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스크랩] 원고지 위에서 죽고 싶다 작가 최인호 / 정호승

희라킴 2016. 3. 20. 13:39

 

 

▲ 일러스트=안은진 기자 eun0322@munhwa.com

 

원고지 위에서 죽고 싶다 작가 최인호 / 정호승 시인


 

“원고지 위에서 죽고 싶다.”

소설가 최인호 선생께서 남긴 말이다. ‘문학의 거리’가 조성돼 있는 서울 연세로 홍익문고 앞 보도 바닥에는 김남조, 이어령, 조정래 등 몇몇 작가의 두 손을 핸드프린팅해서 글귀 한 구절과 함께 동판에 새겨놓았는데, 최인호 선생의 동판에는 바로 이 말이 새겨져 있다.

서대문구청에서 주최한 핸드프린팅 제막식에 참석했던 나는 최인호 선생의 동판 앞에서 오랫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원고지 위에서 죽고 싶다’는 이 말 한마디가 한 편의 절명시처럼 아프게 내 가슴을 때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른 작가의 글귀는 다 자필이었으나 최인호 선생의 글귀만은 자필이 아닌 명조체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자필 글귀를 받아야 할 시점에 그만 최인호 선생께서 작고하시는 바람에 미처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의 두 손 또한 유족의 허락을 받아 영안실에서 핸드프린팅 작업을 했다는 거였다.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다. 문학의 거리 동판에 새겨진 손은 다들 생존 작가의 손이었지만 최인호 선생의 손만은 사후의 손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손가락 끝은 유달리 잔주름이 많이 있고 왼손이 조금 휘어져 있어 사후에 프린팅한 손임을 짐작케 해주었다.

나는 동판에 새겨진 최인호 선생의 두 손을 한참 동안 쓰다듬었다. 선생의 손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그의 작가적 열망과 문학적 완성이 그대로 내게 전해져 나 또한 시를 쓰다가 원고지 위에서 죽고 싶다고 소원하는 마음이 일었다.

‘원고지 위에서 죽고 싶다’는 이 말은 소설가로서의 그의 생애를 단 한마디로 대변해 주는 말이다.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작가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강한 열망과 결의를 나타낸 말이다.

소망대로 그는 원고지 위에서 죽었다. 침샘암을 앓는 환자가 아니라, 작가로서 죽고자 했던 그는 죽는 순간까지 펜을 들어 한 칸 한 칸 원고지 위에다 글을 씀으로써 작가로서의 삶을 완성했다.

그의 유고 산문집 ‘눈물’을 읽어보면 깊은 밤에 홀로 원고지 위에 눈물의 만년필로 고통의 소설을 쓰는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빠진 오른손 가운데 손톱의 통증을 참기 위해 고무 골무를 손가락에 끼고, 빠진 발톱에는 테이프를 친친 감고, 구역질이 날 때마다 얼음 조각을 씹으면서 미친 듯이 20매에서 30매 분량의 원고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집필했다.”

이 얼마나, 견딜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도 작가로서의 본분과 책무를 다하는 진정한 모습인가.

“아아, 주님! 그래도 난 정말 환자로 죽고 싶지 않고 작가로 죽고 싶습니다. 주님, 나를 나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지게 해주소서.”

이 얼마나 고뇌에 찬 간절한 기도인가. 원고지는 그의 십자가였으며, 그는 결국 소원대로 그 십자가 위에 작가로서 못 박혀 죽었다.

나는 1970년대 말에 최인호 선생께서 월간 ‘샘터’에 연재하는 소설 ‘가족’을 매달 교정 보고 편집하는 일을 하면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꼭 마감 직전에 원고를 보내셨는데 동화작가 정채봉 씨가 난필로 유명한 그의 글씨를 한 자 한 자 알아보고 다시 썼으며, 바쁘면 읽어주면서 내게 대필시키기도 했다.

소설 ‘가족’의 최초의 독자인 나는 늘 그의 아드님인 도단이와 따님인 다혜와 함께 사는 듯했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그는 가족의 일상사를 세세하게 끄집어내어 글을 썼다. 일상 속에서 어떤 태도로 무엇을 발견해내느냐 하는 것이 글쓰기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상의 삶 속에 진정 문학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그를 통해 배웠다. 가족을 사랑하는 일에서부터 인간의 모든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 또한 내겐 큰 가르침이었다.

최인호 선생은 후배들에 대해 사랑이 많으셨다. 내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됐을 때는 일부러 전화를 해주셨다.

“소설이 당선되었다니, 정말 축하해. 열심히 써. 이제 넌 내 후배야. 시인이 소설가가 되려면 열심히 쓰는 수밖에 없어.”

선생의 말씀과 달리 나는 소설을 쓰지 못하고 말았지만, 그때는 당대 최고의 소설가가 직접 축하 전화를 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했다.

최인호 선생은 이제 김수환 추기경의 품에 안겨 그동안 참 많이 아팠다고 어리광을 부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법정 스님과 찻상을 마주하고 대밭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작설차 한잔 나누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슬며시 어느 술집에 들러 ‘별들의 고향’의 경아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이런저런 이승의 이야기를 나누며 빈대떡에 소주라도 한 잔 나누고 있을지 모른다.

선생께서는, 나사렛 마을에 살았던 2000년 전 청년 예수 이야기와, 여든 넘게 그림을 그리면서 끊임없이 정열적으로 여자를 사랑했던 화가 피카소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어하셨다. 어쩌면 지금쯤은 나무 책상 하나 마련하고 만년필에 잉크를 새로 넣어 선생만의 새로운 막 관점에서 집필을 시작했을 것이다. 원고지 위에서 죽고 원고지 위에서 다시 사는 법을 최인호 선생만은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출처: 문화일보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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