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스크랩] 밥상 / 박경주

희라킴 2016. 3. 21. 08:37

 

                                                                                                                                             박경주


 

 식구가 또 줄었다. 친정집 밥상에 난자리가 보인다. 줄면 또 느는 식구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 우리 집 밥상은 다섯 명이 둘러앉는 두리반이었다. 그 단출한 상(床)은 농부의 뙈기논처럼 내 어머니가 가꾸는 꿈의 공간이었다. 어린 날의 행복, 돌이켜보면 그건 찰나처럼 지나가 버렸다.


 칠이 벗겨져 나간 그 두리반이 알록진 자개를 박은 교자상으로 바뀐 건 큰오빠가 결혼하면서부터였다. 이어 나와 작은오빠의 결혼으로 식구는 해마다 불어났다. 교자상 한 개로도 부족해서 두 개를 이어붙여야만 제대로 앉아 먹을 수 있었다. 우리 삼남매가 낳은 여섯 아이들이 커가면서 두 개의 상도 비좁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곁에 또 소반(小盤)을 붙여 밥을 먹었다. 우리 집 밥상은 열넷이 모인 고래실논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순서도 없이 떠나는 식구들을 지극한 아픔으로 하나, 둘 그 상으로부터 배웅했다. 열넷이 빙 둘러앉던 식탁을 가장 먼저 떠난 건 어머니였다. 그토록 열심히 밥상을 차리시다 먼저 눈을 감았다. 떠나신 뒤, 그 밥상 차리기는 큰 올케 몫이 되었다.


 그 후. 친정집 교자상은 제상(祭床)이 되기도 했다. 이제 누가 먼저 이 상을 떠나게 될까. 물론 아버지일 것이었다. 늘 그게 서운해 말없이 아버지 손을 어루만지곤 했다. 그러나 어머니 다음으로 밥상을 떠난 이는 아버지가 아니라 내 남편이었다. 다시 몇 년 후, 항상 밥상의 가운데자리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가 영원히 그 자리를 비우셨다. 그리고 다시 몇 해가 흐른 오늘, 작은오빠도 더 이상 '식구(食口)'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가면 담임선생님은 학급 학생들을 빙 둘러앉히곤 했다. 수건돌리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술래는 수건을 들고 뛰다가 누군가의 등 뒤에 몰래 그걸 놓아두었다. 혹시나 내 등 뒤에 수건이 떨어진 건 아닐까. 더듬던 중 손가락 끝에 그것이 닿던 순간에 느꼈던 놀라움과 당혹감, 그 아뜩함. '죽음'이란, 그렇게 뜻밖의 술래가 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죽음은 신이 술래인 수건돌리기 같은 것일까. 밥상 주변에 빙 둘러 앉았던 식구들이 하나 둘 순서도 없이 떠나는 것을 보면, 죽음의 신은 우리 등 뒤를 돌고 있는 것만 같다. 다음 차례는 누구로 할까.


 돌아오는 부모님 기일에 나는 또 친정집의 그 오래된 밥상 앞에 앉게 될 게다. 허전함과 쓸쓸함 속에 먼저 간 식구들을 기리는 제삿밥을 먹게 될 것이다. 달라질 게 있다면, 예전에 부모님이 앉던 상석(上席)에 큰오빠와 함께 앉게 되지 않을까. 제법 어른다운 말을 해야 할 텐데….


 빈자리는 채워지게 마련이다. 군데군데 허전한 빈자리에는 아직은 작고 여린 아기들이 넉넉하게 앉게 되리라. 교자상 두 개면 충분하겠지. 다시 소반이 필요할 무렵, 나와 큰오빠도 여길 떠나게 될까. 상도 제법 늙었다. 우리가 모두 떠나면, 새 밥상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한 시대가 끝나리라.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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