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당선 시

[제16회 시흥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후 / 김태희

희라킴 2016. 10. 22. 10:12



[제16회 시흥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후 / 태희 

 

 

바람은 별 수 없이 한 쪽으로만 불었다.

모든 것이 죽고 나면 이것들을 기록하지 못할 것 같아

바람은 이 세계보다 조금 더 앞에 서 있었다.

거짓말의 뒷면을 보며 비웃는 날이면

여름의 폭염보다, 겨울의 폭설보다

더 고약한 하나의 계절처럼

덜 자란 아이들의 등을 떠밀었다.

 

그것은 비겁했다.

하지만 바람은 세계를 닮아 있었고,

아이들은 이제 막 색종이를 가위로 자르는 법을

배우느라 고요했다.

사랑은 바람을 따라 깔깔 거렸지만,

다 자라난 아이들은 귀를 틀어막고

제 자리에 앉아만 있었다.

아이들의 사랑은 동화책을 따라 그린

연습장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잘 잘라 만든 색종이는 제목이 되어

정성스럽게 붙어 있었다.

 

바람은 벌써 세계를 한 바퀴 돌아왔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다 큰 아이들은 아직도 등교하는

길 위에 나타난다. 

바람은 쉰 냄새를 흉내 낸다.

그것이 모두가 싫어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뿌리가 자유로운 야생화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다는 사실과

모두에게 퇴화되지 않는 다른 모양의

퍼즐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숨긴다.

 

어느 기록의 한 줄에도

바람은 불었다 로 남을 것이고,

거짓말의 앞을 본적 없는

바람의 방향은 언제나

우리가 고개를 돌리고 난 후,

일 것이다.