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 / 이외수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
/ 이외수
싸우지 말라. 돈과 명예와 권력 때문에 싸우지 말라.
봄에 내리는 비, 봄에 피는 꽃, 그리고
봄에 새로이 눈뜨는 모든 것들에게 죄를 짓지 말라.
자연 앞에서는 우리도 한낱 보잘 것 없는 뼈와 살,
너무도 많은 것을 더럽혀오지 않았는가.
우리는 다만 서로 사랑하면 그만이다.
마음까지 더럽히려고 애쓰지 말라.
단 한 줄의 시도 외어보지 못한 채
봄을 훌쩍 보내어 버린 사람이
돈과 명예와 권력을 얻는다고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가 있겠는가.
봄비 내리는 밤 한 시.
잠 못 이루고 한 줄의 시를 쓰는 사람과
잠못 이루고 몇 다발의 돈을 세는 사람들과
한번 비교해 보라.
누구의 손끝이 더 아름다운가.
낭만이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낭만이 밥 먹여주냐,라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더이상 그에게 할 말이 없다.
밥을 먹기 위해 태어나서 밥을 먹고 살다가
결국은 밥을 그만 먹는 것으로 인생을 끝내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같은 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다만 비참할 뿐이다.
밥 정도는 돼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낭만을 아는 돼지를 당신은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인간을 사랑하라.
그러나 낭만도 사랑하라.
애당초 사랑이라는 것은 낭만이라는 강변에 피어난 꽃이다.
낭만이 없는 사람은 사랑도 할 수 없다.
마른 모래 사막에서는 한 포기의 풀잎도 자랄 수 없듯이.
돈이나 명예 권력으로는 결코 사랑의 싹을 틔울 수 없다.
돈이나 명예나 권력으로는 고작 사랑을 가장한
플라스틱 가화들이나 사들일 수 있을 뿐이다.
이제 봄이다.
겨울을 쓰라리게 보낸 사람일수록 봄은 더욱 새롭다.
마치 고통을 심하게 받은 조개일수록
그 진주가 더욱 아름답듯이...
이제 완전히 겨울은 갔다.
그러나 그 겨울의 모든 쓰라림만은 잊지 말기로 하자.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쓰라림을 배우기 위해
잠시 한 순간의 봄 속에 머물러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큰 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는 지도 모른다.
이제 양지 바른 벽에 기대어 앉아
그냥 하늘이나 바라보는 그대에게
뭉게구름 한아름을 만들어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