓았던 모양이다. 새벽녘 마루 닦는 팔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포구가 된 입에서 “빠방 빠방” 포탄 터지는 소리가 연발했다. 그 포탄 한 방에 나가떨어졌으면 옆 지기의 잔소리에서 해방되었을 건데…….


  역사 속의 잔소리꾼들이 줄지어 떠오른다. 예수와 석가모니 그리고 공자, 그들이 제자에게 한 잔소리가 마음의 눈을 밝힌다. 맹자와 한석봉 어머니가 자식에게 한 잔소리는 스토리가 되어 귀를 밝게 해준다. 잔소리를 마음의 양식으로 만든 분들도 떠오른다. 세계에서 넘버원 악처를 뒀다고 회자되는 소크라테스, 그는 아내의 잔소리가 원동력 되어 철학자로 남았다. 누군가 소크라테스에게 “용케도 부인의 잔소리를 잘 참아 넘기십니다.”라고 하니 그의 대답이 걸작이다. “물레방아 소리도 자꾸 들으면 시끄럽지 않지.”


  잔소리는 애당초 간결체가 아니고 만연체여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기 마련이다. 한여름 뙤약볕의 엿가락이 무색하다. 그런가 하면 강물처럼 일방적이고 반복적이다. 평행조건에서 행해지면서도 내려다보거나 쳐다보는 식으로 수직의 그림을 그릴 때가 많다. 하는 입장에선 조건 없이 따르기를 바라고 있으니 듣는 입장에선 약으로 발효시키는 참을성이 묘약일 것 같다. 잔소리는 순종과 인내를 필요충분조건으로 하는가 보다.


  하늘의 잔소리와 사람의 잔소리가 다를 바 없구나 싶다. 지구촌의 뭇 생명체는 하늘의 잔소리를 듣고 몸피를 키우고 사람은 동반자의 잔소리를 듣고 마음을 키운다. 하늘과 땅이 수평을 이루기 위해 저울추로 선택한 것이 잔소리일지리라. 둘이 평형을 이루지 못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어찌될까. 지구의 축이 변화를 일으키면 재앙이 닥쳐오듯 집안에서도 잔소리의 과불급은 뜻하지 않는 가정사를 만들 것이다. 잔소리란 자잘한 소리가 아니라 때로는 가정을 조용히 잠재우는 소리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 전해준 말이 생각난다. “사랑은 시공을 초월해 살피기에 그 속도는 빛을 주눅 들게 한다. 사랑의 그물 짜기에 사용되는 바늘은 이마에 떨어지는 밤송이보다 더하다.” 그렇구나. 사랑, 관심, 집착, 질투, 이 모두가 잔소리의 샘이었구나. 잔소리는 귀를 얼얼하게 하지만 때로는 가슴을 데우는 사랑의 주산물인 것을.


  오늘 아침 대문을 나설 때 아내가 붙여준 잔소리가 가슴에 아직 붙어있다.

  

 -월간 샘터 5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