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스크랩] 반쪽 / 마경덕
희라킴
2016. 4. 18. 18:20
반쪽 / 마경덕
잘 여문 호두알 어디에도 틈이 없다
두 쪽이었던 몸,
한 몸으로 봉합한 흔적이 있다
어느 한 쪽이 크거나 작으면 짝이 될 수 없었을 것
입추가 지나야 나무의 뼈가 여물고
그때 호두가 되는 것
맞물린 중심, 딱 절반씩이다
유일하게 뇌(腦)를 가진 나무
한 알 한 알 뜻을 담아 가지에 걸고
생각에 지친 사람들은 호두를 까먹고 머리를 채운다
한 줌 생각을 얻으려고 망치를 휘둘러
나무의 뇌를 속속들이 꺼내먹는다
날로 먹어도 고소한 호두알
어떻게 비린 생각을 익혔을까
뼈에 바람이 드는 나이에도 설익어 부르르 끓어 넘치는데,
두 개의 머리뼈를 맞붙여 마음 한 점 흘리지 않는 호두나무
완벽한 합일(合一)이다
삼십 년 전 한 몸이 된 나의 반쪽
우리는 자주 틈을 보였다
사소한 충격에 하마터면 두 쪽이 날 뻔하였다
생각이 깊은 호두나무와 머리를 맞대고
올이 풀린 봉합선을 더듬어본다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