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슴 아픈 일이 너무 많다. 도처에 슬픔의 웅덩이, 슬픔의 구름장, 슬픔의 도가니다. 그래서 어쩌다 그늘 한 점 없어 보이는 사 람을 만나면 마음이 편해지고 환해진다. 부모 된 사람들은 자기 아이가 그늘 없이 살아가기를 바랄 테다. 세상에 슬픔이 있 다는 걸 아예 모르고 오직 기쁨 속에서 살게 되기를. 밝은 전망이 안 보이는 불안정한 시대이니만큼 더 그럴 테다. 그런 옹졸 한 사랑으로 길러진 기쁨의 아이들은 슬픔의 사람들이 자기와 평등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다. 그 아이들의 눈에는 ‘겨 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도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도 보이지 않는다. 슬픔이 ‘어둠 속 에서 부를 때/단 한 번도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그런 둔하고 차가운 마음이 세상을 슬픈 얼음장으로 만드는 것인데. 기쁨이 세상의 슬픔에 눈 돌리도록 하겠다는 결기가 안타까운 분노와 함께 서려 있는 시다. 도 없이/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혈관 속에 슬픔의 입자들이 가득 차 따끔거린다. 정호승 시들은 왜 이리 서러울까. 무슨 업보를 갖고 있기에.
-출처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209> 동아일보 2014-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